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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닝풀 러닝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나를 알아가는 시간]

by Changers

오늘로 미닝풀 러닝을 한 지 967일이 되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습니다. 러닝을 하며 힘들고 어렵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짜릿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미닝풀 러닝을 했기 때문에 겪을 수 있었던 순간입니다. 처음 미닝풀 러닝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긴 2022년 5월 30일의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러닝을 하다가 미닝풀 러닝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기억에 남는 순간들입니다.



3위 대장 내시경을 위한 72시간 단식 후 러닝


2024년 봄에 컨디션이 안 좋았습니다. 마침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하는 해여서 겸사겸사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위, 대장 내시경을 위해서 일주일 전부터 식단 관리를 했어야 했습니다.


제가 몸이 안 좋을 때마다 약보다 효과가 좋았던 것은 단식이었습니다. 몸살이 심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거나 복통, 설사가 있을 때마다 1~3일 정도 단식을 하면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건강 검진을 위해서 식단 관리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식을 하면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검사받기 4일 전부터 단식을 했습니다. 단식을 하는 기간에도 러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러닝은 제 삶의 코어 습관이자 원동력이거든요.


하지만 단식을 한 지 72시간쯤 지난 후 뛴 러닝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 말고는 먹은 음식이 없다 보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그날따라 날씨도 조금 더워서 어지러웠습니다. 두통도 생겼습니다. 물을 마셨지만 괜찮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식을 중단하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거나 먹으면 내시경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병원에서 지정해 준 음식 중 석촌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으로 갔습니다.


너무 급하게 먹으면 체하고 탈이 날까 봐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과일 주스를 곁들여서 포만감을 더 많이 주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음식을 섭취하고 나니 몸이 다시 회복되고,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2위 생애 첫 42.195km 풀코스 마라톤


2023년 9월 15일은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루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42.195km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뛰었기 때문입니다. 정식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아니고, 혼자 석촌호수를 뛰었습니다. 석촌호수 1바퀴가 대략 2.5km 정도 되기 때문에 17바퀴를 뛴 셈입니다.


원래 9월 11일에 풀코스를 뛰려고 했으나 그날 챙겨간 물통을 누군가가 버리거나 챙겨가는 바람에 멘털이 흔들려서 10km에서 중도 포기했습니다. 다음날 9월 12일에도 도전했으나 10km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몸 컨디션이 좋고, 달리는 리듬이 좋은 어느 날 뛰어야겠다고 목표를 조정했는데, 9월 15일에 그 느낌이 와서 뛰었습니다.


10km가 지나고 하프가 지난 다음부터 정말 힘들었습니다. 몸도 머리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몸은 아프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머리는 힘들다 그만하자는 생각이 계속 들게 함으로써 저를 지치게 만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명상을 하며 집중하는 훈련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나는 꼭 생애 첫 풀코스를 뛰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거다!’라는 말을 계속 생각하면서 혼자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무념무상으로 달리게 만든 덕분에 한 번의 하프가 끝났지만 아직도 하프가 남았다는 고통을 준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37km 구간은 마의 구간이었습니다. 평소 5km 이상을 뛰기에 5.195km는 별로 어렵지 않은 거리인데 풀코스 마지막의 그 거리는 저를 정말 힘들게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저와의 싸움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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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싸움이 끝나고 42.195km가 되는 순간, 올림픽에서 본 마라톤 선수들처럼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온몸에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냥 몸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왜 선수들이 그랬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다음날 온몸이 너무 쑤시고 쓰라리고 아프고 힘들었지만, 저는 미닝풀 러닝을 뛰었습니다.



1위 생애 첫 하프 마라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1위는 생애 첫 하프 마라톤을 뛴 날입니다. 2022년 5월 26일입니다. 미닝풀 러닝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겨우 하루 4km를 겨우 뛰던 완전 런린이 시절이었습니다. 회사를 이직하는 중간 휴식 기간 3주 동안 저는 보통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려고 합니다.


2022년 4월 24일에 첫 10km를 뛴 이후 러닝에 자신감이 살짝 붙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귀엽습니다. 꼬마 아이가 자기 달리기 잘한다고 말하며 성인 선수들 앞에서 우쭐대는 것 같은 상황이니까요. 그때 친하게 지내던 동생 한 명이 페이스북에 하프 뛰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올렸습니다. 바로 그 동생한테 톡으로 물어봤고, 관련 자료들을 보내줬습니다.


제 단점이자 장점이 빠르게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거기다 자신감까지 살짝 붙은 상태라 정말 무식하게 밀어붙였습니다. 6월 2일부터 출근하면 당분간은 절대 하프를 뛸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면서 이때 꼭 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 뛸지 날짜를 정했습니다.


하프를 뛰기로 한 날, 어떤 준비도 없었습니다. 평소 4km 뛰는 복장으로 나갔습니다. 단, 혹시 목이 마를까 봐 물만 출발 전에 500ml를 마셨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따라 하지 마세요. 정말 무식한 방법입니다. 수분 보충은 중간에 꼭 해주셔야 합니다.


처음 5km까지는 괜찮았으나 8km 지점부터 허벅지가 아프고 무겁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못 뛰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12km 구간에서 잠시 괜찮아졌고, 다시 힘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15km부터 산산조각 났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뛰면 하프야. 다시 하프를 뛰려면 이 아프고 힘든 걸 다시 해야 돼. 이번 한번 하고 당분간 안 하면 되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라고요.


그렇게 저를 달래 가며 정말 어렵게 러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0m를 남겨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생애 첫 하프 마라톤을 1위로 뽑은 이유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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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러너스 하이!!!

지금까지 러닝을 하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니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 몰려왔습니다. 하프를 뛴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머리부터 온몸의 털이 모두 쭈뼛쭈뼛했습니다.


그때 그 순간 그 기분을 아직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꾸준하게 달리다 보면 언젠가 또 느끼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러닝을 하면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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