섬진강과 사평역에서
열일곱 아들에게 보내는 문학 편지 #7
오늘은 처음으로 시 이야기를 하는구나. 다음 주는 백석 시인이니까 시에 대해 그래도 조금은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실 네가 시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도 시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쓰고 싶은데 ...... 소설에 비하면 시를 읽어온 시간은 너무 적구나. 그래도 좋아하는 시인이 있고 몇 안 되는 그분들 중에 오늘과 다음 주에 세 사람이나 이야기하니 좋구나.
“섬진강”, 이 시집은 대학 1학년 때 읽었는데 어떻게 이 책을 발견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보던 시와 너무 달라서 놀라웠고 그래서 시에 대한 생각이 통째로 변한 계기가 된 시집이었어. 농민이 겪는 설움에 대해 세상의 불의에 대해 솔직하고 투박하게 뱉어내다가도 또 섬진강에 기대 섬세하게 자연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김용택 시인의 노래에 매료되었어.
이 시집에서 대표적이고 가장 유명한 시는 아마도 ‘섬진강 1’이지 않을까.
......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
섬진강과 지리산과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아마도 김 시인의 터전인 섬진강이 빨치산의 아픔이 있는 지리산과 5.18의 아픔이 있는 무등산까지 이어지는 시대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비유인 듯해.
그런데 김 시인의 개성이자 박력은 농민들의 설움을 절절하게 털어내는 구절에 있는데 이를테면 ‘섬진강 16-이사’라는 시에서처럼.
...... 피와 땀과 살을 섞었던 땅, 버림받고 무시당하면서도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다 했던 땅, 그래도 정 붙여 살았던 땅, 나이 서른다섯에 이사라니. ......
이 시는 산문시인데 가난을 못 이겨 도시로 이사 가는 가족의 비애를, 서른다섯에 이사를 가는 일이 너무나 막막하고 부끄러운 그 남자의 심정을, 뿌리가 뽑히는 것 같은 비참함과 씁쓸함을 그리고 있어. 9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하층민은 도시 빈민과 농민이었는데 김 시인은 농민을, 그리고 이따 이야기할 곽재구 시인은 도시 빈민을 노래하는구나.
‘시는 서울서 쓰고 사는 건 우리가 살고’ 시에서는 도시에 비해 상대적 불평등을 감내해야 하는 농민들의 집단적인 분노가 잘 느껴져. 60~80년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도시에는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도시 빈민들도 많이 생겼는데 이들이 극도의 저임금으로 삶을 버티려면 최소한 쌀은 사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정부는 쌀값을 인위적으로 낮게 정하고 그 손해를 농민들이 감내하도록 했던 거야.
물론 김 시인이 세상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눈 건 아니란다. 농민 중에서도 못나고 못된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으로 인해 삶은 더 팍팍해지지. ‘눈길’이란 시의 일부야.
...... 작은아버지가 조합장에 유임되려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출마하여 선거자금으로 동네 사람들 명의로 조합돈을 써버리고 / 이장이었던 큰집 형님이 새마을사업을 하며 / 농약값 비료값을 밀어넣어버리고 / 둘 다 서울로 이사가던 날 밤 / 동네는 온통 울고불고 악을 쓰며 / 얼마나 난리였던가 ......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표적인 어용단체인데 여기 감투가 욕심이 나서 동네 사람들의 돈을 유용하고, 새마을 사업을 한다면서 역시 이웃들의 명의를 도용한 다음 둘 다 도망가버렸으니 그 많은 빚은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 순박하고 물정 모르는 농민들 차지였구나.
그래도 김 시인은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었고 힘들어도 자연의 순리가 있다는 걸 믿었던 시인이어서 90년대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사회부조리가 다소 줄어드는 흐름에 따라 그의 시도 좀더 평온해지고 자연과 동심과 순수함을 더 많이 찬양하게 된단다.
이제 “사평역에서”로 가보자. 이 시집은 83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나서 2005년에 개정판 20쇄를 발행했으니 그 인기가 어마어마했구나. 참고로 “섬진강” 시집은 85년에 발행되고 2000년에 개정판 16쇄를 찍었으니 만만치 않다. 두 시집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시집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네.
말했듯이 이 시집의 주인공은 도시 빈민들이고 특히 5.18을 겪은 광주 사람들이야. 갑자기 하루아침에 특전사 군인들이 총을 쏘며 제 나라 국민들을 죽인다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온 시들이지.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운동권은 급격히 좌경화되었고 미국에 대한 불신도 강해졌어. 상대가 총칼을 드니 우리도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세계 최강인 미국이 배후에 있다거나 최소한 전두환을 용인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부르며 해방 전쟁을 선포하는 심정으로 민주화 운동에 임했겠지.
