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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ul 24. 2022

주간 여름 제철 반찬

호박볶음, 깻잎나물, 고추찜, 고추장물


일요일 이른 오후가 되면 우리 부부는 둘만의 루틴을 시작한다. 한 주 동안 먹을 밑반찬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 보통 한 번에 서너 가지, 많게는 대여섯 가지의 반찬을 만들어 두기 위해 힘을 합친다. 물론 평일 내내 그 반찬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두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주중에는 대개 아내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으니까 내가 반찬을 만들어 두면 미안한 마음도 덜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정서적 케미도 좋지만 손발이 잘 맞는 편이다. 이를 테면 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아내는 설거지에 소질이 있다. 나는 칼질하고 조리하는 걸 즐겨하는 대신 아내는 밑작업을 잘 한다. 서로 좋아하고 잘 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주말에 반찬을 만들 때도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아내가 잘 다듬어 놓은 재료를 나는 그저 조리만 하면 된다. 누구 하나 불만이 없다.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 반찬을 내가 만들었다고 으스댈 필요도 없다. 우리는 피차간에 유용한 커플이다.



한 여름이다. 뜨겁고 습하다. 장마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하는 김에 땀흘리며 바짝 고생하면 한 며칠 편하게 집밥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반찬의 주제는 여름 제철 반찬이다. 지금 이 계절에 나는 가장 신선한 식재료로 밑반찬을 만든다. 시골과 이웃에서 날아 온 재료는 깻잎, 풋고추, 호박, 양파, 마늘이다. 재빠르게 조리하지 않으면 금방 상하고 물러질 수 있으니 있는 재료는 모두 반찬으로 만들기로 정했다. 모두 얻어온 것이라 재료 구입에 든 돈은 0원이다. 참으로 경제적인 반찬 만들기가 아닐 수 없다.



호박은 반으로 갈라 속을 파낸다. 속이 부드러워 먹을 만 하지만 파내는 것이 식감을 아삭하게 하는 데 좋다. 그래도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깔끔하게 파내지는 않았다. 남은 호박속이 익으면서 호박볶음의 농도를 높여주기를 기대하며. 껍질은 벗기지 않았다. 부채꼴 모양으로 잘라둔다. 양파는 채썰어 놓는다. 마늘은 다진다.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다가 호박을 넣는다. 강화도 외포리에 사온 최상급 육젓으로 간을 하고 마늘도 넣는다. 양파와 호박이 투명해질 때까지만 볶으면 된다. 참기름을 슬쩍 둘러 마무리한다. 통깨도 살살 뿌려서 모양새를 더한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지만 식어도 맛있다.



여린 깻잎은 데쳐서 먹는다.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다가 불을 내린다. 뜨거운 물에 깻잎을 넣고 데친다. 젓가락이나 집게로 뒤집어 주면서 골고루 데친다. 금방이면 된다. 찬물에 바로 헹궈서 더 익는 걸 막는다. 물기를 꽉 짜는데 너무 꽉 짜도 너무 흥건하게 짜도 안 된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적당히 하면 된다. 적당히 만큼 말 하는 사람 입장에서 편한 것도 없다. 뭔가 정확하지 않을 때 적당하게 퉁치고 잘 되면 내가 잘 가르쳐 준 덕분이고 잘 안 되면 네가 잘못 알아들은 탓이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당함을 일각에서는 손맛이라고 부른다. 다진 마늘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깻잎 자체의 향이 너무 강해서 굳이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조선간장과 참기름 또는 들기름으로 간을 한다. 통깨는 갈아서 넣으면 고소함이 더해진다. 사실 겉껍질을 깨야 고소해지는 통깨를 고명으로 올리는 것만큼 쪼오오오금 비효율적인 일도 없는 것 같다. 통깨가 내 입으로 열 개가 들어갔다고 치면 그 중에 내 이에 갈려서 속에 있는 배젓이 터지는 게 몇 개나 될까? 암튼 갈았든 통이든 볶은 깨까지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해주면 끝난다. 뜨거운 일광을 받고 독해진 깻잎무침은 비빔밥 재료로도 손색이 없는 향긋함이 있다.



우리 엄마의 반찬 중에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반찬이 고추찜이다. 그리고 풋고추가 단단해지는 지금이 바로 제철이다. 고추는 꼭지를 따고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적당히만 제거한다. 밀가루를 솔솔 뿌려서 고루 입힌다. 찜기에 아삭함을 잃지 않을 정도로 2~3분 쪄낸다. 고추의 크기나 두께에 따라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결국 적당히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추가 쪄지는 사이 양념장을 만든다. 고춧가루, 진간장, 다진마늘, 설탕 조금이면 충분하다. 밀가루 전분 때문에 투명해지고 끈적해진 고추 표면은 이제 양념장을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양념장과 함께 잘 버무리면 이것도 끝. 풋고추 특유의 풋내와 아삭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양념장과 잘 어울리는 반찬이다.



마지막 반찬은 경상도식 반찬인 고추장물이다. 이 반찬을 만들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 입맛이 똑 떨어지고 뜨거운 음식을 물리고 싶을 때 할머니가 만든 이 고추장물이 가족들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굵고 두꺼워서 찍어먹기도 부담스러운 고추를 고른다. 매운고추 반 풋고추 반이다. 길이 방향으로 반으로 가른 다음 다시 길게 자르고 잘게 다진다. 냄비에 자박하게 물을 붓고 다진 고추, 국물용 멸치, 조선간장을 넣고 바특하게 조린다. 조금 짜도 상관없다. 이용법은 이렇다. 찬물에 맨밥 말아 먹을 때 밥 한 술, 고추장물 반 술 정도 입에 넣는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보통 찐 호박잎을 먹을 때 강된장을 많이 먹는다. 고추장물이 강된장의 자리를 대신한다. 푹 쪄서 부드러워진 호박잎을 펴서 손에 올리고 밥 한 술을 얹은 다음 그 위에 고추장물을 다진 고추를 포함해서 끼얹는다. 호박잎의 사방을 잘 그러모아서 쌈을 만들어 먹는다. 까슬까슬한 호박잎의 잔가시들이 입천장을 놀라게 했다가 이내 호박잎이 터지면서 감칠맛과 알싸하게 매운맛이 밥 속에서 퍼졌다가 입 전체를 뒤덮는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긋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시골집 마루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한쪽 다리 세우고 앉아서 양은밥상 앞에서 먹으면 더 잘 어울리는 반찬이자 양념이다.



여름은 더워서 괴롭지만 그 더위 덕분에 잘 자란 채소들이 있어서 반찬을 만드는 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입도 즐거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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