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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Aug 24. 2020

안녕, 지독한 2년이었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프랑스에서 기차 타고 이사합니다 (4)

"Bon courage, au revoir!"


210호 열쇠를 건네고 담당자 Chantale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뒤돌아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동기들 중에 마지막 타자로 이 캠퍼스를 떠난다. 드디어 나도 떠난다는 후련한 마음과 결국 떠나는 날이 온다는 씁쓸한 마음이 발걸음에 무게를 얹는다. 간절히 떠나고 싶었는데, 떠날 때가 되니 자꾸 뒤돌아 보게 된다. 2주간 이사하느라 몸은 지쳐있고, 온갖 걱정으로 뒤덮였던 머릿속 때문일까. 역에서 보이는 저 창문을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니까 마음이 적적하다. 주말 내내 비워낸 건 쓰레기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나 보다. Rennes 역으로 향하는 기차 소리가 갈 길이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다며 나를 붙잡아 깨운다. 비가 곧 쏟아질 듯이 흐린 하늘을 뒤로 파리로 향했다.



2018년 08월 17일. 첫 발을 내 디던 날을 품고
2020년 08월 17일. 마지막 발걸음을 떼어낸다.
그 2년이 나라는 도화지에 온갖 색을 담아냈기에.



그 날, 하늘은 그림 같은 구름들로 가득했다. 햇살도 따스했고, 고개를 들어 보이는 푸른 하늘은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캠퍼스는 아름다웠고, 앞으로 무슨 일을 마주할지 모르는 불안함과 도전하는 나라는 자아에 대한 짜릿한 감정이 공존했다. 세 대의 캐리어를 끌고 18시간을 날아와 픽업을 기다리던 나는 2년이 지나 혼자 기차를 10번 타며 짐을 옮기는 씩씩한 사람이 되었다.  



그림 같다는 인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캠퍼스는 단절된 공간이었다. 학교와 레지던스, 자연만 존재하는 공간. 학교는 걸어서 15분이 걸렸다. 9시 45분부터 5시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들려오는 프랑스어를 어떤 형태로든 잡아보려고 했다. 수업이 8시에 시작하는 어느 겨울날에는 해뜨기 전에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로 향했고,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3개월 인턴을 마치고 마지막 학년으로 돌아오는 친구들 대부분은 rennes나 bruz시내로 집을 옮겼다. 학교 이외의 삶이 존재하는 곳으로. 물론 파리로 인턴 하러 갈 때도 집을 뺄 수 없기에 계속 월세를 냈던 나 같은 경우도 있다. 보증인이 없는 외국인은 소중한 보금자리를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학교와 집이 분리되지 않는 시간들을 살았다. 공부도, 파티도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 유난히 힘들었다고 느꼈던 이유는 분리되지 않는 삶 때문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받은 스트레스와 걱정이 가방에 넣은 노트북인 마냥 집으로 따라왔고, 감정의 연장선에서 나를 떼어 놓지 못했다. 쏟아지는 과제와 감정 속에서 허덕이느라 기나긴 선을 보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옥죄였던 날들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덮어두고 버티면 지나가는 순간이라고.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하자고 스스로를 재촉했다. 건강하지 못한 고리를 끊어낸 건 내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5개월이라는 시간. 학교에서 듣는 수업이 끝난 3월 말부터 캠퍼스를 뒤돌아 떠나는 8월까지. 지독히도 혼자 있던 시간이었다. 곳곳에서 애정을 담은 연락을 받고, 온갖 걱정과 염려가 전달되었다. 혼자 있기에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글로 온갖 감정을 눌러 담으며 기억 속에 힘든 부분은 지워 보냈다. 불안했던 시기의 감정을 글로 담아 놓지 않았더라면 그런 시간조차 없었다는 생각을 할 뻔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어디를 갈 수도, 하루하루가 불안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뒤돌아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나를 버티는 게 가장 어렵기에 나를 돌아보는 건 매번 쉽지 않다. 부끄러운 기억들, 수치스러운 감정이 가장 먼저 솟아오른다. 아직 돌아보지 못한 순간들이 더 많다. 또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그 시간들이 물들여놓은 흔적을 꺼내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공간을 떠나며 느끼는 감정은 2년을 버틴 나에 대한 위로일까.

2년을 함께한 이 공간에 담긴 애착일까.

2년이라는 틈을 채운 사람들의 숨결일까.

2년 동안 몰아친 배움이라는 이름의 도전일까.

내가 가진 마음의 결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시간을 향해 위로라는 배를 오늘에서야 띄워 보낸다.
- 2020년 08월 17일. <캠퍼스를 뒤로 하고 파리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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