특히 광주는 71년 박정희가 김대중을 아슬아슬하게 이기면서(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이니까 김대중이 실제로는 이겼다는 사람도 많아) 김대중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은 노골적인 핍박의 대상이 되어버렸어. 영호남 지역갈등도 정권에 의해 부추겨진 측면이 있단다. 호남의 심장인 광주는 발전이 지체되고 여러 면에서 불평등을 겪었어. 심지어 5.18이 터지면서 억눌리고 찢겨버리다 보니 광주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겠지. 그래도 살려고 아등바등했었고 그중에는 서울로 일거리를 찾아 떠난 누이들도 있었지. 일부는 재봉공장에 취직했지만 또 일부는 사창가로 흘러들었어. 그들의 귀향을 다룬 시, ‘대인동 부르스’의 한 대목이야.
...... 부평에서 반월에서 구로동에서 / 이름도 얼굴도 때묻은 젖 큰 가시내들은 / 고향이라고 명절이라고 다들 밀려오는데 ...... 굳어버린 너의 몸 위에 누가 / 창녀라고 낙인을 찍겠느냐 / ...... /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 식구들 생각이 뜨거워서 / 홀로 들이킨 수면제 가슴 젖어오는데 ......
그런가 하면 이들의 편에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장하고 기특한 사람들도 있는데 ‘젊은 맞벌이 부부를 위하여’에서 그 초상이 보이는구나.
...... 산꽃마을 국어선생님을 뿌리치고 / 월 25만원의 서정적인 급료와 자격증을 뿌리치고 / 너희 이제 죽음보다 소중한 자유를 찾았구나 / ...... 너희 곱은 손 갈라진 흑판 위에 ....... 희망의 코사인 X를 적어나가는구나 ...... 낮이면 꿈을 파는 월부 브리태니커 외판원 ......
이 시에서는 시골에서 국어선생님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젊은 부부가 안정된 삶을 마다하고 굳이 광주 시내에서 야학 선생이 되어 낮에는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고달프게 살면서도 가난한 도시빈민의 자녀들에게 희망이 되려는 마음을 응원하고 있구나.
그런가 하면 본인은 배운 축에 들고 시인입네 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동생은 못 배우고 기름밥을 먹고 사는데 그 동생에게서 또 가난한 엄마에게서 삶의 진정성을 배우는 구절도 와닿는구나. ‘그리움에게’라는 시야.
...... 오늘 아침 용접공인 동생녀석이 마련해준 / 때묻은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생각했다/ 가슴의 뜨거움에 대해서 / 나는 얼마나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 건축공사장 막일을 하면서 / 기술학교 야간을 우등으로 졸업한 / 이등기사인 그놈의 자랑스런 작업복에 대해서 / 절망보다 강하게 그놈이 쏘아대던 카바이드 불꽃에 대해서 / 월말이면 그놈이 들고 오는 십만원의 월급봉투에 대해서 /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 길고 끈적한 우리들 삶의 미로를 돌아 / 어머님이 사들고 오는 봉지쌀 속의 가난보다 오래 / 그대와 겨울저녁의 평화를 이야기했고 / 밤늦게 계속되던 어머님의 찬송가 몇 구절과 / 재봉틀 소리 속에 그대의 따뜻한 숨소리를 들었다 ......
본인은 배운 것이 많아서 세상에 대해 한마디 할 줄도 알지만 그래서 절망도 하고 분노도 하지만 동생은 묵묵히 그러면서도 정열적으로 삶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고 어머니 역시 봉지쌀을 사야만 하는 초라한 형편에도 신앙심 깊게 평화롭게 살아갈 힘을 내고 계시니까. 시인의 삶의 이유, 존재의 의미는 소박한 생활인의 감각 앞에서 겸연쩍어지는구나.
그래도 곽 시인은 많은 이들의 아픔을 느끼고 공감하면서 그들의 삶을 긍정해주었어.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겠지. ‘사평역에서’가 그 백미야.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그래 지금은 모두들 /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낮은 사람들. 시골역에서 막차를 타야할만큼 시간도 돈도 없는 팍팍한 삶. 그들에게도 겨울밤 눈 풍경은 서정적이고 살갑구나. 삶의 생채기를 담뿍하게 감싸주는 풍경이 그저 아름다웁기에는 회한이 깊어서 결국 시인은 눈물을 보이고 마네. 그래도 시대를 분노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애잔한 눈길로 바라보는 이 시선이 귀하구나.
시집 뒷표지에 신경림 시인의 평이 있는데 ‘곽재구의 시 <그리움에게>에는 기술학교 야간을 우등으로 졸업해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이 나오고, 봉지쌀을 사들고 와서는 밤늦도록 재봉틀을 돌리는 어머니가 나온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전혀 어둡거나 비참하지 않다. 사랑과 평화와 화해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다. 앞으로 이 시인에게 ’이야기 시‘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찬사가 실려 있어.
시에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고 생각해. 그러려면 단지 독백으로 끝나는 시보다는 대화를 시도하는 시여야 하고 대화의 상대는 구체적인 인물이자 그 인물이 상징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도 나의 생각이야. 이런 관점에 대해 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구나.
80년대 너무나도 많았던 도시 빈민과 농민들. 그들의 편에 서준 두 시인.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도 누군가도 이 시집을 사는 돈이 아깝지 않았어.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자.
- 시집을 읽다가 80년대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져서 슬퍼진 요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