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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겜노인 Nov 20. 2018

세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움직인 게임]  1세대 콘솔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1951년 군수 기업인 로럴 일렉트로닉스에서 TV 개발 부서에 입사한 직원 랄프 베어는 TV가 가진 여러 특징들을 알게 되고 이를 활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TV는 조금씩 보급형 형태로 발전했고 군대에서 TV를 시청 외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오랜 시간 봤기 때문이다. TV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는 걸 느낀 그는 퇴사 후 다른 군수 기업인 샌더스 어소시에이츠에 들어가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샌더스 어소시에이츠의 경영진은 흥미를 느꼈다. 가장 흥미를 끈 대목은 "TV 화면을 사용자가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심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경영진은 2,500달러의 개발 예산을 승인했고 랄프 베어는 다른 두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1969년 1월 그들은 시제품 '브라운 박스'를 발명해낸다. 하지만 당시 군수기업이었던 센더스 어소시에이츠는 이 제품을 직접 판매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랄프 베어는 시제품을 들고 TV를 생산하던 마그나복스社를 찾아갔고 이곳에서 라이선스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마그나복스 경영진 역시 TV 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있었으나 수요를 늘릴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소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사진출처: 디지털디스플레이닷컴>


이렇게 등장한 세계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가 바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진행 방식은 독특했다. 지금은 TV 화면을 외부 입력으로 전환해 게임 화면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당시 이 게임기는 TV 화면 내 간단한 색 표현 정도밖에 할 수 없는 형태였다. 그래서 게임 카드를 삽입한 후에 '오버레이'(Overlay)로 불리는 반투명 셀로판지를 TV 화면에 붙여 사용해야 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TV 화면에 붙여서 즐기는 보드 게임과 같았다.


당시 이 게임기는 CPU가 없는 단조로운 형태였다. 40개의 트랜지스터와 40개의 다이오드, 콘덴서와 저항기 등 100% 아날로그 회로로 구성돼 있었다. 화면을 넘어설 수 없는 형태이다 보니 대부분의 게임은 2인 플레이 형태였고 오버레이가 어떠한 제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냥 보이는 방식만 있어 말 그대로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상상하며 즐기는 수준이었다. 게임 카드 역시 롬이나 게임 프로그램 등이 담겨 있지 않고 본체에 내장돼 있는 게임의 스위치를 바꿔주는 회로 형태였다. 

제품도 제품이지만 게임 카드와 각종 오버레이, 점수판 등 부속기기가 눈에 띈다 <사진출처: 세컨옥션닷컴>


게임은 레이싱부터 미로 찾기, 하키와 테니스, 숫자 보드 게임 등 다양하게 구성됐다. 하지만 모든 게임들이 패턴을 주고받거나 아니면 제공된 컨트롤로의 다이얼을 특정 순서대로 움직이면 끝나는 단조로운 형태를 띠고 있어 파고들거나 오랜 시간 즐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당시 99.99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판매됐다.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과한 책정이었다.


결국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1975년 단종됐다. 단종의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과한 가격 정책도 있었지만 성공 여부를 불확실하게 판단했던 경영진의 소극적인 마케팅도 한 몫했다. 그 후에 마그나복스는 필립스에 인수된 후 후속 기기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1977년까지 8개의 하위 호환 게임기를 선보였고, 1978년 12월과 1979년 2월 각각 유럽과 북미 시장에 정식 후속 기기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2를 출시했다.

저렇게 TV 화면에 오버레이를 붙인 후 파란색 사격형의 움직임을 보고 즐겼다. <사진출처: 오디세이 TV CF 영상 캡처>


그래도 최초라는 힘은 강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경우는 하위 호환 기기를 포함해 총 35만 대 이상이 판매됐으며, 후속 기기는 1984년 3월 20일 단종까지 전 세계 약 2백만 대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장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 '아타리 쇼크'(1983년 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 붕괴 사건)가 터지면서  후속 기기는 유럽 시장에만 겨우 얼굴을 드러낸다. 필립스는 어쩔 수 없이 1984년 VG-8000 게임기를 선보이며 노선을 갈아탔고 더 이상의 오디세이 기기는 나오지 않게 된다.


이를 통해 랄프 베어는 첫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했다는 공로로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평생회원이 됐으며, 2006년에는 기술 분야의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미국의 대통령상인 '국가 기술 및 혁신 훈장'을 받았다. 이후 2010년 4월 미국 상무부가 추천하는 '국가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오디세이에 포함된 다양한 오버레이들. <사진출처: 타임퓨처즈 홈페이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게임 시장을 아케이드 센터나 카페, 놀이공원 중심에서 혼자 또는 가족이 즐기는 문화로 확장시킨 장본인이다. 그리고 북미 시장을 기점으로 가정용 콘솔 기기 대란을 일으켰으며, 아타리 쇼크부터 무수한 서드 파티 범람 등 디지털 시장 내 혁신과 변화를 이끈 게임기로 업계 관계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현재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소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기기에는 제작자인 랄프 베어의 사인이 포함돼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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