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라는 너무나 낯선 단어

by 줄라이


40세 이후 몸과 마음이 꺾이고 이제 쇠락과 퇴장만 남은 것인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절정에서 물러나야 하는 나는 인생에서 패배한 것인가?



늘 그렇듯이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10살 전에는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고 10대에는 오히려 해가 바뀌고 한 살씩 나이를 먹는 것이 신나는 이벤트였다. 나이에 대해 민감해지기 시작했던 시기는 20대 중반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취직과 연애, 결혼. 이런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들을 앞두고 있는 나이여서 마치 스톱워치를 켜 둔 것처럼 시간에 민감했었다.


20대에는 도저히 40대를 생각할 수 없었다. 건방지게도 ‘그 나이에 더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 자신이 40세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였다. 늘 어렸고 젊었기에 나의 어휘 사전에는 ‘나이 든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이 듦’이란 것은 나와 관계없는 개념이었다.


30대는 너무 바빴다. 취직과 결혼이라는 인생 과제를 겨우 해결하고 나니 30대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 더 여유 있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기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가 전부였다. 개인적으로 20대 후반을 불행하게 보냈던 기억이 있는 나는 정말로 확신이 들 때까지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 2년 정도 정신적으로 여유롭고 안정된 시간을 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시계는 멈춰있지 않았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째깍째깍 울리며 엄마 되기를 재촉했다. 그것은 종족 보존을 위한 유전자의 명령이었다. 과학자들은 현대인들의 이성과 지성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는 원시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전자의 프로그래밍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결혼한 부부라면 몇 년 안, 늦어도 10년 안에는 아기 갖기를 시도한다. 내 주변만 봐도, 아이 없이 사는 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뿐이다.


스스로 원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유전자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대감에 차서 엄마가 되었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낳으니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터울이 많은 아이들을 둘 낳고 키우면서 30대가 그야말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일하면서, 아이들 키우면서,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마치 전쟁 같았다. 행복한 순간이 정말 많았는데도, 전체적으로 보면 순식 간에 지나간 시기였다.


둘째 아이를 늦게 낳아 키우다 보니 어느덧 41세였다.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고 키우느라 몸은 엉망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피부는 칙칙했고 염색을 하지 않으면 머리는 반백이었다. 우선 살아야 할 것 같아 둘째 아이를 조금 이른 나이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운동을 했고 아이 키우느라 늘어진 옷들을 다 버리고 산뜻한 옷들을 샀다. 나름 비싼 미장원에도 가고 가방도 사고 육아 때문에 중단했던 일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42살의 봄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이대로 45살이 되고 50살이 되는 건가? 겁이 덜컥 났다. 30대에 50대를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30대에는 50살이 여전히 먼 미래였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알고는 있는 나이여서 동네 엄마들과도 ‘이러다가는 금방 50대 되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장난 삼아 나이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이 듦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42세에 바라보는 50세는 현실이었다. 둘째가 학교를 들어갈 때면 46세,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50대가 되는 것이다. 아마 둘째를 늦게 낳지 않았더라면, 아니 둘째 아이가 없었더라면 흐르는 세월에 대해 더 빨리 자각했을 것이다. 다른 여자들은 30대 후반부터 나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때부터였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30대에는 육아책 이외에는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정적인 성격인데 책을 많이 읽으면 더 수동적이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20대를 보냈던 나는 30대에는 일부러 책을 멀리 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받을 곳은 도서관 외에는 별로 없었다.


동네 독서클럽에 가입해서 다양한 책을 읽었다. 하지만 30, 40대 엄마들의 관심사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었다. 나는 서점에서 40대 이후의 삶에 대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방법은 주로 독서, 공부, 재테크, 자격증 따기 등이었다.


독서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하면서도 반발심과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바꿔야 한다면, 지금까지는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는 건가?’, ‘그냥 열심히 살았더니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든 것뿐인데 그럼 열심히 산 것이 잘못인가?’, ‘꼭 바꾸어야 하나?’, ‘잘 살고 있는지, 못 살고 있는지 그걸 누가 결정하나?’ 같은 의문이었다.


돈이 더 많아서, 자격증을 몇 개 더 따서, 유명해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해야 할 일들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전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 계획은 딱 30대까지가 전부였다. 40세 이후, 50세 이후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를 키우는 데만 관심과 신경이 쏠려 있어서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아이들 키우고 대학 보내고 나면 나에게 뭐가 남을까? 이제 은퇴자금 마련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까? 그냥 이대로 돈 벌고 가족들끼리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걸까? 쓸쓸하고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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