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아, 내가 깜빡했네.
오늘 엑스맨 신작 보러 간다는 것을 말 안 했네.
10시 영화니까 저녁 먹고 9시까지 업무 마무리하고 출발하자.”
그의 말을 iOS 개발팀장이 받아서 말했다.
“앗! 안 그래도 그거 보고 싶었는데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씨, 왜 또 갑자기 영화야?
영화 볼 시간에 그냥 집에 가서 쉬면 안 되나?
영화를 같이 볼건지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이건 너무 강제적이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 뻔했다.
“나는 나 혼자 봐도 돼.
근데 너네 고생하니까 회사 복지 차원에서 너네 스트레스 풀어주고,
너네 최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잖아.
블라블라블라….”
이런 레퍼토리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말할 것이 뻔했다.
나 하나 때문에 전체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팀원들도 그런 말을 못 하게 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그의 말을 3시간씩 듣기보다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제일 좋은 관인 영등포 스타리움으로 했으니 다들 재미나게 보자.”
“네, 감사합니다.” X9
우리는 항상 회사 테이블에 앉아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앉는 자리도 그가 정해준 지정석(?)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부사장, 담주 주말에 사업가 후배 지아 결혼식이다.
내가 아이맥 선물해 주기로 했으니
법인 카드로 구매해서 내가 말해주는 주소로 보내줘라.”
그리곤 내게 말했다.
“지아 결혼식에 iOS, 안드로이드 팀장 두 명 보낼 거고,
나도 따로 가지는 않을 거다.
요즘 할거 많으니까 너도 출근해서 일해라.”
“아… 네… 넵! 알겠습니다.”
경조사는 되도록 빠지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고,
사업 초기 지원 프로그램 동기였던 지아 결혼식이었기에 되도록 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뜻대로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이 있다.
‘왜 지아의 결혼 선물을 법인 카드로 구매하는 거지?’
내 상식에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곳은 그의 제국이었기에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할 수 있었다.
지아 결혼식 선물뿐 아니다.
자신의 집에 의자가 고장 나도 법인 카드로 구매했다.
집에 필요한 생필품도 자신의 집 근처에서 법인 카드로 구매했다.
생각해 보니 입사하기 전 나를 포함한 사업가 후배들에게
저녁을 살 때도 법인 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봤다.
그에게 법인 카드는 개인 카드와 동일했다.
나는 아직 업무용 컴퓨터도 지급받지 못했는데,
자신을 위한 것들에는 아주 손쉽게 회사 카드로 결제를 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업무용 컴퓨터는 언제 사주실까요?”
라고 없어 보이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퇴사할 때까지 업무용 컴퓨터를 받지 못했다.
나는 내 개인 컴퓨터로 업무를 봤다.
며칠 후 첫 월급날이 되었다.
그가 말했다.
“얘들아 이번 달도 부탁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