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빨래방으로 출근합니다.

by 다몽 박작까


N잡러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가끔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그 끝에 내가 있지 않을까 하고.


사모님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날그날 입는 옷에 따라 직업이 바뀐다. 오늘은 빨래방 유니폼을 입었다. 이직도 아니고 출근도 아닌데.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직원분이 코로나 확진이 되셨고 '비는 자리는 남편과 나, 어머님과 아가씨가 메꾼다.'는 가내수공업적인 시스템에 따라 빨래방은 오늘 나의 현장이다.


빨래방이 뭐 대단하겠어?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생각을 했던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너무 무지한 생각이었으니까. 빨래방이란 곳은 기본적으로 체력과 끈기의 격투기 장르다. 일단 세탁기부터 크기가 미쳤다. 3~4배쯤 큰데 여기에 젖은 빨래를 넣는 순간 내가 사람이 아니라 세탁기에 집어 넣는 로봇 팔처럼 느껴진다. 무게는 또 왜 이렇게 나가냐. 진짜 무게감이 장난 아니다. 운동 존 한다는 사람도 이 젖은 빨래더미를 열 번 넣었다 빼면 소리 없이 진동벨처럼 팔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빨래방 대형세탁기


건조기에 넣는 것도 장난 아니다. 그냥 넣으면 되는 게 아니다. 너무 많이 넣으면 '말리는 게 아니라 삶는다' 수준이 된다. 냄새도 꿉꿉해지고 기계도 토 나올 듯이 과열된다. 그래서 나는 빨래를 만진다. 110도의 건조기 안에서 바지 고무줄이나 티셔츠의 목부분을 만지며 판단한다. 이 빨래들이 마른 건지 아닌지를. 이게 무슨 훈련인가 싶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나를 보며 '사람은 아무 데서나 적응한다'는 말이 사실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빨래방 대형 건조기





그다음엔 접는다. 티셔츠, 바지, 수건, 아이들 옷. 색깔별, 크기별. 빨래는 정말 인생과 닮았다. 정리되지 않으면 엉키고 무게가 실리면 흐트러지고 묶을 땐 힘을 주되 너무 세게는 말아야 한다. 차곡차곡 10개가 쌓이면 꽉 묶는다. 이 스킬도 수련이 필요하다. 헐렁하게 묶으면 다시 쏟아지고 너무 세게 묶으면 손가락이 내 손이 아닌 것 같다. 수건 150장 정도를 높이 높이 쌓고 나면 이게 빨래인지 삶의 탑인지 모르겠다. 완성된 빨래 더미는 예술작품처럼 서 있다. '미니멀한 고통 속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전시해도 될 정도다.

빨래방은 늘 덥다. 건조기가 돌아가는 빨래방은 마치 지옥의 앞마당.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에어컨 없는 카페에서 3시간 회의한 뒤 보일러 튼 집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온몸에 땀이 맺히고 옷은 피부에 착붙고 정신은 점점 가출 준비를 한다. 어느새 내가 찜질방 안에서 찜질 중이다. 계속 일하다 보면 살이 쫙쫙 빠진다. 빨래방은 다이어트하기 최고의 장소다.


색깔별로 크기별로 분류해서 개기



깔끔하게 정리된 옷들






방치되어 있는 우리 집 빨래더미들


문제는 이렇게 빨래를 하다 보면 정작 우리 집 빨래는 그대로라는 것. 찜질방 빨래는 쫙쫙 펴서 각 잡아 접어놓는데. 우리 집 빨래는 건조대에서 나와 '산'이 된다. 산은 그저 거기 있는 존재일 뿐. 누구도 감히 다가가지 않는다. 그 산을 바라보며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얘들아~ 우리 집은 참 신기하지? 필요한 거 있으면 여기서 다 찾아야 해~. 팬티, 양말, 나시까지. 어디 양말을 찾아보실까. 짝꿍이 어디 있나~. 찾았다. 여기 있다!"


이 집에선 보물찾게 콘셉트로 빨래를 소비한다. 아들이 손을 들며 말한다.


"아빠~ 나도 찾아줘~"

(남편은 귀찮다는 듯)"네가 찾아, 임마~."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나도 찾았다~. 오예!"


그렇게 우리 집의 '보물찾기 패밀리'는 오늘도 평화를 유지한다.


빨래는 반복된다. 마치 인생처럼. 한 번 끝냈다고 끝난게 아니고. 계속 생기고 계속 쌓이고. 다시 개고 묶고 정리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N잡을 끝냈다. 그 땀과 무게와 반복 속에서. 내 삶은 좀 더 단단해졌고. 우리 집 빨래들은 좀 더 자유로워졌다.


N잡러의 삶이란. 수건을 개며 철학을 펼치고. 티셔츠를 묶으며 인생의 매듭을 배우는 것. 그리고 결국. 남편의 농담과 아이의 웃음으로 다 갚아지는 일. 오늘도 수고했어. 나. 그리고 우리 가족도. 잘 찾아 입어 주어서 고마워.




keyword
이전 05화사다리 또 타는 사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