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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l 06. 2021

누구나 홀딱 반한 닭,
누나홀닭?

2주 격리가 거의 끝날 무렵이다. 이제 며칠 후면 난 완전 자유의 몸이 된다.


받아놓은 날이 더디 간다고 며칠 남지 않았는데 몸을 뒤틀고 있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하고 싶은 To Do 리스트가 몇 개 있긴 했다. 한국에 자주 나오는 편이지만 자주 나온다고 매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꼭 하고 가는 것도 아니다. 성격적으로 무슨 일이든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어서 딱히 이번해에도 해야 할 일을 굳이 정하고 오진 않았다. 그중에 맛집 순례 같은 건 애초에 없는 일이다.


그랬는데, 이번처럼 억울한 격리가 아니었다면 어찌 낮도 아닌 저녁 야식을 생각했을까?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때 가장 잘 나오는 장면이 야식을 먹는 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한국의 저녁 문화는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아주 늦은 시간에 시원한 맥주 한잔에 치킨을 먹는 치맥을 한다거나 쫀득한 피자 한판을 아이들과 함께 먹는다거나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파전을 먹고 심지어 매운 떡볶이를 한강 고수부지에 먹는 야식 문화가 그저 신기하고 살짝 부러울 따름이었더랬다.


그저 신문 사이로 그림만 보았을 뿐인데 왜 직접 먹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까지의 시간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아는 치킨은 음... 미국의 본촌이나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처갓집? 혹은 페리카나? 확실한 건 처갓집 치킨은 기억이 난다. 아마 중국요리 빼고 단품으로 가정까지 배달까지 해주는 또다른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 중의 사건이었지 싶다. 거기에 콜라를 껴서 말이다.

 

지금도 처갓집이라는 치킨집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당시엔 꽤나 획기적인 이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었다.


내 어릴 적 그러니까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지. 국민학교 시절 조그만 시내에 가나안이라는 중요한 연례행사 때에만 갔던 단 하나뿐인 서양식 음식점이 있었다. 애피타이저로 노란 크림수프와 동그란 모닝빵이 나왔는데 먼저 커다랗고 기다란 은색 스푼으로 수프를 떠서 입안으로 가득 넣으면 그 달근하고 우유 같은 부드러움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 기억은 어린 나이에 먹어본 가장 황홀한 서양 맛이었다.


그 당시엔 옥수수빵이 유일한 학교 급식 빵이었는데 쌀이 귀해 대체음식으로 옥수수를 이용한 빵이 널리 유통되었었다. 그래서 옥수수빵이 모닝빵으로 대체되지 않았나 싶다. 모닝빵은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흔하게 가정에서 먹는 대중 음식이다. 이름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는 빵으로 살짝 따뜻하게 데운 후 그냥 먹어도 좋고 반잘라 버터를 쓱쓱 발라 시리얼이나 샐러드 음식과도 어울린다.


말랑한 빵이 한입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져 쉽게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모닝빵이라고 꼭 모닝에만 먹는 빵은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어울려 먹을 수 있는 우리 음식으로 치면 누룽지 같은 사이드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짝 구운 말랑한 모닝빵


모닝빵을 크림수프에 살짝 찍어 맛볼라치면 노릇하게 구워진 캐러멜색을 뒤집어쓴 통통한 닭이 살포시 등을 보이며 누워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뒤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언니가 나이프와 가위를 양손으로 들고 와 누워있는 닭의 한쪽 다리를 야무지게 비틀어 뜯어내고 긴 가위를 엉덩이에 쑥 집어넣어 육중한 부분을 자르고 엉덩이부터 목까지 쭉 싹둑 두둥강낸다.


먹음직스럽게 통으로 구워낸 일명 통닭전기구이


단정하고 단아한 얼굴로 두 손은 어찌 그리 야만적인지 지금이라도 그 언니의 얼굴을 그리라면 똑같이 그릴 수 있을 정도다.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을 그때의 그 언니가 왜 생각나는지… 그때의 크림수프는 그 언니의 모습과 함께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진정한 맛으로 느껴지고 그때 어설프게 포크질 하며 뜯었던 치킨의 잘린 닭다리가 치킨의 대명사가 되었다. 동원참치가 원래의 참치맛인 것처럼 다른 곳에서 품질이 업그레이 되어다해도 참치하면 동원참치다로 각인되어 버린것과 같다. 케찹하면 오뚜기케찹!


