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요리생활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이요.”
이 한 문장이면 몇 분 뒤에 부드럽고 쌉싸름한 커피 한 잔이 내 손으로 들어온다. 이쪽과 저쪽 중에 누가 더 편리하자고 만든 건지 모르는 키오스크에서는 그런 말조차 필요 없지만. 그리고 우리는 그 커피 한 잔에 오천 원 남짓 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커피 원액과 거품 낸 우유가 뭐 그리 비쌀까 싶지만 편리함을 택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계산이 쉽다. 그리고 내가 지불한 수고로움의 값을 더 절절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집에서 직접 카페라떼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카페라떼를 만드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커피를 추출하는 것과 우유 거품을 내는 것. 먼저 커피 추출부터. 라떼용 커피는 드립커피(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보다는 에스프레소여야 한다.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면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는 얼마 전에 친한 누님이 주신 에어로프레스 기구밖에 없다. 먼저 원두를 갈아야 한다. 그 역시 전동이 있으면 좋겠지만 손으로 직접 가는 맛이 아날로그 감성을 채워준다는 믿음으로 수동 그라인더를 고수한다. 에스프레소용으로 분쇄도를 조절해 둔 그라인더에 강배전 돼서 짙은 갈색의 가벼운 원두 20그램을 넣고 돌린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다 보면 맷돌 형태로 된 강력한 그라인더의 내부 금속 부속의 우격다짐이 손으로 그대로 전해져 온다. 더러 터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바스러지기도 하다가 끝내 고운 입자가 되고 만 커피가루를 커피 전용 숟가락(수저 아니다)에 담아 큰 주사기의 피스톤처럼 생긴 에어로프레스 기구에 조심스레 담는다.
그 사이에 커피포트에서는 물이 팔팔 끓고 있는데 90도 언저리를 맞추기 위해 스위치가 내려온 다음에도 잠시 뜸을 들이듯 그냥 둔다. 피스톤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섞이게 저어줘야 하는데 긴 막대기 모양이면 아무거나 되지만 굳이 직접 만든 대나무 머들러를 쓴다. 다 감성 때문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마개에 필터 한 장을 채우고 피스톤을 막는다. 세게 눌러도 절대 부서지거나 깨지지 않을 듯한 단단한 컵에 에어로프레스를 엎어 두는데 머그컵보다는 스텐으로 된 밀크 저그가 실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안전하다. 그리고는 강력한 힘으로(제법 강력해야 한다) 아래로 누르면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는 커피가루는 이쪽에 머물러 있고 커피 원액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저쪽 밀크 저그로 뚝뚝 떨어진다. 최후의 힘을 다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면 납작한 원통 모양의 커피 찌꺼기가 남는다. 뚜껑을 열고 그대로 밀어내면 툭하면서 원두가 떨어져 나가고 커피 추출이 끝난다. 여기에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아메리카노가 되겠지만 라떼를 만들어야 되니까 잠시 대기.
전자레인지를 쓰든 중탕이든 직접 끓이든 우유를 데우기만 하면 되겠으나 기왕에 카페라떼를 즐기기로 했으니 거품을 올리는 건 필수다. 공기반 우유반(소리반 아니고)을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전제품 중에 다행히도 우리 집에는 에어로치노라고 하는 제품이 하나 있다. 먼저 내열유리로 된 드립서버에 우유 250미리 정도를 붓고 전자레인지에서 2분 정도 돌린다. 따뜻해진 우유를 에어로치노에 넣고 버튼 한 번 누르면 빠르게 회전하면 촘촘한 거품 층이 생긴다. 1분 정도면 충분하다. 차가운 우유를 데우면서 거품을 내는 기능도 있지만 영 미지근해서 미리 데운 우유를 쓴다. 이제 우유도 끝.
커피 원액을 예쁜 잔에 붓고 그 위에 거품 올린 우유를 부어주면 드디어 감성 충만 홈메이드 카페라떼가 완성된다. 말 몇 마디면 될 카페라떼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면 이렇게 수고롭다. 사람 손만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재료, 도구, 기계, 기기를 줄 세워 보았는데… 커피 원두, 우유, 물, 커피포트, 에어로프레스, 필터, 커피 숟가락, 그라인더, 저울, 머들러, 밀크저그, 드립서버, 전자레인지, 에어로치노 등 무려 14가지가 동원된다. 그저 커피와 우유를 섞어 놓은 저 음료 한 잔을 만드는 데도 이렇게 많은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니 나를 대신해 남이 해주는 모든 일에는 다 그만큼의 묵직함이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주말 아침이면 아내가 ‘라떼 한 잔 부탁해’ 할 때마다 홀린 듯 기계적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이 글 보여주며 생색 좀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