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제국 "해군법"은 왜 제1차 대전을 일으켰을까

독일제국 해군법의 나비효과

by 역덕의 이야기

오늘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차 대전의 원인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 암살사건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면에는 다양한 요인이 적용되어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독일제국의 "해군법"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해군법이 1차 대전을 일으키는 불안전한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1898년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 2세"는 국회에서 해군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해군법은 총 1차와 2차에 걸쳐서 나뉘어 있습니다.


1차 해군법은 1904년까지 16척의 전함을 포함한 함대 구성을 명시했고 추가로 7척의 전함 구축을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전함 구축과 관련해서 매년 의회의 승인여부와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구축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1900년 통과된 2차 해군법은 초기 1차 해군법에 비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강하여 영국 및 프랑스를 따라잡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왜 빌헬름 2세는 해군법을 통과시켜 전함건조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요?


빌헬름 2세가 즉위하기 전 독일은 외교를 통한 현상유지에 더 집중했습니다.


이는 독일의 통일에 기여한 독일제국 수상 "비스마르크"의 역할이 컸습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은 마침내 통일하여 독일제국을 탄생시켰고 전쟁보다는 외교를 통한 유럽 내 평화를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확대한다면 유럽 내 최강국인 영국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독일은 외교를 통한 유럽 내 평화를 선택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40년 넘게 유럽대륙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888년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3세가 연이어 사망하면서 빌헬름 1세의 손자인 빌헬름 2세가 즉위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독일제국 황제의 자리에 오른 빌헬름 2세가 보기에는 왜 강대해진 독일제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에도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와 대립했습니다.


결국 1890년 비스마르크는 수장직에서 물러났고, 이제 빌헬름 2세는 자기 뜻대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당시 독일제국의 경제는 성장하고 나라의 위상은 커졌지만 식민지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경제규모의 경우 18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내에서 13%를 차지했지만 1910년대 초반으로 접어들면 30%를 넘는 대국으로 성장합니다.



빌헬름 2세는 독일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은 군함건조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빌헬름 2세는 미국의 해군 장교인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의 저서에서 크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 저서에는 해군력의 증가가 곧 국력의 증가와 연결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해군력의 증가가 곧 국력의 증가로 이어지니 빌헬름 2세 입장에서는 군함건조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독일의 경쟁 상대인 영국은 독일의 전함건조 초기까지만 해도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아직 강하고 프랑스와 러시아를 이용해서 유럽 대륙 내에서 독일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05년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하고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맺자 상황이 다르게 흘러갑니다.


러시아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유럽 대륙 내에서 프랑스 혼자서는 독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이미 1870년에 독일이 프랑스 파리까지 점령한 전적이 있으며 경제규모도 독일이 앞선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영국은 군사력을 판단할 때, "2개국" 기준을 사용했는데 2개국의 전함의 합계가 영국의 전함을 넘느냐가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1900년대 접어들면서 독일이 빠르게 추격하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전함의 합이 곧 영국을 추월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제 영국은 대리국 내세우는 대신 자신이 나서서 독일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영국과 독일은 앞다투어 서로 군함건조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는 막대한 재정과 희생을 투입하는 것이라 훗날 영국이 세계 패권을 미국에 빠르게 넘겨주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과 독일의 군함건조 경쟁의 팽창은 마침내 1914년 7월에 폭발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1차 대전의 원인 중 하나로 영국과 독일의 군함건조 경쟁을 본다면 오늘날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미국이 중국보다 군사력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특히 해양에서 활동하는 항공모함 전함 수에서 압도적입니다.


미국이 11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는데 심지어 전부 핵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전함들입니다.


반면 중국은 3척에서 4척으로 늘리고 있는 중이고, 러시아는 1척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핵이 아닌 비핵으로 움직이는 항공모함입니다.


과거 영국의 "2개국" 기준에서 본다면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항공모함 중에는 과거 소련이 건조하다가 망하자 중국이 2천만 달러를 주고 구매하여 개조한 항공모함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미국의 군사력이 여전히 압도적이어서 적어도 군사력 차이 감소로 인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미국의 고립주의로 인한 무관심으로 인해서 다른 나라들이 전쟁에 휘말릴까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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