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다들 송편과 명절 음식에 입맛 다시고. 고향 가는 길 막힐 걱정에 한숨 내쉬고. 또 누가 제사상 올릴 건지 가족 단톡방에서 눈치 싸움이 벌어질 그런 시점이다. 하지만 여기. 찜질방 여탕 한켠에서 추석이란 '열쇠를 고칠 시기'로 번역되는 인물이 있다. 자칭 만능 수리공. 박반장. 사실 자칭이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공인이다. 찜질방 여탕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손님들도 이젠 '저 언니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하고 눈치채는 정도.
날씨가 선선해지고 손님이 다시 찌르르 몰려오기 시작하면 박반장은 본능적으로 안다.
"열쇠를 고칠 때가 되었다."
연례행사다. 명절 준비란, 결국 못 조이고 경첩 가는 일. 옷장 신발장 그리고 그 안에 든 '고장 예정 리스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본격 작업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 있다. 바로 여탕 매점에서 파는 '사박이(사이다 + 박카스)를 하나 시원하게 마시는 것. 포박이(포카리 + 박카스), 데박이(데미소다 + 박카스)도 경험해봤지만 결국 진리는 사박이다.
"콜박이(콜라 + 박카스), 맥박이(맥콜 + 박카스), 웰박이(웰치스 + 박카스)는 없을까? 제조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잠시 음료 개발자가 되었다가도. 금세 다시 롱로우즈를 들고 본업으로 복귀한다.
고장 원인은 다양하다. 그나마 반가운 건 '나사만 조이면 되는 상황'이다. 그럴 땐 속으로 외친다.
"오-예. 나이스."
하지만 이런 상쾌한 수리는 전체의 10% 남짓. 나머지는 아주 정성 들여 '수작업'해야 한다. 부러진 열쇠는 빼고. 새 열쇠로 교체하고. 여탕 전용 빨간 열쇠 팔찌에 숫자 맞춰 끼운다. 롱로우즈로 딱 맞게 껴야 하는데 이게 또 손끝 감각 싸움이다. 한 손엔 숫자 열쇠. 다른 손엔 빨간 고무 팔찌. 입엔 욕이 들어갔다 나온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놨어."
중얼거리다 카운터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아니 반장님. 이거 단기 알바라도 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탕인데 누구를 시키겠어요. 오히려 제가 알바 가야겠네요. 여탕 전문 열쇠 수리공으로요~^^(고단한 미소와 함께)"
단기 알바를 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이 일을 할 때 진짜 고통의 시간. 바로 '경첩 교체'다. 열고 닫고 또 열고 닫고. 인생이 그렇듯 옷장 문도 그렇게 헐거워진다. 나사 조이는 건 둘째치고 이미 헐거워진 구멍엔 나사도 헛도는 법. 이때 등장하는 찜질방식 공업 기술.
[ 박반장 깨알 수리팁 ]
나사구멍이 커져서 나사가 헛돌 때 해결방법은?
나사를 조금 더 큰 것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 구멍을 크게 만들면 나중에 감당이 안되므로 이럴 땐 구멍을 메워주기를 시도한다. 커져버린 구멍에 '나무젓가락'이나 '면봉'을 이용하여 구멍을 메워준다. 그러고 나서 똑같은 나사로 고정을 하면 공간이 좁아졌으므로 나사가 헛돌지 않는다. 나무젓가락인 면봉, 이쑤시개 같은 것을 이용한다. 일상생활 속 나사가 헛돌 때 이 방법을 이용해서 나사를 조이면 단단하게 고정시킬 수 있다.
헛도는 나사 구멍엔 면봉이나 나무젓가락을 쑤셔 넣고 그 위에 나사를 조인다.
"이게 바로 인생 구멍 메이기지."
물론 이론은 쉽다. 실전은 다르다. 문짝이 몸통보다 무겁고 구멍은 생각보다 얕고 나무젓가락은 애매하게 길다. 그래서 결국 손가락이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땀은 흘러내리고. 그 와중에 구석 좁은 옷장 안에 들어가 있으려면 진심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다. (아. 진짜 살 빼야겠네... 하는 말. 오늘로 178번째)
무릎을 꿇고 경첩을 달고 있는데 누군가 툭 말을 건넨다. 단골 손님이다.
"여기저기 다 고치는 거예요? 애기였는데 많이 성숙해졌네~^^"
"^^(눈웃음으로 대답한다. )"
그리고 마음속으론 '애기였는데'가 콕 박힌다.
고치는 게 열쇠뿐이면 좋겠지만 여탕 안엔 고쳐야 할 게 너무 많다. 수도꼭지, 비누곽, 타일, 바닥 고무 매트, 사우나 안 전구까지. 그 와중에 손님은 열쇠가 안 잠긴다고 말하고 박반장은 드라이버를 들고 출동한다.
올해도 그런 명절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게, 우당탕탕 좌충우돌 여탕 수리 여정은 계속된다. 진짜 만능 수리공이 되는 날까지. 그 누구보다도. 손님보다 내가 더 먼저 알아차린다.
"이제 고칠 시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