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Oct 30. 2023

니가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내가 처음 받은 관심.



IMF를 직격탄으로 맞은 우리 집은 일어설 수 없었다.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갑자기 새벽부터 일을 해야 했고 아빠는 사라졌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학원 한 번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다.

가끔은 학원을 다니는 애들이 부러워서 학원 앞 계단에 앉아 있어 보기도 했다.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게다가 나는 다섯 남매 중 가장 문제아였다. 공부는 놓은 지 오래되었고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처럼

티비만 보거나 정처 없이 동네를 걸어 다니곤 했다.


중학생이 되니 공부를 못하면 실업계 고등학교라는 곳에 진학해야 한다고 겁을 주더라.

중요한 건 나는 그게 겁나지 않았다는 거.

그만큼 감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래들은 실업계를 갈까 봐 두려워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나는 그런 것쯤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간도 크다)



아빠가 왔다.


"니 진짜 실업계 갈꺼가? 어? 니 공장 다닐래? 뭐고 니 진짜로 어?!"


"어"


"니 마음대로 해라. 나는 이제 니 모른다."


집이 뒤집어졌다. 이제 와서.

성적이 좋든 안 좋든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실업계'라는 한 마디에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귀가 좋아서 한 번 들은 곡은 곧 잘 따라 칠 수 있었다.

이 이상한 재주로 교회에서는 이미 반주를 한 지 5년 차였다.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부모님께 얘기했다.


"내 피아노 하고 싶다 시켜도"


"뭐라하노"


"피아노 하고 싶다고 학원 보내도"


"안된다"


대차게 거절당했다. 다시 물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매정하게.

그래도 그 이상한 재주가 있으니 연주하고 싶은 노래를 모았고,

꽤 비슷하게 따라 치는 정도까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다되어 갈 무렵 다시 얘기했다.


"재즈 해보고 싶다. 피아노 시켜도"


"재즈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진짜 저게 왜저라노"


또다시 묵살. 


되는 줄 알았는데 엄마가 내 방으로 왔다.


"가을에 할 수 있게 엄마가 도와줄게. 지금 니 혼자 하는 거 그거라도 열심히 해봐 봐"


9월이 되어서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아빠는 여전히 반대했지만.




현역으로 시험을 보기엔 어려웠다. 실용음악의 문턱이 가장 높을 때였기 때문이다.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고 아빠는 또 반대했지만 온 가족이 내편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집을 떠나 살기로.


"내 서울로 대학 갈 거다."


"니가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어, 등록금 미리 준비해라. 그때 가서 돈 없다 하지 말고"




매섭게도 몰아치는 겨울바람을 뚫고 서울로 올라와서 시험을 봤다.

혹시나 몰라서 최대한 많은 학교에 지원했다. 합격 통보와 함께 내 재수 생활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봐라 내가 간다했제?"


"등록금 준비 됐다. 니 기숙사에 사나?"


아 맞다. 기숙사 신청은 몰랐는데. 그럼 나 어디서 지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