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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쓰고 있다

by 햇님이반짝


"된장찌개 데워놨으니까 덜어 먹어"


말아놓으면 밥인지 죽인지 구분되지 않을 것 같아 알아서 먹으라고 했다. 기다릴 틈이 없다. 나도 얼른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출근 전에 걷기 위해.


이불 안으로 다시 파고들기 전에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 선선한 기운이 반갑다. 혹여나 서늘할까 싶어 얇은 바람막이를 걸쳤다. 집 근처 공원에 도착하니 어느새 바람막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허리에 묶었더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코끝이 시리기 전에 걸어야 한다. (겨울 와도 걷겠지만) 낙엽 떨어지기 전에 누려야 한다. 상쾌한 공기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지금. 아침에 걸어도 좋고 저녁에 걸어도 좋은 계절 가을이다.



이어폰을 끼고 [하와이 대저택] 영상을 듣는다. '여러분은 성공합니다. 여러분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곡도 달라진다. 걸을 땐 주로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 하루하루가 아쉬워 부지런히 걷고 있다. 출근 전에도 점심시간에도 걷고 퇴근 후에도 걸었다. 시간마다 공기의 느낌도 다르다.


걷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몸 건강이고 두 번째는 정신 건강이다. 분노를 식혀 준다. 걷지 않았다면 중등 딸내미 두 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먼저 일어난 동생이 씻으러 들어간 게 못마땅한 언니는 얼른 나오라고 문을 두드린다. 아침부터 실랑이 벌이는 일 보기 전에 나와야 했다. 셋째,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초록색이 좋다.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눈에 담아야 한다. 넷째, 혼자 있을 수 있다. 다섯째, 글을 쓰기 위해서.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새로 생긴 이유다.

걷다 보니 글이 써지기도 했다. 글이 써지니 또 걷고 싶었다. 오로지 땀만 흘리기 위해 운동하지 않는다. 생각하기 위해서도 걷는다. 주야장천 앉아만 있는다고 써지지도 않더라. 쓰고 싶어서도 나오고 쓰기 싫어서도 나온다. 공원을 걷다 보면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 한 바퀴 두 바퀴 돌다가 한 문장이 생각나 메모해 둔다. 유튜브에서 하는 말을 기억하고 싶다. 이런 기분 좋은 기록이 모여서 또 쓰게 만든다. 걷기가 그렇다. 스쳐 지나가는 가을이 그렇다. 이유가 있어서도 걷고 이유 없이 그냥 무작정 걷고 싶을 때기도 하다.


스물두 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열심히도 걸었다. 차가 없어 주로 걸어 다녔다. 한 시간은 기본이다. 헤어지기 싫어서겠지. 7년 뒤 첫째 태어났다. 유모차에 태워 두류공원 걸었다. 둘째가 초등 5학년까지만 해도 체육공원에서 함께 운동하며 걸었다.

워킹맘된 지 9년 동안 울면서도 걷고 화가 나서도 걷고 벅차서도 걸었다. 걷다 보니 눈물은 멈추고 마음 편안해졌다. 걸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기도 했다. 가가 되어 좋아하는 걷기로 글도 쓰다니. 앞으로도 틈틈이 걸으면서 행복하고 인생 고민도 해결해 나가야지. 해답보다 중요한 마음의 짐은 쌓아두지 않아야겠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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