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Apr 09. 2024

오늘은 뛰어 오지 마


오늘은 뛰어 오지 마



하마터면 설렐뻔했다. 뛰어오다 넘어질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이내 아닌 걸 알았다. 따라오지 말라는 거다. 어보진 않았지만 혼자 해석해 버렸다.



휴무인 목요일. 오전에 공원 한 바퀴 걸을 계획이었다. 8시에 등교하는 이랑 같이 나가려다 빨래 돌려놓고 나간다며 먼저 나가라고 했다. 부랴부랴 세탁기를 돌려놓고 혹시나 멀리 가지는 않았을까 싶어 급히 뛰어 나갔다. 8차선 로가에 둘째가 신호등을 거의 다 건너갈 무렵이었. 신호등 숫자를 보았다. 뛰면 충분하겠다 싶어 행여나 놓칠세라 리나케 달렸다. 조심조심 다가가 뒤에서 놀라게 해 주었다. 웍! 그리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의연한 척 넘겨보지만 머 그래 그렇다. 불과 몇 분 전에 헤어졌지만 나만 반갑다. 

 


일주일 뒤 역시나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다 딱 걸린 거다. 그리곤 단호하고 퉁명스럽게 "오늘은 뛰어 오지 마"라고 통보를 받았다. 괜히 머쓱하여 "지금 나갈 생각 없었거든" 바쁘게 움직인 보람도 없이 한방에 퇴짜 맞았다. 






아침 7시 잠에서 깬 둘째가 영어영상을 보기 위해 큰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누워있던 이불 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았다. 바닥에 안경을 놔둔 것이 이내 걸렸다. 지나다 밟을 수도 있으니 위에다가 올려놓으라고 했더니 짜증 섞인 말투로 언성을 높인다. "바로 쓰려고 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놓고 내가 먼저 화를 냈단다. 정녕 나는 화난 뉘앙스가 아니었지만 세상 예민한 초6 딸이 그렇다면 그랬나 보다. 누가 봐도 못마땅한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출근 전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남편이 딸에게 (굳이) 한마디 거들었다. 화를 내냐며 누굴 닮아서 그러느냐고. 사춘기야?(기름 한 사발 이요)



누굴 닮았겠나.  닮았겠지. 너는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이 나에겐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나도 그런가. 아직도 우리 집 정리를 하러 오는 팔순 된 나의 엄마. 하루 한 번은 들러야 마음이 편하단다. 나도 엄마한테 전화해서 세탁기 돌리지 마라 설거지하지 마라. 우리 집에 오면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놔둬라. 내가 알아서 한다. 초반에 그랬다. 나는 정말로 힘들까 봐 생각해서 한 말인데 엄마에게는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지 말라는 통보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우리 엄마는 속상하겠지. 하는 입장과 입장은 일일이 풀어서 얘기하지 않는 이상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뛰지 마란 말도 먼저 화를 냈다는 도 내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들었다. 정말 그렇다고 할지라도 혼자 의심하고 파고들지는 말아야겠다.(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요즘 큰 딸의 웃는 모습을 자주 본다. 벚꽃 아래 활짝 미소 짓는 사진 하나 그것으로 되었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한시름 놓나 했더니 새로운 강적이 나타났다. 어젯밤에도 저 앞에서 이미 두 팔을 벌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둘째 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밤이면 사춘기의 호르몬도 누그러드는가 보다. 조심해야 할 시간은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말도 없이 강한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