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예고 없이 찾아온 변화
막 42세를 넘긴 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세상은 똑같은데 나는 어떤 면에서 바뀌었고 그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모르기에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그런 답답함이었다.
이 즈음이었다. 의도적으로 나를 바쁘게 만들고 그때까지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의도적으로 멀리 했던 책을 다시 가까이했다. 책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오랜 꿈이었던 동화 쓰기에도 도전했다. 어떤 계기로 재테크의 세계에도 빠졌다. 할 일이 늘어나면서 그 기분 나쁜 느낌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 왜냐면 그것이 단지 '느낌'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40대 중반을 지나가고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노화' 였다. 다들 외모에 신경 쓰는 세상이라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고 젊게 입으면 예전처럼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몸의 노화를 내가 모를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속일 수 없었다.
유년기를 제대로 모르고 유년기가 지나가고, 청춘을 모르고 청춘이 지나갔다. 원하지 않는데 20살이 되고, 30살이 됐다. 시간은 자신의 규칙대로 흐르면서 준비됐든 준비되지 않았든 나를 어떤 '시기'에 가두어버리곤 했다. 나는 항상 뒤늦게 깨닫고 허둥지둥 그 시기에 맞춰 살아가는 태도를 바꿔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나? 전과는 다르게 그게 막막했다. 청소년기, 청년기에 대한 책이나 영화는 많지만 중년, 노년에 대한 책은 드물다. 인생의 영광은 청년기에서 끝이고 중년 이후의 삶은 내내 쇠락하는 것일까? 자랑스럽지 못해 되도록 숨겨야 하는 것일까?
노화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싸워서 되도록 멀찍이 밀어 버려야 하는 걸까? 육체의 노화는 그렇다 쳐도, 정신도 그에 맞춰 기어를 한 단계 낮추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청년의 정신상태로 평생을 사는 게 바람직한 걸까?
나를 찜찜하게,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기분 나쁜 느낌의 정체는 바로 이 질문이었다.
미모나 가족의 후광은 애초에 제로. 부도 명예도 없고 대단한 사회적 지위도 없다. 남편은 자신의 질문과 싸우는 가련한 동년배일 뿐이고 아이들은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50대 여자의 인생도 가치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에서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5년 후인 47세. 드디어 답을 찾았다.
이제 남들의 인정을 원하지 않는다. 자랑도 하지 않는다. 자랑할 것도 별로 없지만, 설사 생기더라도 자랑하고픈 욕구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여전히 모범생이나 우등생은 아니지만 쳐다보기만 해도 예쁘다. 남편은 단점 많은 나약한 한 인간이지만 같이 나이 들어가는 게 안쓰럽고 한없는 애정과 연민을 느낀다.
세상에 대한 불만도 별로 없다. 내가 돋보이지 않아도 좋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즐겁다. 그리고 일부는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일부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낸다.
모든 시작은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 갔았던 5년 전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그 힘든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서 기록으로 남겨 보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중년의 문턱에 선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