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3월의 바람이 머리카락을 종종 공중으로 띄웠다.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내 발아래서도 들린다. 할머니는 걸걸한 목소리로 “너 힘들다, 팔 아프겠다”라면서도 내 팔을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할머니께 의지가 된다는 것에 뿌듯한 나머지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조선시대와 근대가 한데 섞인 풍경. 저 너머 분수대 너머로 석조전이 눈에 들어왔다. 덕수궁은 중학생 때 이후 근 10년 만에 오는 것 같다. 나뭇가지는 앙상하고 보이는 경치는 갈색 일색이지만 날씨만은 화창했다. 할머니와는 함께 추어탕을 먹은 날 이후 두 번째 나들이다. 이중섭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할머니 모습에 마음이 동했던 차에 출퇴근길 미술전 홍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었다.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이중섭의 작품을 비롯하여 1920년대부터 1970년대의 회화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라고 했다. 할머니께 미술전에 대해 소개하고 날을 잡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창 추운 시기를 지나고 날이 조금 풀리면 가자고 하여 당도한 것이 오늘이었다. 중화전 앞에서 함께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석조전으로 향했다. 웅장한 기둥에는 미술전을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건물 출입문으로 가려면 스무 단이 넘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할머니는 뜨헉 하는 소리를 내고는 다른 길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계단을 오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친구랑 오거나 혼자 왔으면 계단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 중에 걸어 올라갔을 것 같은데, 할머니와 함께 다니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옆을 스치며 지나가서는 일행과 대화하며 무리 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 계단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벽처럼 보이고 있었다.
“할머니, 같이 한 칸씩 천천히 올라 가면 괜찮아요. 가실래요?”
할머니는 작게 끄덕이고는 내 팔을 힘껏 움켜잡았다. 한쪽 팔로 할머니의 등을 받치고 한 칸, 한 칸 걸음마가 서툰 어린아이와 오르듯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건물에 들어서니 미술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많은 인파 속에 크게 떠드는 사람이 없어도 웅성이는 목소리가 중앙홀에 울렸다.
조도를 낮춘 전시실에 줄 서듯 들어가 작품을 감상했다. 기대하고 갔던 이중섭의 작품은 <흰 소> 한 점이 있었다. 할머니가 잘 보실 수 있도록 뒤편에 서서 떠밀리지 않게 몸으로 지탱하고 할머니를 앞쪽으로 보냈다.
“할머니, 이중섭의 흰 소예요.”
눈높이에 맞춰 걸려 있는 액자가 할머니께는 살짝 높아 고개를 들고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할머니의 옆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 모습을 찍고 싶은데 미술관 규정으로 찍지 못하는 것이 사뭇 아쉬웠다. 박수근 작품도 네 점 봤는데, ‘빨래터’가 너무 작아 놀랐다. 이 조그만 작품이 40억 원대라니. 아직 미술 작품을 보는 법을 모르는 나로서는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라는 실감도 잘 안 나고, 그저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가 떠오를 뿐이었다.
전시실을 주욱 돌아본 뒤 홀로 나왔다. 한 층 위에도 전시가 있어 올라가려 했는데 할머니는 더 안 봐도 되겠다고 하며 계단 옆에 마련된 벤치에 앉으셨다. 인파에 치여 떠밀리듯 그림 앞을 지나온 것만 해도 많이 고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나 여기 있으면 되니까 너 가서 보고 와.”
벤치에서마저도 사람들 속에 부대껴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집에 갈까요?”
“아냐. 나 무릎 아파서 앉을 수만 있으면 돼. 가서 둘러보고 와. 나 여기서 계속 있을 거야.”
가 보라며 손짓하는 할머니는 살짝 웃어 보였다. 뜬금없게도 맨 얼굴에 립스틱만 살짝 칠하고 나온 할머니가 그 주변 모든 사람들 중에 제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얗고 윤기 나는 피부에 소처럼 큰 눈망울. 어렵게 발을 떼고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보니 할머니가 어서 가라며 손짓했다.
전시관을 돌다 보니 흑백사진의 이미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1930년에서 1950년대의 풍경이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모습으로 재현된 것이 낯설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 시대를 살아왔고, 당연히 색채가 있는 그때를 기억하실 것이라 생각하니 사뭇 다른 시대를 살아온 분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걸음 가는 대로 돌아보다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수묵담채화 앞에서 발이 멈췄다. 변관식 ‘내금강 보덕굴’. 어마어마한 크기에도 압도되었지만 그 산세를 어찌나 수려하면서도 힘차게 표현했는지 금강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보는 것보다 이 그림이 더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걸 어떻게 그렸지? 종이 위에 엎드려서 그렸나?”
“그러게? 어디 걸 수도 없겠다. 걸어도 사다리 타고 그려야 할 것 같은데.”
듣고 보니 나도 궁금했다. 제일 처음 붓을 댄 지점은 어디였을까. 위를 보니 까마득한 높이에 하늘을 찌를 듯한 암석이 실제로 서 있는 듯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석조전을 뒤로하고 나와 궁궐 내 중화문을 바라보는 나무 벤치에 앉았다.
“이중섭 작품이 하나밖에 없어서 아쉬우시죠?”
“허허, 이중섭이? 소 한 마리 봤으면 됐지. 이번에 천경자 그림을 많이 봐서 좋았네. 네 다섯 점 있었지?”
“네, 맞아요.”
“천경자의 그 색깔이랑 느낌이 나는 너무 좋아.”
“오······. 천경자를 좋아하시는 건 또 처음 알았네요!”
“그렇습니다!”
서로 짓궂은 말투로 대화를 끝맺고 잠시 조용히 궁궐을 걷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흙과 자갈을 밟는 소리가 어릴 적 소풍 갔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날도 풀리고 날씨는 좋고, 이 공기와 이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침묵을 지키며 고요하게 숨만 쉬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할머니는 요리하지 말고 저녁을 사 들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할머니도 소풍의 기분을 내고 싶은 걸까? 어린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하며 찬성했다. 아파트 앞 백화점 식품관에 들러 왕만두를 골랐다. 따끈한 만두가 든 비닐봉지를 흔들며 함께 꼭 붙어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것만으로도 포근했고 향긋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