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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Sep 07. 2020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에서 일하기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인턴 재택근무 - 오늘은 어디서 일할까

3개월이 지났다. 혼란스럽고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시절도 지나 이제는 책상으로 출근하는 게 익숙해졌다. 재택근무가 주는 편안함과 유연함에도 익숙해졌다. 내가 누리는 나태함에도 익숙해졌다. 생각보다 더디고, 생각보다 집중을 더 못하는 나 자신에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기에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헤매었다. 주방에서 잠을 자고, 침대 옆에서 일을 하는 원룸은 일하기 좋은 공간은 아니다. 해야 한다는 마음과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사수라는 존재가 자꾸 인터넷을 떠돌려는 내 멱살을 잡고 일터로 이끈다.



한국에 있더라면 카페에 갔겠지. 작년에 인턴 보고서도 스타벅스에서 썼으니까. 집중이 잘 되던 그 쾌적한 공간이 그립다. 프랑스에서 카페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저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위한 공간. 화장실 가려면 모든 것들을 챙기고 자리를 포기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공간. 어디에서든 도난을 염려해야 한다. 카페 내부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으니 불안해서 안 되겠다. 동네에는 카페도 없고 지하철을 타고 나가야 하니까 아무래도 카페는 안 되겠다.



레지던스 정원에서 일하려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햇살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건만. 노트북 화면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햇살도 바람도 반갑지 않았다. 다시 짐을 꾸려서 방으로 돌아왔다. 고요하고 주변이 깨끗하고 내가 집중을 잘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가장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간인 도서관으로 눈을 돌렸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진 시간동안 독서실이랑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지 가장 먼저 마음이 향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있는 공간을 피하고 싶었는데 마침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는 연구자용 도서관이 별도로 있다는 글을 보았다. 그래 여기다.



1년짜리 연구자 패스를 할인된 가격으로 35유로 주고 끊었다. 연구자용 열람실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는 점, 긴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조용한 공간이라는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모두가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예약한 사람들만 좌석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1월에 졸업하면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지만 오늘 구입한 패스로 내년 8월까지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기에 나중에 공부하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nF)

미테랑 도서관(Bibliothèque François-Mitterand)이라고도 불리는 BnF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니 현대적인 건물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책 네 권을 세워 놓은 형태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국립 도서관이 보인다. 10시 이전부터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연구자 패스로 들어갈 수 있는 서쪽 입구로 발걸음을 돌린다. 돈을 주고 시간을 샀다. 건물이 유리로 되어 있어 지나가는 내 모습이 비친다. 짊어지고 가는 가방이 가벼워 보이진 않는다.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 놓고 곳곳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큰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모두들 에코백에 필요한 물품만 챙기고, 사물함에 남은 짐을 놓는다.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모르겠다. 다 필요한 것 같은데. 교복을 입을 때부터 “혹시 모르니까”라는 생각에 해야 할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던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고민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만 들고 들어가자는 생각에 노트북, 충전기, 업무 수첩, 펜을 넣었다. 혹시 몰라 가져온 이북리더기, 다이어리, 독서 노트는 사물함에서 고이 모셔두었다. 내일부터는 가져오지 말아야겠다.



카드를 찍고 들어가면 지하 4층으로 연결되는 두 대의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지하라고 하지만 여긴 또 다른 지상이다. 하늘이 뻥 뚫린 정원을 가운데 두고 열람실들이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붉은 카펫이 깔린 길을 쭉 따라 걸으니 내가 예약한 열람실 T에 도착했다. 데스크에 가서 예약했다고 말하니 카드를 확인하고 좌석을 배정해준다. 왼쪽을 보면 열린 창으로 솟아오른 나무와 하늘이 보이고, 앞을 보면 책들이 빼곡히 놓인 책장이, 오른쪽을 보면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하고 한 좌석씩 띄고 배정받기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반으로 줄었다. 이번 주 내내 예약하려고 했는데 열람실마다 다 차있어서 생각날 때마다 예약을 눌렀다. 수강신청 주워 담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예약할 수 있었다. 30일 동안 한 번에 5일을 예약할 수 있다. 자리를 예약해두고 3시간 동안 잠시 나갔다가 올 수도 있다.



열린 공간에 고요한 분위기의 커다란 도서관이라니. 이걸로 됐다. 내가 이사 온 이유를 찾았다. 2년 동안 캠퍼스에 있으면서 도서관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우리 학교는 건물 두 채가 연결되어 있고, 도서관이라고 해봐야 통계 관련 책들만 가득한 강의실 크기의 공간이다. 학교 내부에 있어 아침 8시에 열고 저녁 8시에 닫으며, 학교가 열지 않는 주말 또한 굳게 닫혀있다. 3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공간이기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공간이지만, 그래도 큰 도서관이 그리웠다. 한국에 있는 큰 도서관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근로 장학생으로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고, 시험 기간은 밤새는 공간이기도, 공강 때 잠시 눈을 붙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워하기만 했던 공간에 다시 발을 내디뎠다.



다음 주에 사수가 3주간의 여름휴가를 바치고 복귀한다. 물론 연구소 인턴인 나는 휴가가 없다. 지난 2주 동안 이사하느라 제대로 일을 못해서 마음이 급하다. 이번 주말 동안 집중해서 불태울 공간을 찾았기에 토요일에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사람들로 꽉 채워진 153번 버스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어.. 어…?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버스 문이 열리고 모두가 우르르 내렸다. 도서관이 종점인데. 여긴 어디인가. 도서관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반이나 더 가야 하는데 모두 내려야 한단다. 이유도 모른 채 내렸고, 트램을 타고 15분 걸어서 도서관에 왔다. 한 번 왔었다고 벌써 익숙해진 길을 걸으며, 다음에는 이 동네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고 반듯하고 도서관과 강이 옆에 있는 이 동네에.



목요일에 왔을 때는 회사원들로 북적북적했던 거리와 춤추는 학생들로 가득했던 도서관 근처가 고요했다. 서쪽 입구로 들어와 가방 검사를 하고, 필요한 물품만 챙겨서 다시 패스를 찍고 지하 4층으로 내려왔다. 지난번엔 T열람실이었는데, 오늘은 P 열람실이다. 정원을 바라보는 자리를 배정받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밀린 보고서를 작성한다. 3개월이 지났는데, 방법론들 사이에 관계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적어놓은 질문은 종이에 빼곡한데, 답을 찾는 걸 미루고 있는 나를 재촉해본다.



그래 여기다.
이걸로 됐다.
- 도서관을 찾아 행복한 8월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https://brunch.co.kr/magazine/chuckchuck



*이전 글 :

https://brunch.co.kr/@jijo/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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