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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ug 19. 2024

42세에 할머니가 되었다

8개월 전 통보를 받았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이모할머니가 되었다. 나와 열다섯 살 차이 나는 조카가 광복절날 엄마가 되었다. 

조카가 태어날 때부터 가까이 다. 우리 집 첫째가 6개월 때 언니네 2층으로 이사를 다. 7년 동안 동거동락하였다.




광복절 아침, 친정가족의 단톡에 알람이 울렸다. 조카는 36시간 진통 끝에 자궁문이 안 열려 결국 제왕절개를 다. 30분 뒤 조카사위가 방금 전 태어난 아기의 동영상을 올렸다.

간호사가 아빠에게 아기 태명이 있으면 불러보라고 다. 태명 말고 이름이 있다고 다. 영상 속 아기와의 첫 대면인 빠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이름 한번 불러보세요"  

"하늘아"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아기는 입을 크게 벌렸다. 2초간 정적이 흐른 후 목청이 터졌다. 세 번 크게 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들의 첫 목소리를 들은 아빠는 영상 넘어서까지 느낌이 느껴졌다.


아나? 알고 울었나? 몇 번을 돌려보았다. 영상 속 조카사위도 울고 나도 같이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생한 조카도 생각나고 우리 아이들 태어났을 때도 생각나 만감이 교차한다.


이날 단톡방에선 조카손주사진을 시작으로 엄마가 된 조카의 어릴 적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아기가 아기를 낳은 것 같다.


이튿날 병원에 갔다. 13년 만이다. 그때와 똑같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도 태어났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아기 보기 5분 전 내가 더 떨린다. 투명한 사각통에 담겨 있다. 아기의 팔은 차렷자세로 하얀 천에 꽁꽁 싸매어 얼굴만 쏙 내밀고 있다. 아침에 본 영상에는 잠만 자고 있었는데 오후 되니 눈을 뜨고 있었다.

산모는 수 첫날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고 다음날 아침 소변줄을 빼야 움직일 수 있다. 조카 나와 같이 아기와의 첫 만남이었다. 엄마 온 거 알고 눈 떠있냐며 신기해했다.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요리조리 바라보는 눈빛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조카사위가 매일 단톡방에 영상을 올린다.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기를 볼 수 있다. 퇴원하면 당분간 못 볼 것 같아 이틀 뒤 다시 아기를 보러 갔다. 영상과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다.




코로나 이후 나 때와는 달라진 점이 있었다. 만지는 것도 아니고 유리창 너머 아기를 보는 건데도 아이들은 못 보게 했다. 대학생도 못 보게 했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그냥 돌아와야 했다. 나는 이모할머니라 허락해 주었다. 의아했지만 다행이었다.  

나는 첫째가 역아로 있는 바람에 수술을 했다. 5일 입원하는 동안 간호사의 호출이 오면 모유수유하러 아기를 보러 갔었다. 현재는 입원기간 동안 산모는 아기를 안지 못한다. 아기를 바로 안아볼 수 없는 조카는 많이 아쉬워했다. 병원규정이 그러하니 따를 수밖에. (집에 가면 하루종일 붙어있을 거니 지금 많이 쉬어두렴)


금방 보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다. 친정 쪽에 아기는 우리 집 둘째 이후 13년 만이다. 오랜만에 신생아 보니 낯설고 설렌다. 2.85킬로그램으로 태어난 조카손주보다 나의 두 딸이 더 작게 태어났다. 그럴 때가 있었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기만 하다.


지금이야 그때의 힘든 기억은 사라지고 예뻤던 모습만 생각난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면 첫째가 태어났을 때로 가고 싶다. 조카가 부럽다. 조카손주(라고 적는 게 적응이 안 된다)의 성장이 궁금하다. 보고만 있어도 끔뻑 넘어가는 때이다. 앞으로 어떤 기쁨과 이야깃거리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조카는 퇴원 후 친정에 머물 예정이다.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다. 마음 같아선 매일 가고 싶다. 당분간 엄마가 늦게 들어오더라도 이해 좀 해주기를.  


조카가 36시간 고생하고 수술한 거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조카사위 울먹임에 같이 울고 첫날은 동영상 볼 때마다 울컥했다(아니 울었다. 할머니 되니 주책이다) 이러다 나중에 혹여나 우리 딸이 아기 낳으면 오열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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