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강의를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를 켠다. 그 순간부터 나의 하루는 이미 모험의 시작이다. 내비 화면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oo우체국
oo교회
oo매운탕
군부대는 내비에 주소가 없다. 그래서 내가 입력해야 하는 건 oo부대가 아닌 다른 지명이다. 무슨 첩보 영화인가 싶지만 현실이다. 그 지명들을 힌트로 부대를 찾아가야 한다. 알려주시는 지명들이 현실판 보물찾기 좌표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매번 차 안에서 중얼거린다.
"오케이. 오늘은 oo 매운탕. 열심히 군부대 찾아가 보자."
내비의 지령대로 가면 도로는 서서히 포장 상태를 잃기 시작한다. 건물들은 사라지고 산이 보이고 들판이 나온다.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 속에 들어온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도심에서 벗어났음을 내비보다 풍경이 더 먼저 알려준다. 돌길이 나오면서 차는 덜컹덜컹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그러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퉁'하고 차유리에 튀어올라 작은 흠집을 내기도 하고. 큰 구덩이 때문에 바퀴가 쿵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내가 탐험가가 된 듯하다. 군부대 비밀 경로 탐험가.
다양한 곳의 군부대로 향하다 보면 우리나라 지리를 탐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 여기가 연천이구나. 전에 선사박물관 애들이랑 가보고 싶었는데. 이 정도 거리였네."
"오. 여기가 철원이구나. 그 유명한 고석정이 이 근처인가 보네. 다음에 시간 있으면 한번 가봐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내비에 표시되는 작은 마을들을 눈여겨보고 지명을 확인한다. 예전에 가보고 싶었던 곳과 거리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군부대 가는 길이 울퉁불퉁하고 내비는 수수께끼지만 그 덕분에 작은 여행자의 모험심까지 덤으로 생기는 듯하다.
그렇게 자연을 만끽하고 지리도 파악하며 알려주신 지명 oo매운탕에 도착한다. 이제 그다음 힌트를 읽는다.
"oo매운탕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시고 들판 끝으로 쭉 가시다 보면 저희 부대가 있습니다. "
들판 끝에가 목적지라니. 지금 군부대에 가는 건지 게임 속 비밀 장소에 가는 건지 가끔 헷갈린다. 심지어 어떤 날은 이렇게 알려주시기도 한다.
"oo슈퍼 지나 oo빌라 옆 공터 부근입니다."
슈퍼-빌라-공터 조합으로 군부대를 찾는다. 이런 내비 주소로 찾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처음엔 어색하고 생소했다. 하지만 친절한 군부대 교육 담당자님이 자세히 알려주시기 때문에 걱정 없다.
"강사님. oo슈퍼 지나 oo빌라 나오면 표지판에 'ooo'보일 거예요. 그 길로 쭉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대가 눈앞에 나타나면 나는 숨겨진 보물 상자를 손에 넣은 듯 기뻐하며 차 안에서 소리친다.
'찾았다. 나의 성지.'
군부대에 도착하면 위병소에서 교육 담당자님이 직접 마중을 나와 계신다. 처음에는 그냥 친절한 안내 정도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걸.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담당자님은 이미 에스코트 모드 ON이다.
"강사님, 이쪽으로요~" 하시며 마치 내가 왕족이라도 되는 듯 차까지 따라오셔서 길을 안내해 주신다. 좌우로 깔끔하게 정렬된 표지판과 푸른 잔디. 그리고 친절한 안내까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교육장까지 호위받으며 입장하게 된다. 교육장 장소를 안내하기 위한 배려기도 하고 외부인을 데리고 오는 군부대 규칙이기도 하다.
부대 안으로 들어서면 문득 여기가 작은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문에서 위병소를 지나 출입증을 받으면 첫 번째로 시선을 잡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부대를 상징하는 동물상이다. 어떤 날은 재규어가 근육을 과시하고 있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용맹한 독수리가 날개를 쫙 펼치고 있기도 하다. 다들 위풍당당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우리 용사들에게 강의 잘할 수 있지?"
부대마다 상징 동물이 달라 보는 재미가 있다. 동물상 옆을 지나가는 군인 분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데 이런 광경이 생경한 나만 멈춰서 자세하게 관찰하고 눈으로 담고 있다. 동물상 뒤로는 여기저기 건물이 늘어서 있다. 운동장도 보이고 교회도 보이고 탱크도 보인다. 모든 게 제각각인데 묘하게 마을처럼 연결되어 있어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 부대 안을 구경하는 맛이 있다. 내비와 비포장길의 모험을 끝내고 도착해 마치 숨겨진 마을을 발견한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
전화가 왔다. 군부대 강의 요청전화다.
"안녕하세요. ooo강사님 맞으신가요? oo부대 ooo입니다. 1시간 보건안전교육 요청드립니다."
"1시간 교육이요? 다른 부대는 보통 이 교육이랑 같이 2시간으로 진행했는데 어떠신가요?"
군부대 가고 오고 모험 같은 길인데. 같은 강의 조금만 늘려서 2시간으로 바꾸면 청중도 만족하고 나도 더 편하게 진행 수 있다. 강의료는 2배로 받을 수 있고. 처음에는 교육시간 1시간을 요청받으면 그대로 1시간을 진행했다. 이제는 능동적으로 강의 요청시간을 조율하는 스킬도 발휘한다. 게다가 강의를 듣는 청중이 용사 중심인지 간부 중심인지에 따라 강의 난이도, 시간, 구성까지 조절하는 감각도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강의가 점점 더 잘 굴러가는 느낌이다.
군부대 가고 오는 길은 여전히 울퉁불퉁하다. 때로는 험난하기도 하고 없는 곳으로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내비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길이 좋다. 다음 강의 전화가 오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 갑니다.
오늘도 들판 끝에서 멈추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