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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Jun 01. 2024

D+185)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애엄마의 노력들

그땐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야 아기를 가진 순간부터 엄마가 됨을 느꼈지만 남편에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나에게 탑재된 모성에 덕에 아기가 너무너무 예뻐 보였고, 내 몸으로 열 달간 품었고, 내 배 아파서 낳았고,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먹일 수 있는 것도 나이고, 잠결에 아기 울음소리도 내 귀에만 들리는데. 아기를 다루는 것도 당연히 내가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배려해 준다고 새벽 담당은 내가 하기로 했으면서, 쿨쿨 코까지 골며 자는 남편이 왜 그리도 미워 보였는지.

아기가 신생아를 벗어날 무렵까지 남편이 왜 그리도 미워 보였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그저 열심히 회사 다니며 돈 벌고 집에 와서 아기 돌봐주며 집안일도 해 줬는데 나에게는 처음부터 모든 게 눈에 차지 않았다. 그땐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야 아기를 가진 순간부터 엄마가 됨을 느꼈지만 남편에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나에게 탑재된 모성에 덕에 아기가 너무너무 예뻐 보였고, 내 몸으로 열 달간 품었고, 내 배 아파서 낳았고,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먹일 수 있는 것도 나이고, 잠결에 아기 울음소리도 내 귀에만 들리는데. 아기를 다루는 것도 당연히 내가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배려해 준다고 새벽 담당은 내가 하기로 했으면서, 쿨쿨 코까지 골며 자는 남편이 왜 그리도 미워 보였는지. 신생아 시절, 아기를 쳐다보기만 해도 자꾸만 분비되는 옥시토신 덕인지는 몰라도, 서투른 정도가 아니라 아기를 딱 다섯 살 어린이 대하듯 하는 남편이 그리도 미워 보였다.


남편을 사랑해서 아기도 가진 거고 그래서 아기도 사랑스러운 건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다고 느낀 건 단유를 하고서 옥시토신 분비가 줄어들 때 즈음이었다. 단유 후 몸도 많이 회복되고 아기가 밤에 덜 깨니 마음까지 덩달아 회복됐나 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집에 와서 아기와 놀아주는 남편의 다크써클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힘든 일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 한 번도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일한 남편의 속마음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관절도 허리도 너무 아프다고, 하루 종일 아기 보느라 힘들고 지쳤다고 자주 표현했는데 말이다. 여전히, 남편은 별 말이 없다. 그저 웃는 얼굴로 회사에서는 별일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이 얼마나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를 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니 회사를 다니며 육아를 하는 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육아휴직 후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 했는데, 육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적을 했던 게 갑자기 미안해졌다. 그때의 내 눈에는 차지 않았을지언정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다만 10분이라도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집안 일도 도와주고 아기를 봐준 남편이 뒤늦게 고마워졌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래의 다섯 가지는 꼭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기 엄마라서 뿐만 아니라 나라서 더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첫째, 내가 더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힘든 내색을 최대한 하지 않는다.


내가 힘든 걸 주변의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 덜 힘들어진다고 착각해 왔다. 어릴 때 그런 식으로 친구도 잃어 봤고, 육아를 하면서 점점 더 털어놓지 않는 편을 택하게 된다. 힘든 걸 털어놓는 게 나는 후련할지 몰라도 듣는 상대방을 지치게 한다. 잘 생각해 보면 수고로운 임신출산육아를 선택한 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그런데 본인의 역할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의 힘든 점만을 항상 이야기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남편은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일상이 변하지 않았고 나는 일 하던 시간에 육아를 하려니 낯설고 어려운 건 맞다. 하지만 남편 역시 무거워진 경제적 책임감과 퇴근 후에도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처음이라는 걸 먼저 생각해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 역할을 나도 묵묵히 했을 때 서로 고마운 감정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둘째, 체력을 기른다.


