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을 동고동락한 사람들.
최장신의 연예부 기자, 어딘가 모르게 4차원인 것 같은 번역가. 나와 8년을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들이다.
기자 언니는 7살 위로 언니였고 번역가 언니는 9살 위로 언니였다.
언니들은 어린 새내기인 나를 그저 귀여워해 줬다. 내 삶을 지지해 줬고 지금 나의 정체성에 부모님 만큼이나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낯선 입학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낯설고, 집도 낯설었다. 집에 들어오니 언니들이 있었다.
"진아 씨 입학식 어땠어요?"
기자언니가 물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눈물을 꾹 참고
"사투리 써서 부끄러웠어요."라고 말했다.
언니들은 노발대발하며
"말도 안 돼! 그게 부끄럽다니!!!" 라며 떡볶이를 먹자고 했다.
집 앞에 있는 떡볶이 가게에서 떡튀순을 사들고 우리는 밤새도록 얘길 나눴다. 따뜻했고 좋았다.
얼굴도 모르는 연예인 얘기, 이번에 번역하는 책 이야기, 세계 여행을 한 이야기 등
내가 부산에서 살았다면 듣지 못했을 신기하기만 이야기들이 영화처럼 매일 이어졌다.
길고 긴 썸에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소개팅을 해서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친구랑 다퉈서 마음 둘 곳 없을 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을 때, 과제가 너무 많고 알바도 해야 해서 버거울 때.
그때마다 언니들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지켜줬다. 따뜻하게 커피를 내려주기도 했고, 치킨과 맥주를 먹다가 잠든 내 위로 이불을 덮어주기도 했다.
"진아 씨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요. 혼자 있을 때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좋은 사람을 곁에 둘 수 있어요." 이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이 룸메이트랑 머리끄댕이를 잡고 뒹굴며 싸웠다는 이야기, 룸메이트가 청소를 안 해서 화장품을 깨트렸다는 이야기 등 학교를 가면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들도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인데 지금의 내 모습보다 더 언니 같았다. 내가 서울말을 못하고 집이 학교와 조금 멀어도, 여기저기 온통 모르는 곳이었던 서울에서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언니들 덕분이었다.
입학식 저녁은 그렇게 언니들과 시간을 보냈고 당장 학교를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내 눈앞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바로 첫 앙상블 팀을 만나게 될 텐데 이상한 애들이랑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늘어선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