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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06. 2023

너 서울말 못 해?

어. 못한다.



당당하게 서울에 있는 학교를 합격했는데 지낼 곳이 없었다. 친척집에 당분간은 얹혀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입학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여전히 거처를 정하지 못했고 빼도 박도 못하고 이모네에 가야 하게 되었다.




입학 이틀 전. 둘째 언니의 친구가 서울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고 혹시 내가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모네 보다 학교도 가까워서 망설일 것도 없었다. 심지어 아파트!! 오예!! 정말 깨춤을 추고 싶었다.


"보증금 얼마 주면 되는지 물어봤나?"


"안 줘도 된단다. 대신 지 여행 가면 집 좀 봐달란다."


그렇게 나는 보증금도 안 내고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다음날 나는 바로 빨간색 배낭에 당장 필요한 짐만 넣고 서울로 출발했다.



20년 동안 살았던 집, 내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슬픈 일이었고 올라오는 기차에서 3시간 내내 울었다.

의외로 엄빠는 울지 않았는데 나중에 듣기로 그날 밤에 엄마는 목놓아 울었다고 했다.




슬픔도 잠시, 당장 입학식이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고 길을 잃을까 봐 아빠가 뽑아준 지도로 (그땐 스마트폰이 없었다.) 학교를 찾아갔다.


'오 시험 때 봤던 사람이다.' 속으로 생각하자마자 말을 걸어온 친구.


"어? 우리 그때 봤었지? 너도 붙었구나! 어디 살아?"


"아 나는 삼양동 산다."


"헐 나 노원 살아! 이따 같이 갈래?"


"아 맞나, 근데 내가 여기 길을 잘 몰라서 노원이 어딘지 모르는데.."


"아~ 삼양동이 먼저구 ~ 그다음에 노원쯤이야~ 너는 경상도에서 왔어?"


"아 어."



경상도에서 왔냐는 말과 함께 내가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이 저만치 부드럽다니. 서울 사람들 대박이다.라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수유, 노원에 사는 애들끼리 뭉쳐졌다. 어쩌다가 나도 그 틈에 꼈다.

햄토리 같은 머스마 하나가 다가왔다.


"누나 나는 수유 살아~이따 다 같이 가는 거 알지?"


내가 얘보다 누나구나;


"아 어어~"


"누나 경상도 사람이라며??? 사투리 엄청 잘하겠네??"


"아 그냥 뭐 말하는 거지 잘하고 못하고 가 어딧노.."


"와 대박이야 진짜. 티비 같애. 그럼 서울 말 못 해??"


"어 못한다."



입학식에 대한 기억은 온통 '사투리' 밖에 없다. '서울말'을 잘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모두 낯설었고, 티비로만 보던 서울은 막상 와보니 너무나도 넓었으며,

2호선 밖에 없던 부산과 다르게 지하철 노선은 엉킨 실타래 같이 복잡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애들을 술을 마시러 간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적응 단계라 미안하지만 먼저 집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면 이제 룸메이트 언니와 본격적인 얘길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또 두려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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