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기에는 무섭고, 포기하기엔 서글픈

빛을 잃어가는 중년의 외모

by 줄라이
무엇보다도 내 외모를 바라보는 기준은 ‘현재의 나’가 아닌 ‘과거의 나’다.
가장 젊고 파릇파릇할 때에서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내 눈은 여전히 ‘예전의 나’에 맞춰져 있다.



‘중년 여성’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좋게 표현해서 ‘중년 여성’이지 사실은 그냥 아줌마다. 요즘은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아도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몸매가 날씬하고 옷차림이 세련되고 화장과 머리가 잘 정돈되어 있으면 40대 초반까지는 선뜻 아줌마라고 부르기 어렵다. 하지만 40대 후반부터는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세련되어도 ‘아줌마’ 말고는 달리 부를 말이 없다. 자타공인 ‘중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남성들의 경우, 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다. ‘미중년’, ‘미노년’이라는 말도 있듯이, 외모가 괜찮으면 나이 들어도 나름의 매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남성들의 성적 매력이 외모보다는 능력이나 재산, 사회적 지위 같은 것으로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냥 외모만으로 본다면 50대 남성은 영락없는 ‘아저씨’다.


40대 초반에 동네 책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이 있다. 회원들은 나와 같은 또래 거나, 조금 더 나이가 많거나, 30대 중반의 주부들, 육아휴직으로 잠시 직장을 쉬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래도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통해서 나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임에 나온 40대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요즘은 사진 찍는 게 너무 싫어.”

“사진 속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거울 보는 것도 싫어. 엘리베이터에서 비친 내 얼굴이 진짜 나인가 싶어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

“증명사진 찍을 일이 있어도 안 찍어. 그냥 옛날 사진 인화해서 쓰는 게 낫지.”



사진 찍을 일이 있어도 되도록 뒤로 멀찍이 물러나 있는다. 가까이서 찍으면 주름이나 피부 잡티가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몰랐다. 엄마가 또래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에서 왜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 어색했는지. 팔자주름이나 눈가 주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니 표정이 밋밋해지고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여자들이 명품 가방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대략 40 대 부터인 것 같다. 요즘은 나이에 상관없이 명품 가방을 좋아하지만 20, 30대에는 비싼 가방을 가지고 다니기에 스스로 좀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20대는 그 자체로 빛이 날 때라서 비싼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다니면 가방이 자신의 빛을 눌러버린다. 사람들은 20대가 든 가방이나 입은 옷보다는 그들의 빛나는 피부와 생기,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30대에 명품을 좋아하면 ‘된장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30대는 직장 여성이라면 한창 일에 바쁠 때이고, 결혼한 전업주부라면 아이들 키우느라 눈 코 뜰 새 없는 나이다. 인생에서 가장 할 일이 많을 때라서 명품 가방보다는 실용성 있는 가방이 어울리는 것 같다. 하지만 40대부터는 본인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좋은 가방이 한 개쯤 있어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중년 여성들이 명품 백을 선호하는 이유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나이가 들면 외모의 빛이 사라지면서 아무리 좋은 곳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 몸매가 두루뭉술 해지면서 실루엣이 살지 않는다. 중년 여성들이 라인을 감추는 원피스를 입는 이유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옷은 단순하게 입고 대신 가방에 힘을 준다. 옷에 투자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으니 사람과는 독립되는 '가방'에 대신 투자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중년이란 액세서리나 가방으로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매력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다소 서글픈 시기인 셈이다.



게다가 비싼 가방을 들면 굳이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 어떤 곳에 살고 경제력은 어느 정도고....’ 이런 말을 애써 에둘러서 할 필요가 없다. 가방이 곧 경제력을 드러낸다. 적어도 '대충 입고 나왔지만 돈이 없지는 않다'는 구차하게 들리는 변명을 할 필요가 없다.


몸매가 날씬하다고 젊은이처럼 입을 수도 없다. 무릎, 팔, 다리, 목, 조금씩 다 나이 들어서 젊은 스타일의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TV 프로그램에서는 40대 후반이면서 20대처럼 보이는 ‘최강 동안녀’들이 등장한다. 함께 20대, 30대를 보낸 연예인들은 40대 중반이 넘어서도 여전히 귀티가 나고 우아하다.


밀착 관리를 받는 연예인들과 일반인이 같을 수 없는데도, 우리의 눈높이는 이미 터무니없이 높아져 있다. 또래 아줌마들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연예인들의 늙지 않는 외모를 보면서 한숨이 나오기 쉽다.


무엇보다도 내 외모를 바라보는 기준은 ‘현재의 나’가 아닌 ‘과거의 나’다. 가장 젊고 파릇파릇할 때에서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내 눈은 여전히 ‘예전의 나’에 맞춰져 있다.


세상을 더 오래 산 어른들은 ‘지금이 남은 삶 중에서 가장 젊고 예쁠 때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미래의 나를 모르기도 하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나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모에 많이 집착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도 중년이 되니 외모의 변화 때문에 우울해지곤 했다. 예전에 어른들이 ‘젊다는 것 자체로 눈이 부시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또래 중년 여성들이 모이면 아이들 공부 외에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화제가 보톡스, 필러 같은 ‘쁘띠 성형’이다. 동년배의 여성들 중에서 조금 더 젊어 보이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의술의 힘을 조금씩 빌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혼란스러우면서 무섭게 느껴졌다.

‘쁘띠 성형이라고 해도 혹시 나중에 더 이상해지지는 않을까?’

‘나이 들어서 얼굴에 손대면 인상이 확 변한다던데 괜찮을까.’


무엇보다도 이런 것에 신경 써야 하는 내가 싫어지고 슬퍼졌다. 100세 인생이니 앞으로 살 날이 50년이나 남았는데 점점 더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만 해도 암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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