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점심시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나는 강사 대기실에서 책정리를 하고 있었다. '밥은 조금 이따 먹어야지. 지금은 이걸 마저 해두자.' 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슬며시 내 귀를 끌어당겼다.
"나는 ㅇㅇ쌤 수업이 재밌더라."
"맞아. 나도야. ㅇㅇ쌤은 설명이 재밌어. 설명을 쭈욱 하고 밑줄을 간략하게 알려주셔."
"ㅇㅇ쌤도 좋아. ㅇㅇ쌤은 밑줄부터 치고 설명을 자세히 해주시니까 이해가 잘 돼."
"ㅇㅇ쌤은 좀... 졸려. 이건 과목 특성상 그런가? 그래도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거 같긴 해."
강사들을 비교하는 대화에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앞에 칭찬은 다른 강사님이었다. '졸려' 쌤이 나였다.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지 않을까?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비교하고 사회는 구조적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나는 이 사실을 두 장소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하나는 뜨거운 공기와 땀 냄새가 섞인 찜질방. 또 하나는 조용한 공기와 눈빛이 흐르는 강의실이다.
찜질방에서 나는 늘 손님들의 눈앞에 놓여 있다. 사소한 온도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 수건 한 장의 상태로 전체 시스템을 판단하는 사람들. 작은 불편 하나로 가게의 수준을 가늠하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과 말투, 드나드는 발걸음 속에서 매 순간 평가받는다. 서비스업이라는 이름은 친절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아래에는 늘 묵직한 판단이 깔려 있다. 평가는 고지서처럼 정기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실시간이다. 아무 때나 아무 말로 아무 표정으로 찾아온다.
간호학원 강의실도 다르지 않다. 쉬는 시간에 들려오는 뒷담화는 기본 옵션이다. 거기에 조금 더 디테일한 '강사 만족도 조사'라는 평가가 있다. 이 평가는 매 기수마다 1년에 한 번 한다. 문제는 이게 끝나고 하는 평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평가를 받고도 남은 4개월을 똑같이 웃으면서 해야 한다. 이건 거의 멘탈 지구력 시험이다.
강사 만족도 조사는 문항이 총 10개다.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나 학습자료 제공, 강사의 판서, 강사의 음성 및 자세와 표정 등에 대한 문항 평가다. 객관적인 점수는 전반적으로 좋게 나왔다. 그런데 평가지 비고란에 학생들은 생각보다 디테일하게 써줬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어요.'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세요.'
‘어쨌거나~’라는 이 말이 전문성이 떨어져 보여요.'
뾰족한 문장들이 멘탈의 급소를 향해 정확하게 꽂는 기분. 묘하게 면봉으로 아픈 데만 계속 찌르는 느낌이었다. 회의감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원장님이 내민 평가지를 보며 마음이 얼어붙었다. 분명 좋은 칭찬도 많았는데 그 부분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강의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서로 즐거워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웃던 사람들이 나가서는 날 이렇게 정성껏 미세분석 했단 걸 알게 되다니. 부드럽게 웃는 얼굴들이 갑자기 스릴러 영화의 냉정한 관찰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가를 받은 날 오후 강의에서 나는 강사의 '삼박자'가 흔들렸다. 지식도 흔들리고 태도는 어색해졌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이거 전문성 떨어져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알 수 없는 자의식이 끼어들었다.
간호학원 강사가 되고 나서, 시간당 급여 빼면 모든 게 참 만족스러웠다. 학원 가는 날이면 괜히 엔돌핀이 솟아 싱글벙글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들떴던지 아들은 이런 질문까지 했다.
"엄마, 강의하면 돈 벌어요?"
"그럼~ 많이는 아닌데 벌지. 근데 갑자기 왜?"
"하도 재미있게 하길래. 돈 안 버는 건지 물어봤어요."
아이는 진심이었다. 그만큼 내가 신나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참, 인생은 이런 깨알 반전 맛이 있다. 그렇게 즐겁게 다니고 있었는데 평가만큼은 아주 담백하고 냉정하다. 나는 매번 강의 가는 길이 행복이었는데, 듣는 분들 몇몇은 그렇지 않았다. 그 사실이 뒤늦게 가슴에 쿡 찔렀다.
더 무서웠던 건 그분들이 한 번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항상 웃으면서 고개 끄덕이길래 나는 당연히 모두가 즐거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그 평가를 남겼는지 알 길이 없는 채 남은 4개월을 또 싱글벙글 웃으며 강의를 해야 한다. 자신감이 뚝 떨어지니 강의도 전처럼 술술 나오지 않았다. 지식도 태도도 말 한마디도 심지어 작은 농담 하나까지도 모두 전부 평가의 항목이 된다고 느껴지니 표정까지 굳어서 로봇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쿨하게 인정하고 '이걸 기회 삼아 성장하자.'라고 멋있게 말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실제 인간으로서의 나는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거다. 마음은 성장 스위치를 누르고 싶은데 손이 자꾸 미끄러지는 느낌. 그렇지만 결국 이런 일들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겠지. 아주 천천히.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우리 아들들의 대화를 들었다.
"ㅇㅇ쌤은 단어 하나하나 길게 설명해 줘서 좋아."
"ㅇㅇ쌤은 대화 중심이어서 좋아. "
"ㅇㅇ 쌤은 질문을 많이 하셔. "
일주일에 3번 다른 선생님과 화상 수업을 하는 아들들이 하는 대화였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뜨끔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세 명의 선생님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걸 듣고 깨달았다. 아... 비교는 그냥 존재의 속성이구나. 숨 쉬듯이 하는 거구나. 내 수강생들이 평가한 게 갑자기 '당연한 현상'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질문 하나.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건 마치 사는 동안 숨 안 쉬고 살 수 있는지 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이거다.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평가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평가는 벗어날 수 없는 그늘이다. 하지만 그 그늘 아래에서도 나는 나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손님들의 표정이 내 하루의 열기를 만들고 수강생들의 눈빛이 내 강의의 방향을 만든다.
뜨거운 찜질방에서도. 조용한 강의실에서도. 나는 오늘도 평가받는다. 평가는 불편하지만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물론 단단해지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떤 날은 많이… )
그래도 결국, 나는 그 평가 속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