그러다 이름부터 획기적인 '누구나 홀딱 반한 '이라는 치킨은,


정말 홀딱 반할 만한 구성과 맛으로 나의 입맛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 사람들은 '누나홀닭'이라고 줄여 말한다는데 그러면서 더 재미난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작명의 달인들답다.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지 못할 이름이고 이름만으로 닭이 연상되고 맛에 유머가 들어가니 맛에 맛이 더해 맛이 배가 될 거 같은 느낌으로 이름을 짓는데 창의력의 끝판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 가게의 홍보대사는 아니니 오해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하하


지금의 상황이 원체 극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보니 더욱 특이한 음식에 홀딱 반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미국에는 없는 야식을 직접 먹어보고 직접 체험해 본다는 의미에서 성공이다. 특히 다른 치킨에 비해 한 마리를 몽땅 튀겨서 내가 먹고 싶지 않은 부위가 걸린다거나 꼭 먹고 싶은 부위를 빼앗겼을 때의 허탈감 없이 똑같은 부위 바로 가슴살 하나로 이런 맛을 내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가슴살은 퍽퍽하다는 인식과 함께 다리나 허벅지 부위에 비해 저렴할 거 같은 그런 부위를 갖은양념으로 퍽퍽한 느낌 없이 쫄깃한 식감을 살렸고 정말 정말 얇게 썬 무우지에 갖은 야채를 얇게 얹어 월남쌈처럼 먹는 맛과 멋이 일품이다. 거기에 두 가지 소스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이고 하나는 크림치즈 소스다.


난 치즈 맛이 나는 흐리멍덩한 맛이지만 살짝 느끼하면서 달달한 크림 맛 소스가 좋았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음식이 너무 푸짐하게 나오면 일단 질리는데 여자 둘이서 그것도 야식으로 주문한 양으로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맞는 양과 모양이라서 좋았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지 않았는가?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락에 싱싱한 야채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따끈한 가슴살이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적당히 자리를 잡아 어디 하나 흠잡을 거 없는 단아한 도시락형 주문 세트였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치킨들이 미국에서는 미국화 된 닭들로 변이되어 판친다.


본촌(Bon Chon)이라는 치킨집이 있는데 한국에도 있다는데 미국에서는 치킨집이라기보다는 팝 레스토랑 개념이라 양념과 프라이드 두 종류만 있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메뉴들이 있어서 한국사람을 겨냥한 치킨이라기보다 다민족을 위한 퓨전 맥주집 같은 분위기다. 그나마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좋긴 하다. 20여 년 전에 비하면 급부상한 한국의 위상이라고나 할까?



요즘 잘 나가는 치킨집이 생기기는 했다. 충만 치킨인데 한글로 말하면 신앙인 같은 느낌이 들지만 영어로는 'CM Chicken'이라고 줄여 말해서 미국 사람들이 간단히 쉽게 말할 수 있는 치킨집이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데 특히 매운 갈릭 치킨은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라고 한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나둘 늘기 시작해서 지금은 프랜차이즈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미국에도 누나홀닭 같은 메뉴가 있다면 미국 사람들에게도 먹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긴 미국의 맥도널드에서 우리의 BTS 버거가 출시되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이대로 간다면 햄버거나 치킨 또한 원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K팝을 지나 김치를 넘어 미국의 대표음식인 햄버거와 치킨까지를 섭렵하면 그야말로 조그만 나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무궁한 한국인의 모든 생활양식까지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본다.


맥도날드가 BTS의 이름을 넣어 만든 세트메뉴


야식 하나 먹어놓고 별 이야기를 다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족발을 먹어보라는 친구의 조언데로 다음엔 족발을 먹고 그 후기를 글로 남겨야겠다. 낮에 먹는 족발과 야식으로 먹는 족발의 차이는 뭘까? 참 답답한 격리가 그나마 야식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어 다행이다. 글을 올리려다 보니 그새 격리가 끝나가고 있다. 야식에 길들이다 미국 가면 우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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