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요? 왜요?
입학식 다음날.
눈 뜨자마자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고, 핑크색 이불은 낯설기만 했으며, 3월이면 꽤나 포근한 부산과는 달리 머리카락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서울 날씨도 낯설었다.
아, 그뿐이랴! 눈이 얼어서 길 곳곳엔 얼음이 있었고 못 보고 밟았다가는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모르는 길을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곤한 일이기에 등교하는 것부터 고난도였고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하루가 다 끝난 것 같았다.
아침부터 비몽사몽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갔다. 룸메이트 언니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눈 덕에 비몽사몽에도 기분은 좋았다. 나름 음대 학생 마냥 쉬폰 치마에 플랫 슈즈까지 신고 멋을 부렸다.
실용음악과는 필수적으로 앙상블 수업을 들어야 한다. 팝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른 악기들과 함께 합주하고 일주일에 한 번 공연을 해야 한다. 한 번 배정이 되면 한 학기 동안 (학교마다 다르다.)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앙상블 조 발표는 마치 예전 반 발표와도 같았다.
다 같이 모인 합주 공연장.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이 잘하는 사람인 거 같던데 저 사람이랑 같은 조 되면 좋겠다. 아.. 쟤는 별로라던데.. 뭐.. 나는 잘하나.. 내나 잘하자...'
두둥! 발표가 났다! 같이 연주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이랑 하게 되었다. 마치 온 우주의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달까!
바로 각 조로 흩어졌고 당장 다음 주에 해야 하는 곡을 배정받고 개인 연습시간을 가졌다. 연습은 늘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기마다 하는 가장 큰 공연이 있는데 그 공연을 위해서 달려야 했다. 전공과목이나 필수 과목들도 있었지만 늘 학교에서 주가 되는 것은 앙상블이었다.
5월 말이나 6월 초가 되면 모든 수업들이 그 큰 공연을 위해 휴강을 해주기도 했다. 실기 시험 날짜가 조정될 만큼 그 공연은 큰 공연이었다. 그 공연이 끝나면 술자리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MT도 안 가고 싶어서 도망친 사람인데.. 공연보다 술자리에 가야 한다는 걱정이 더 컸다.
나의 1학기는 정신없이 흘렀고 공연 당일이 되었다. 큰언니가 예약해 준 덕분에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전공인 사람들이 몇 달을 준비한 공연인데 당연히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소한 사고 하나 없이 성황리에 끝마쳤다.
그러니 뭐다? 술자리에 가야 한다. 술 이라고는 입에도 대본적이 없는 내가 술자리라니.. 무서웠고 걱정스러웠다. 친구들은 못 마셔도 괜찮다며 위로했지만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 얼굴도 잘 모르는 교수님이 날 부른다.
"진아야 여기로 와봐~"
"아 네!"
"너 부산에서 왔어??"
"네!"
"이야~ 너 그럼 오빠야 ~ 한 번 해봐~"
"네?"
"야~ 기분 좋게 오빠야~ 한 번 해보라니까?"
"네? 제가요? 왜요? 오빠야가 아니잖아요. 왜 해야 되는데요?"
"아 진짜 됐다 됐어"
애교 섞인 말투로 "오빠야~"를 해보라니..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여기는 왜 이렇게 이런 것에 집착하는지 의문스러워졌고 무엇보다 기분이 나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미친놈이 내보고 지한테 오빠야 라고 하란다이가 또라이 아이가? 아 진짜 열받네"
블라블라...
엄마는 내가 해코지를 당할까 봐 빨리 집에 가라며 걱정했다. 쏜살 같이 집으로 가서 나는 언니들과 밤이 떠날 때까지 실컷 떠들었다.
어찌어찌 한 학기가 끝났고 나는 방학 시작과 동시에 부산 본가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공연 때 무리를 해서인지 코가 자꾸 붓는 느낌이 나서 이모가 소개해준 이비인후과를 갔다. 축농증이 만성이 되다 못해 코가 흘러나와 딱딱하게 굳어버려서 코 안에 카메라를 넣을 수 없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아놔 이게 무슨 자다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이 학기를 어떻게 적응하면서 보냈는데!!!! 왜 아픈 건데!!! 싶었지만 부산으로 바로 갔고 한 달 뒤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오빠야'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에피소드이지만 저 날을 이후로 다짐했다. 저런 것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무던히 맥일 수 있는 (?) 어른이 되겠노라고.
그런데... 이젠 저런 농담을 내게 건네는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