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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ug 20. 2024

의미 부여하기 좋은 날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공원을 나왔다. 한동안 낮산책은 엄두도 못 었다. 매미는 여전히 맹렬하게 울어댄다. 살이 타들어가는 따끔함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후덥지근하다.


못 본 사이 공원은 정글이 되었다. 풀도 무성히 자라 내 키를 훌쩍 넘었다. 공원의 터줏대감인 고양이도 앞발을 긁어대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당연시 여겼던 일상이었는데 폭염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내가 이곳을 오든 말든 공원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뜨거운 여름을 무던히 견뎌내고 있었다. 


변한 게 있다면 더위에 지치고 추위에 물러서는 내 마음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이곳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지치고 물러서더라도 다시 나올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 이 마음 변치 않도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부지런히 나와서 새 단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야겠다.  




몇 바퀴 걷다가 이내 목이 타 근처 커피집을 찾았다. 목이 마르면 물 마시면 되지 그냥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거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잠시 쉬기로 했다. 경쾌한 음악에 심장이 절로 쿵쾅댄다. 구석진 좁은 공간이 마음만큼은 작은 공연장이 되었다. 잠시 휴식을 하기엔 충분했다. 다음엔 블루투스키보드도 들고 와야겠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자유롭길 바라며.


땀을 식히며 공원에 다녀온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텀블러 안에 넘칠 듯 가득 채워진 커피와 얼음을  마시기도 전부터 작은 행복이 스며든다. 보고만 있어도 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 들어줄 것만 같다. 맛을 보기 전 찰나의 장면이 흥겹다. 처음부터 섞지 않는다. 빨대를 깊숙이 찔러 넣어 우유부터 맛본 후 제일 윗부분 쌉싸름한 끝 맛을 음미한다. 부드러움과 쓴 맛. 달라도 좋고 어우러지는 맛도 좋다. 라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옷 쇼핑보다 매일 같은 옷을 입더라도 커피 한잔의 여유는 가지려 한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값지다. 투명한 얼음을 비집고 커피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며 여름을 삼킨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좋겠지만 그때는 이 느낌이 안 날 것 같다.


틈새 여유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가 더 소중한 법이다. 써내지는 못해도 쓰고 싶은 의욕만큼은 늘 간직하고 있다. 근무 시간엔 당연히 일이 우선이다. 쓸 수 없다고 생각하면 더 쓰고 싶다. 대 놓고 글 쓰라고 주어지는 시간은 오히려 손에 잡히지 는다. 주말은 나만의 시간이 아니다. 작정하고 카페로 나가지 않는 이상 변수는 늘 있게 마련이다. 10분, 30분의 자투리가 모여 오늘이 완성된다.




시간이 흐르면 세세한 정을 놓치기 일쑤다. 사진을 찍어두면 그때의 감성이 살아난다. 매번 그러는 건 아니지만 오늘처럼 유난히 한 장 한 장 애착이 가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의미 부여하기 좋은 날이다. 내가 좋은 날로 만들었다. 사진 몇 장으로 평범한 일상을 파고든다.

순식간에 지나버린 오늘을 돌이키다 보니 밤이 깊어진다. 내일이 최대한 오지 않길 바라지만 그래 본들 헛수고다. 기꺼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다잡으며 어제부터 오늘의 생각이 이어진다. 내가 나를 위로해 주며 내면의 에너지를 꺼내어 보는 밤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주길 바라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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