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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힝맨 Jun 19. 2021

사람은 셋으로 나뉜다

절대로, 그래도,어차피의사람

 어제 미팅에서 제가 '어차피'라는 말을 매우 많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어차피'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IT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고작 여섯 번째 글에서 IT를 벗어났어!)


 공지영 작가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는 사람을 절대로, 그래도, 어차피의 사람으로 나눕니다. 이 사람을 구분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가슴에 남습니다. (공지영 작가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이야기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해해주세요. 오로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소설에 사람의 구분하는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하려 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소설을 요약하자면 절대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화자와 그래도, 어차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세 사람은 여자로 모두 바람피우는 남편을 두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 세 사람이 바람피우는 남편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절대로의 사람이란 자신의 신념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 사회적인 시각,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자신의 신념 그대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자신의 신념이 꺾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죠. 이 사람들은 자신이 다치는 것도, 자신이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도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절대로'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거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화자가 절대로의 사람인데요. 바람피우는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주변의 만류와 이혼녀라는 낙인을 감수하며 이혼을 합니다.


 어차피의 사람이란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란 없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살아갑니다. '어차피' 현실은 이렇게 될 테니까 빨리 순응해 자신을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두려워해요. 무슨 말을 해봤자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 자신도 상대도 상처입지 않게 침묵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어차피의 친구는 바람을 피우는 남편과 싸우지 않고 결혼을 유지해요. 이혼으로 입게 될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쇼윈도 부부로 사는 것을 선택해요. 절대로의 화자가 이혼을 한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처럼 쇼윈도 부부로 살면 절대로의 화자가 겪을 어려움을 격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죠.


 그 중간에 그래도의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로의 사람처럼 절대적인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도의 사람은 자신이 상처 입는 것은 괜찮지만,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을 두려워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그래도의 친구는 바람피우는 남편 때문에 자살을 합니다. 절대로의 화자는 그래도의 친구가 자살한 것을 안타까워해요. 이혼 따위 나에게 별거 아니라며 견뎌내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쇼윈도를 감수하든 할 것이지 왜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을, 자신만 상처 입을 선택을 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죠. 삶의 방향성은 아주 작은 차이였는데 작은 각도 차이가 세월이 흘러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말하며 소설이 끝나요.


 사람을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이 방법이 굉장히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구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지 알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면 덜 후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떠한 선택을 할 때 나는 절대로 이것을 해야 하는지, 그래도 이것을 해야 하는지,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평소 자신의 성향과 맞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자주 바뀌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제가 스타트업을 하고 수많은 상처를 입었던 이유는 이것을 잘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래도'의 사람인데 절대로의 사람을 동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사람들이 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을 견뎌내는 것이 멋지게 보였던 것이겠죠.


 그리하여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을 '적당히' 고수하다가 결국에는 꺾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현실적인 생각을 했느냐? 언제나 저의 의사 결정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라는 말이 앞에 붙어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스타트업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겠죠. 스타트업은 '그게 되겠어?'라는 물음표를 '그게 되네!'라고 바꾸어 나가는 과정인데, 저는 '그게 되겠어?'가 그대로 '그게 되겠어?'로 남아있었으니까요. '그게 되겠어?'라고 말하면 '그래도 해봐야지.'라는 대답을 해왔습니다. 결국 '그래도'의 사람이 '절대로'의 옷을 입으려 했으니 어울리지 않고 삐그덕 거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던 것을 후회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분노와 후회, 좌절로 점철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라며 똑같은 선택을 할거 같아요. 


 그런데 어제 미팅에서 '어차피'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어차피 이렇게 될 텐데. 어차피 해봐야 안 될 것을 아는데. 


 이렇게 말하면 마치 절대로 / 그래도 / 어차피의 사람이 마치 단계적으로, 우열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절대로의 사람이 현실을 파악하지 않고 매 번 실패할 수도 있고 어차피의 사람은 매 번 현실적이고 정확한 선택으로 매 번 성공할 수도 있겠죠. 절대로의 사람이 수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어차피의 사람이 적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그러니까 이 관계는 절대 우열 관계가 아니죠. 어쩌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흔히 말하는 개혁적인, 엔터프라이즈 쉽을 갖춘 스타트업 인재들은 대부분 '절대로'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대표적으로 스티브 잡스를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팀원들을 상처 입히며 '우리는 똥을 만들었어!'말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러나 타인만을 탓하지 않아요. 자신이 똥 같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견딜 수가 없어서 정말 멋진 제품을 만들어내죠. 


 절대로 에 동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이제는 '어차피'가 되어가는 것을 발견하니 기분이 묘해요.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어차피'가 되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젠 과감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반 발, 혹은 한 발 빼는 습관이 생기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하는 것들이 있다 보니 상처는 상처대로 입고 있는 것 같아요. (뭐야 쓰고 보니 역시 그래도가 맞잖아?)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이 길어졌는데, 사실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였어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앞에 어떤 말이 붙는가를 알게 된다면

'덜 후회할 수 있는 결정,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치 저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 말이죠.


 "사람은 타고난 자연스러운 본성이 있고, 이것이 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나쁜 점만 제거하면 좋은 점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겁니다."라고 말하는 시골의사 박경철 작가의 말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본성을 거스르는 것보다 자신이 가진 나쁜 점만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삶에서 훨씬 바람직한 거 같아요. 자신이 절대로든, 그래도든, 어차피든 말이죠. 절대로는 자신이 굳건하다고 해서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조심하고, 그래도는 그래도 시도할 일과 포기할 일을 구분해내면 되고, 어차피의 사람은 어차피 하고 받아들일 일과 노력해야 할 일을 구분해내면, 모두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제 주변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좀 들어본 이야기일 거예요. 하지만 저는 더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네요. 오늘 저녁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생각해 보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과 이 주제로 수다를 떨어 보는 것. 꽤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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