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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02. 2023

우리집 신년요리는 돼지고기 수육

2023년 신년 맞이 요리는 수육.


이 요리는 간단하고 또 간단하다.

이름이 알려주는 대로 물에서 익힌 고기이다.

물에서 끓이는 고기인 만큼 아무 고기나 넣어도 수육이 되는데 그건 주로 돼지나 소에 해당되는 말이고 닭을 끓였다면 백숙이라고 한다.

연원을 알 수는 없지만 그리 통용되니 그런가 보다 한다.


그래도 수육 하면 아무래도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 친숙하기 마련인데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큰몫을 했을 것이다.

가격이 큰몫을 한 김에 돼지고기 부위 중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것이 어울린다.

우리집의 선택은 대부분 앞다릿살.

적당한 비계와 쫀득한 껍질이 근막을 경계로 맛과 질감이 조금씩 다른 앞다릿살이 제격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돼지 비계를 먹기 시작한 아내의 취향도 어느 정도는 고려했다.


보쌈이라는 메뉴명으로 배달시켜 먹는 이 수육은 집에서는 잘 해먹지 않는다. 고향에서는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서 늘 수육을 삶는데 1킬로그램이 넘는 다릿살을 칼로 찔러가면서 한 시간 이상 삶아도 핏기, 정확히 말하면 피는 아니고, 가 가시지 않아서 가운데로 갈수록 인기가 없다.

조상들 드시는, 조상님이 아니라 우리가 먹지만, 음식을 크게 올리고 싶은 후손의 욕심(!)이 수육을 수육답지 못하게 한다.


집에서 우리끼리 먹으니 조상님 눈치 볼 일이 없어서 나는 가능하면 한 근 정도의 사이즈로 자르거나 자른 걸 쓴다.

오래 삶으면 더 부드러워지지만 그냥 냄비에 무작정 오래 삶는다고 해서 정성이나 손맛이 더해지지는 않으므로 도구의 힘을 빌리는 편이 낫다.

압력솥이 없으면 전기압력밥솥에 고기를 넣고 물을 잠기게 붓는다.

사실 맹물에 삶아도 수육의 수육다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차피 쌈장이나 간장 또는 소금에 찍어 먹을 음식이고 갖은양념으로 치장을 해봐야 고기 속으로 스미기는 난망한 일이다.

이것저것 넣는 양념은 고기의 겉만 맴돌 뿐이어서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된다.

돼지고기 잡내 어쩌고 하면서 오만가지 신공이 떠도는데 뭔가 향신료를 이용해서 잡내를 감춰야 하는 고기는 도축한 지 오래되었거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육향을 잡내라고 하면서 때려잡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순간 가장 맛있는 고기는 닭가슴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된장과 대파만 조금 넣는데, 고기의 잡내(?)를 잡고 고기에 맛있는 향이 배어들기를 바란다기보다 남은 국물을 자른 시간부터 마르기 시작하는 고기 위에 끼얹어서 촉촉함을 유지하거나 진득한 국물로 배춧국이라도 끓여볼까 해서이다.


아, 밥솥에 물을 고기가 잠기게 붓고 너무 멀리 왔다.

뚜껑을 잘 잠근 다음 40~50분 정도 삶는다. 한 근 기준으로는 40분 정도 잡는다.

추가 딸랑이면서 추추하는 소리 때문에 압력솥을 의외로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은데(요리를 그렇게 잘 하는 우리 엄니도 그중에 한 분) 압력솥은 불을 켜고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는 게 더 위험하다.

추가 딸랑이면 아무 문제 없으니 쫄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40분이 지나면 고기가 건드리면 무너질 정도로 부드럽게 익는다.

이때 칼질을 잘 해야 하는데 잘 들지 않는 칼로 사정없이 누르면 고기가 결대로 바스러진다. 풀드 포크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우리는 잘 썰린 수육을 원하므로 아주 잘 드는 칼로 섬세하게 앞뒤로 움직이면서 천천히 썰어야 한다. 김밥 잘 말아 놓고 우직하게 누르면서 썰다가 옆구리 터트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이렇게 모양 좋게 썬 수육을 신년맞이 요리답게 우리집에서 가장 고가의 그릇에 담고 신선한 알배추와 쌈장을 곁들인다.

촉촉함을 유지하기 위해 젤라틴이 우려한 진득한 된장국물을 살짝 끼얹으면 비주얼과 맛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있다.


온 가족이 맛나게 먹었으니 신년맞이 요리는 대성공인데, 이걸 유튜브에 올리려고 촬영하면서 가장 있어 보이는 칼질하는 장면을 무려 네 가지 화각으로 찍었으나 직전에 녹화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남은 화면이 없다.

해당 장면만 다시 찍기 위해 이번 주말에도 수육이다. 가족들이 2주 연속 먹는 수육을 용서해줄지 모르겠다. 다음 주에는 수육이 아니라 보쌈이라고 주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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