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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은퇴 연습 일지

부부에게 필요한 것

by 햇님이반짝


목요일은 내가 쉬는 날이다. 남편은 어제부터 연휴에 들어갔다. 목요일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운동 갔다 올게. 나 뛸 거야"

"걸으면 같이 나가려고 했더니"

"목요일 아침 운동은 내 루틴이거든"

뿌리치고(?) 나왔다.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뛰고 다시 대출하려고 했다. 골목길을 꺾는데 앗 도서회원증 놔두고 왔다. 다시 4층까지 올라갈까 말까 고민했다.

"오빠 두류공원 걸을 거야? 나올 거면 내 도서카드 좀 챙겨줘." 그랬다. 안 나온다했으면 다시 올라가려고 했다. 심심했나 보다. 나온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여정이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먼저 공원 한 바퀴를 뛰고 있었다. 저 앞에 낯익은 뒤태가 보인다. 뒷모습만 봐도 반갑다. 역시나 남편이다. "나 먼저 간다" 내 갈 길 갔다. 6km로 마무리하고 남편이 어디쯤 오는지 전화를 걸었다. 나는 성당못을 크게 돌아서 남편이 곧 내가 있는 곳으로 도착할 것 같았다.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가서 도서카드를 받고 도서관에 갔다.

월요일만 해도 대출가능이었는데 그새 누가 빌려갔다. 다음번 독서모임 책이다. 다른 도서관을 찾아보니 있다. 걸어서 45분이다.

"갈까? 갔다가 아침 겸 점심 먹고 들어가자"

도서 대출하니 열시다. 근처 가려고 했던 식당은 한 시간 뒤에 문을 열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찾아보자고 했다. 걷다가 정한 곳은 샤브뷔페. 이 주 전부터 남편이 가자고 한 곳이다. 아까 뛰었던 공원 근처다.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이만보가 찍혔다. 배가 고파 눈에 보이는 대로 담았다. 생맥주를 쉴 틈 없이 들이켰다. 짜릿하다. 잊을 수없는 두 번째 맛이다.(22개월 만에 다시 술을 마시게 된 첫 번째 맛이 따로 있다)

식당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숨 쉬기가 버거워 또 걸어야만 했다. 이런 건 남편이랑 잘 맞는다. 걷는데 이골이 났다. 걷고 또 걸었다. 에 도착하니 오후 한 시가 넘었다. 혼자만의 시간 충분하다. 남편과 아침부터 알차게(?) 돌아다녀도 하루 반이 남았다. 나와 남편 같이 은퇴하면 이런 삶을 살려나. 나쁘지 않다. 다음엔 산으로 가볼까?

평소 각자의 일을 하고 따로 운동하는 우리다. 그래서 오늘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눈 깜짝하면 은퇴하겠지. 그때까지 틈틈이 운동하며 체력 길러놔야겠다. 부부도 체력이 있어야 함께 건강하고 활기찬 삶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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