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젊을 수만 있다면
몸 여기저기에서 아프다고, 늙어 가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그 소리를 계속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중년’이라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기분 나쁘고 불친절한 경고였다.
위기감은 제일 먼저 외모 변화에서 찾아왔다. 만약 물리적인 변화가 크지 않았더라면 나이가 드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의미를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쾌하지 못한 사실은 늘 외면하기 마련이니까.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젊게 산다. 일단 염색 기술 덕분에 60세, 70세가 되어서도 젊을 때와 같은 머리 색깔을 유지할 수 있다. 아마 몇십 년 전이라면 주름이 없고 몸매가 젊더라도 희끗희끗한 머리 때문에 당장 나이가 탄로 났을 것이다. 흰머리만 감추어도 10년은 젊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피부가 노화되지 않도록 늘 관리하기 때문에 깊이 파인 주름도 없다. 관리만 잘한다면 50대여도 충분히 30, 40대처럼 보일 수 있다. 제삼자가 얼핏 보기에는.
하지만 자신의 눈은 속일 수 없다. 20대 중반, 나이를 처음 인식했을 때도 수치상의 나이 축적보다는 신체적 변화에서 나이 듦을 자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피부 탄력이 조금씩 떨어진다고 느꼈다.
로션 하나로 만족하고 피부에 신경을 안 쓰다가 갑자기 영양 크림이라던가 아이 크림을 사들인 것도 이때부터다. 사람도 동물인 만큼 호르몬의 변화, 신체의 변화가 먼저 오고 이런 생리적, 물리적 변화가 정신적, 정서적 변화를 재촉하는 것 같다.
몸이 늙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아마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10대 후반의 신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비로소 사춘기의 정신 상태가 된다. 마찬가지로 40대 중반의 신체 변화는 중년과 노화라는 것이 먼발치에서 구경할 수 있는 남의 일이 아니며 노력한다고 피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나의 경우에는 피부나 몸매의 변화보다는 건강 상의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일단 노산 때문인지 온 몸이 너무 아팠다. 키보드를 많이 두드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쑤셨다. 게다가 늦둥이를 키우느라 어깨, 목, 허리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운동을 했다. 2, 3달이 지나면서 몸의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혈압이기 때문에 혈액이 순환되지 않아 몸이 아팠던 것 같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활동성을 높여 주었더니 몸도 아프지 않고 손발도 조금 따뜻해졌다. 그 전에는 밤에 두꺼운 양말을 신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는데, 운동을 하면서부터 양말을 신지 않고도 잠을 잘 수 있었다.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더 큰 문제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눈이었다. 나는 원래 시력이 좋지 않다. 아니, 시력은 부차적이고 시신경, 망막 등 전반적인 눈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갑자기 시력이 팍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과에 갔다가 내 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못 관리한다면 실명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이었다. 시력을 잃는다면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도 볼 수 없다. 원래 눈이 좋지 않았지만 그동안 아이들이 잠든 밤에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늦게까지 무리하게 일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계속 실의에 빠져 있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면서 눈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눈에 좋다는 보조식품을 구입하고 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라이프스타일로 바꾸었다. 일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꾸준히 운동을 했다.
다행히 눈 상태는 더 나빠지지 않고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이대로 잘 관리한다면 큰 문제없이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허리와 목 통증이 찾아왔다. 난생처음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뜸 치료를 받았다.
계속되는 병치레에 실소가 나왔다. 갑자기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평소에 부모님 나이의 어른들을 보면 늘 자신의 건강 걱정에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뿐이어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어딘가가 고장 나서 병원신세를 지게 되자 그분들의 위축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의원에 다니면서 목이나 허리 통증은 비교적 빨리 나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에는 온몸이 간지러운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다. 참을 수 없이 간지럽고 긁으면 그 부위가 보기 싫게 부어올랐다. 말로만 들었던 눈 떨림도 왔다. 병원에서 마그네슘을 처방받았는데 눈 떨림과 같은 증상은 피곤하면 흔히 올 수 있지만 파킨슨씨병 같은 질환의 전조 증상인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원래 혈액순환이 좋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그 말에 더 우울해졌다.
별문제 없이 평소처럼 건강하기만 하다면 나이 듦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오니 노화를 자각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잠을 깨어 보니 얼굴과 목, 배 등이 식은땀으로 덮여 있었다.
그래도 40대 중반까지는 병원을 다니면서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었다. ‘진짜 내 몸이 늙어가고 있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40대 후반부터였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느라 밤에 숙면을 할 수 없었다. 방광도 근육인데 나이가 들면 근육의 탄력이 줄어들어 버티는 힘이 떨어지는 것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일모레면 50이었다. 40대까지는 그런대로 젊게 봐주지만 50세가 넘으면 도저히 젊다고 우길 수는 없는 나이다. 화장, 염색, 옷 등으로 외모 나이를 낮출 수는 있지만 우리의 DNA 안에 애초에 부여받은 생체 나이를 속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아직까지는 자연의 질서와 규칙 앞에서 개별 인간은 무력했다.
흔히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에서 아프다고, 늙어 가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그 소리를 계속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중년’이라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기분 나쁘고 불친절한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