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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Aug 22. 2020

아무래도 미친 계획이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프랑스에서 기차 타고 이사합니다 (3)

아무래도 미친 계획이다.


못할 수준은 아니고 체력을 갈면 가능할 것 같다. 짐 옮기는 날은 아침마다 포텐시에이터 반을 마셨다. 말린 오징어 상태를 0인 사람의 범주로 끌어올려준다. 공항 약국에서 파는 이유도 수험생 피로회복제로 유명한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5번 파리-캠퍼스를 왕복했다. 27시간에 걸쳐 3,177 km를 이동했다. 몰랐으니까. 해보지 않았으니까 할 수 있었고, 다시는 안 하고 싶다. 29인치 캐리어는 3번, 24 인치, 21인치 캐리어는 각각 1번씩 옮겼다. 일은 해야 하니까 백팩엔 노트북을 항상 지니고 다녔고, 4번째로 옮길 때는 회사 노트북도 짊어졌다. 별로 가져갈 짐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와는 다르게 마지막 날엔 21인치 캐리어, 스포츠 가방, 백팩에 요가매트까지 주렁주렁 달고 왔다.



입주 D-Day

8시에 친구 집을 나와 초록 트램, 주황 트램, 183번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트램을 설치하고 있어 도로는 공사 중이고, 삭막한 건물들, 더 이상 문을 열지 않는 상점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중국어로 쓰인 간판들이 보인다. 이민자들이 많은 동네라는 게 느껴진다. 나도 파리에 있는 사설 기숙사는 비싸기에 외곽으로 나왔으니 모두 같은 입장이겠지. 여기서는 원숭이가 되는 기분은 느끼지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동네가 삭막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녹색이 눈에 띠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 도로에는 콘크리트로만 길을 내었고, 다른 쪽에 놓여있는 가로수 3그루는 심은 지 얼마 안 된 듯이 왜소한 가지를 흔들고 있다. 내가 살 기숙사는 지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새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주변 건물들은 베이지 혹은 회색으로 뒤덮여 있다. 9층짜리 건물 앞에서 벨을 누르고 고개를 들었지만 초록빛을 찾기는 힘들었다.



드디어 내 방을 배정받았다. 프랑스식 2층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크기가 어떤지 혹은 어느 쪽으로 창이 나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공사 중인 도로 쪽을 향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열쇠를 열고 들어가는 데 들뜨고 기쁜 마음보다는 며칠 동안 붙잡고 있던 긴장이 풀어지는 기분만 들었다. 휠체어 전용 방을 배정받아 17제곱미터가 아닌 20제곱미터 크기였고, 정원 쪽을 향해 북동쪽으로 창이 나 있었다. 정원은 지하 1층이 지상이었고, 내 방은 한국식으로는 4층이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5층 높이의 나무 한 그루가 초록색을 온몸으로 감은 채로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새 보금자리의 기쁨을 맞이할 시간도 없이 10 분 거리에 있는 마트로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갔다. 2년 동안 버스를 타거나, 왕복 한 시간을 걸어서 마트에 갔었던 날들이 머나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아직 캠퍼스를 떠나는 날이 2주나 남았는데, 내 마음은 이미 이곳에 뿌리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랍장도 조립해 놓고 다시 빈 캐리어를 끌고 몽파르나스역으로 향했다. Rennes행 기차에 몸을 실으니 피곤이 몰려왔다. ‘아 이제 한 시름 놨다’며 마음을 놓자마자 열차 방송이 나왔다.



"현재 기계 결함으로 기차를 수리하고 있습니다. 열차 출발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 모두가 한숨을 쉰다. 웅성웅성. 여행에 들떠있는 사람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장을 가는 사람들 사이에 피곤에 찌는 나도 한숨을 내뱉어 본다. 다시 돌아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구나. 20분이 지나고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직 수리 중입니다. 열차 출발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15분이 지나고 다시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재빨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해당 열차는 출발할 수 없으니, 플랫폼 4에 있는 열차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파리를 떠날 수 있었다. 6시 반엔 집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캠퍼스에 도착하니 8시가 되었다. 문고리를 열고 들어오는 데 손이 덜덜 떨렸다. 도저히 요리할 수 없다는 생각에 Rennes역에서 사 온 베이글이 어떤 맛인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배를 채우고 나서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렇게 힘든 데 이제 이사 시작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그저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옮겨지고, 이 방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날 자고 일어나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내가 2주 동안 짐을 나르고, 주말 내내 광내며 청소한 뒤에야.

마법도 아니었고, 집요정 도비도 없었다. 

그저 Dobby is free 백팩을 멘 내가 있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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