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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Oct 14. 2022

부모와 불안정 애착을 맺은채 어른이 되었다(1)


내가 25살, 정신병원에 다닐 때다. 이런저런 검사를 많이 했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부모와의 애착 검사’였다. 우울증에 걸린 건 나인데 왜 부모에 대해서 검사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병원에서 하자는 건 다 했다. 끈적한 늪에 발이 묶인 것 같은 이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에 다녔기 때문이다. 의사선생님이 굿을 하자고 하면 몇 번 망설였겠지만 결국 작두라도 탔을 거다.


나는 전형적인 불안정 애착이었다. 검사 결과는 내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던 내 행동 패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었다. 난 내가 뭘 원하는지 몰랐다. 내가 뭘 할 때 기쁜지 몰랐고, 누군가가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해도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의 감정과 생각에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이러한 성격은 어릴 때부터 과하게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아이들이 가지게 되는 특징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의 싸움이 잦을 경우,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아빠를 비난하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빠를 미워하게 되고, 엄마에게 매달리게 된다.그리고 엄마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길 원하는지, 내가 무엇이 되길 원하는지 과하게 눈치를 보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가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는 사람을 잘 믿지 못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 잘해주면 나를 만만하게 보고 사기를 칠 것 같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기는 해도 마음을 마구 표현하지 못했는데,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 상대가 날 떠날 것 만 같았다. 이런 알 수 없는 마음 역시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나의 성격이었다.아이가 울 때 일관적으로 사랑을 주지 못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이런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여기까지 설명해 주었다.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했다. 이번 생은 완전히 망했다. 엄마 아빠에게 이 검사지를 던지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 엄마 아빠 때문이라고!!!!!!!!!!!”


내가 이렇게 성격이 거지 같은 것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라는 20대에 정신과에 들락거리고 있는 것도 모두 부모 탓이었기 때문이다.


참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거지 같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은 나중에 알고 보면 다 쓰레기였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한 선배는 따르는 후배들이 참 많았다. 리더십 있고, 술값도 척척 내는 그런 멋진 선배였다. 마음속으로 참 많이 좋아했는데, 이 선배는 술만 마시면 집에서 키우는 작은 강아지를 때린다고 했다. 저 선배의 우락한 팔뚝에 한 대 맞아서 파트라슈가 된 나를 상상하니 금방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아, 또한 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게 된 사람인데, 나이 차이가 꽤 많은데 나한테 은근히 잘해줬다. 어린 남자들처럼 졸졸 쫓아다니면서 선물 사주고, 연락하는 게 아니고 은근히 잘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아는 것도 많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나이는 좀 많이 차이 나지만 한번 만나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유부남이 총각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숨겨둔 딸이 둘이나 있다나...


“비슷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게 됩니다. 돈, 권력, 학벌은 속임수일 뿐입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게 되고, 다시 고통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의 형성은 부모님과의 애착관계에서 만들어집니다.”


"아... 씨"


또 저 애착관계. 저놈의 애착관계가 또 내 인생에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작전을 다시 짰다. 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을 일부러 밀어냈다. 나와는 참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른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다.


나의 자존감은 100점 만점에 25점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이 ‘비슷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게 된다’고 하셨으니 원래 대로라면 나는 25점 정도의 남편을 만나서 50점짜리 가정이 되었을 것이다.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나머지 50점의 자존감을 돈이나, 자식을 통해 채우면서 괴로워하며 살았을 것이다.


25점짜리 나는 운이 좋게도 (혹은 고의적으로) 자존감 95점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다. 나는 여전히 이 남자가 혹시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지랄했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침착하고 우직하게 날 사랑해 주었다. 내가 뭘 잘하지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겐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가끔은 이 사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발작처럼 지랄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편은 그대로였다


내 자존감은 바닥에서 조금씩 조금씩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도 괜찮구나,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날 예쁘게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78킬로가 되어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내 자존감의 점수가 올라갔다.


나는 하마터면 나의 부모님을 완전히 용서할 뻔했다. 좋은 사람을 만났고, 나의 고통이 완전히 끝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부모님과는 연락을 줄이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똑같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말이다. 첫아이를 낳고 연락도 자주 안 하고 지내는 엄마와 아빠가 또다시 너무너무 너무나 미워졌다.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모유 수유하고 잠이 오지 않는 새벽 4시쯤 되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는 다른 작전을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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