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미 완전한 존재들 17
「엄마의 의자」는 저자, 베라 윌리엄스의 자전적 그림책이다. 주인공은 할머니,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사는데, 어릴 적 큰 화재 사고를 겪었다. 집은 엉망이 되고, 가구들은 잿더미가 되어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이웃의 도움과 집안 특유의 활기로 조금씩 극복해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주인공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건 의자. 고된 하루 끝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리에서 엄마가 앉는 의자는, 예전처럼 푹신한 의자가 아닌, 좁고 딱딱한 의자였다. 그래서 커다란 유리병에 돈을 모아 장미 무늬가 그려진 근사하고, 안락한 벨벳 의자를 사자는 소박한 꿈을 가진다. 적은 돈이지만 오랫동안 십시일반 모으자, 유리병에는 더 이상이 돈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꽉 찬다. 마침내 온 가족이 함께 가구점에서 꿈에 그리던 벨벳 의자를 사고 트럭에 싣는다. 고단했던 하루를 보낸 엄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사랑하는 딸의 위로를 받는다.
거창한 교훈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를 담은 동화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주인공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추억’을 담고 있을 뿐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불가피하게 크고 작은 상실을 겪는다. 장난감, 가족이나 친구, 키우던 강아지 등이 그러하다. 가장 비극적인 상실은 누려왔던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 소란스러운 바깥, 집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 연기, 연기에 휩싸여 타들어 가는 집, 잿더미가 된 집안을 들어갔을 때 주인공의 가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제까지 당연하게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피곤한 몸을 뉠 수 있던 내 집이 산산조각 났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란 감당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한다. 우리가 주인공의 상실을 비극이 아닌, 추억이라 여기는 이유는 여기서 존재한다. 바로 감당한다는 것이다. 장미 무늬가 그려진 벨벳 소파를 사는, 사치스럽지 않은 꿈을 가지면서. 누가 보면 우스울지도 모르는 너무나도 적은 돈이지만, 동전을 하나씩 집어넣을 때마다 가족들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기쁨을 그린다.
어린 시절 나는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면서 조마조마했다. ‘주인공이 의자를 못 사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다가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안도했다. 사실 의자를 사고 못 사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누군가는 말 못 할 아픈 상실을 겪은 이들도 있고, 읽는 순간에도 그 과정에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누구나 그런 상실을 겪고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는 막막함을 느끼지만, 인간은 저마다 상실을 대하는 다른 방식이 있으며 그 방식을 통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훗날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은 다른 면에서 보면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상실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된다. 주인공 역시 그 의자를 단순히 편안함을 주는 가구로만 여기지 않는다. 영원한 상실로 끝나는 비극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영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상실을 마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며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의 부재, 혹은 안정적인 일상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쑥 찾아올 때가 많다. 그 두려움이 마음을 잠식하려 할 때, 혹은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내 마음을 잠식할 때 마음속 깊이 담아둔 이 책을 꺼내 읽고 싶다. 누구나 상실을 감당하게 하는 ‘벨벳 의자’가 있음을 기억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