잠이 부족하고 체력이 달리면 짜증이 느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신혼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냥 들어가서 자면 되지만, 이제는 그 여파가 가까이 있는 아기나 남편에게 가는 게 문제다. SNS 할 시간을 줄여 잠을 보충하고, 매일 꾸준히 산책과 운동을 통해서 체력을 기르니 더 기운차게 육아를 할 수가 있다. 내가 기운차게 육아를 하는 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문제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남편이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피곤에 찌든 모습이 아닌 밝고 기운찬 모습을 보였을 때 남편 역시 힘을 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셋째,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출산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만큼 육아로 인한 고통과 수고스러움 역시 그 나름의 숭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똥기저귀를 가는 일처럼 일면 자괴감마저 들 수 있는 일들은 더더욱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결과는 똥기저귀 가는 아기 엄마군.' 하는 식으로 끝이 없다. 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도 어릴 때 이렇게 컸겠구나.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구나. 나도 아기에게 그런 사랑을 줘야겠다. 그만큼 큰 인내심과 희생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거구나.' 이렇게 또 끝이 없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니 이것 역시 습관이 되어 간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예를 들면 응가를 씻길 때 아이가 비누 홀더를 꽉 쥔다던지 거울을 보고 씨익 웃는다던지 하는 작은 행동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씻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넷째, 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가진 것에 감사한다.


아내들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열 명의 친구 남편의 장점을 모아서 나열한 뒤 내 남편이 갖지 못한 것을 찾아내어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SNS의 늪에 빠져서 남편을 비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남편이 요리만 하고 뒷정리를 까먹는 것과, 바빠서 아기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 당근을 해다 주지 못하는 것 등 불평을 하기 바빴다. 하지만 좀 더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남편이 요리도 잘하고 직장도 성실히 다니는 등 좋은 남편이라는 사실에 더 집중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바라는 게 점점 더 없어진다. 내가 힘든 것을 남편 탓을 하기보단 그만큼 여유가 없어서 못했거니 하게 된다. 남편이 바쁘고 피곤해서 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직접 처리하면서 자립심도 키운다. 체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것은 잊어버리고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뿐이다. 나에게서 시작된 작지만 큰 변화가 결국 남편의 마음에 여유를 주기 시작했고 그런 마음으로 서로 빠른 육퇴를 위해 돕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다섯째, 지적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감사함을 표현한다.


부부끼리는 매일 생활 구석구석을 지켜보게 되기 때문에 지적하기가 참 쉽다. 오죽하면 치약을 앞에서부터 짜는지 뒤에서부터 짜는지 까지도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면 무지하게 밉다. 아이가 없을 때는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나의 지적이 많아질수록 남편은 육아와 살림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어차피 해도 내가 지적할 걸 알기에 더욱더 소극적으로 변한다. 남편이 육아와 살림에서 멀어질수록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기란 더욱더 요원해진다.


물론 지적하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기를 재운다기에 맡겨 놨더니 업무 전화가 와서 급한 나머지 입에 쪽쪽이를 강제로 물리려 한다던지, 수면교육을 한다고 아기를 자지러질 때까지 울리면서 게임을 한다던지, 이제 태어난 지 50일도 안된 아기에게 계란을 먹이려 한다던지, 신생아를 안고 스쿼트를 한다던지, 잘 쳐다보는지 궁금하다며 유튜브를 보여준다던지... 보는 시각에 따라 바쁜 데다 아기에 대한 디테일도 잘 모르고, 약간은 장난스럽게 하는 행동들도 있을 텐데 엄마인 내 눈에는 모든 게 너무 잘못돼 보였다. 그래도 아기 아빠라 아기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려고 하진 않았을 텐데. 지적을 하기보다는 내가 아기를 잘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방법을 물어봤을 때 알려준다거나,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하고 아기를 함께 돌보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남편에게 육아가 조금 더 즐거운 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잘 바뀌지 않는 것처럼 남편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뀌기 어려운 남편을 바꾼답시고 지적하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훨씬 나았다.




사랑해서 연애했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육아를 하면서 전우가 된다더니 정말 전투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것 같다. 한 명이 할당량을 조금이라도 채우지 못하면 나머지 한 명이 그 구멍을 메꿔야만 돌아가는 시스템. 휴직 중에도 이렇게 빈틈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이지만, 날 때부터 모성애가 탑재된, 엄마인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이해해주다 보면, 복직 후에도 어찌어찌 이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복직을 해도 아기는 여전히 나를 더 찾을 거라, 남편이 급여를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한 육아는 여전히 내 전담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가장으로서 느낄 중압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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