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시간성이란 대체 뭘까

청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년도 아닌 그 애매모호함

by 줄라이
육체나 외모가 여전히 젊었더라면 그 젊음에 도취되어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다음 단계로 무방비 상태로 내팽개쳐졌을지도 모른다.



중년이란 한마디로 낀 세대다. 인생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눈다면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가 전반기에 해당하고 중년기와 노년기는 후반기에 포함될 것이다. 3단계로 나눈다면 유년기를 1단계, 청년기를 2단계, 노년기를 3단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경우에는 청소년기가 1단계와 2단계의 과도기이고 중년기가 2단계와 3단계의 과도기가 된다. 어떻게 분류하든 간에 중년기는 청소년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맞는 애매모호한 시기인 셈이다.


중년이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절정을 지나 조금씩 시들어가는 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예 바싹 말라버리거나 씨만 남은 식물보다 활짝 핀 후에 조금씩 색깔이 바래고 생기가 사라지는 식물이 더 보기 싫은 법이다. 피고 지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사실을 안다면 쇠퇴기를 불쾌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다만 일본 작가 사카이 준코의 말처럼 ‘시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세대’가 중년이기 때문에 중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젊고 예쁜 것, 싱싱한 것, 절정인 것이 아름답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보기 싫다’, ‘추하다’는 판단에는 인간의 가치가 개입되어 있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보기 싫다고 해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사실은 보기 싫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보기 싫다는 것은 남에게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매력이 없다는 것은 곧 외부의 주목과 사랑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이성을 유혹할 필요가 없고 사랑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생산력이 감퇴해가고 서서히 사라져 가는 시기. 그것이 중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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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치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중년의 쇠퇴하는 생산성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외부에 시선을 돌리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시선을 뺏는 방해거리, 외부의 유혹에서 벗어나 인생 후반부에 맞게 서서히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젊게 입고 젊은 음악을 듣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면 활력이 생기고 젊어진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행동을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풀 죽어 있고 우울한 표정으로 권태감에 찌들어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활기차게 사는 게 나을지 모른다. 사실, 사회도 이렇게 살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TV에서는 ‘당신은 여전히 젊고 매력적이에요. 이 옷을 입고 이 신발을 신고 이런 라이프스타일로 살면 계속 매력적이고 젊게 보일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중년과 노년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나는 인생의 각 단계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거나 ‘사람은 나이 값을 해야 한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말을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어느 시점부터 나의 몸이나 마음속에서는 ‘더 이상은 아니다. 이제 그럴 시기는 지났다’는 외침이 조금씩 들리고 있었다.


만약 머리가 여전히 검고 얼굴에 주름도 없고 탄력도 넘쳤다면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하며 밀어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들어가는 젊음이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메신저’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인생의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육체나 외모가 여전히 젊었더라면 그 젊음에 도취되어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다음 단계로 무방비 상태로 내팽개쳐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의술의 힘을 빌리고 돈을 좀 들이면 외모적으로 젊어 보이는 시기를 최대한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 아니 10여 년이 지난 후에는 지금 느끼는 간극이 더 혹독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기를 뛰어넘어 아이가 어느 한순간에 어른이 될 수 없듯이 청년이 갑자기 노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년기와 청년기 사이에 청소년기가 있고 그 시기에 아이들은 각자의 반항, 질풍노도, 미친 짓을 거쳐 어른이 된다. 어른에 못지않게 껑충 자란 신체, 왕성한 성호르몬의 분비가 순진한 아이를 청소년으로 만들어 놓는다.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은 아이들이 직업을 갖고 거친 어른의 세상에서 돈을 벌며 살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파릇파릇한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노인이 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청년기가 끝나기 전에 인간은 다 자살할지도 모른다.


청년기가 미래를 향해 정신없이 질주하는 시간이라면 노년기는 과거를 곱씹고 정리하는 시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중년의 시간성이란 대체 뭘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년이란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서양에서는 의외로 중년(50대)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경제활동과 육아로 바쁜 30대의 만족도가 가장 낮고 20대의 만족도가 두 번째로 낮았다. 50대는 돈 벌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헉헉대는 시기가 지나고 비로소 숨을 돌리는 시기라는 것이다. 아주 나이가 많지도 않고 아직은 육체적인 힘이 남아 있는 시기다.


나는 지금 50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10년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통과하게 되는 건가? 물론 경제적, 정신적으로 30, 40대보다는 50대에 더 여유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보기에는 떠나가는 젊음이 못내 아쉽다. 올해가 지나고 나이 앞자리가 확실히 ‘5’로 바뀌게 되면 조금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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