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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쥬르 May 25. 2023

7. 내 집 찾아 삼만리

실리콘밸리 오픈하우스에 다녀오다

실리콘밸리 오픈하우스에 다녀오다

“선배, 지금까지 집도 안 사고 뭐 했어요? 지금부터라도 오픈하우스 보러 다녀요! 집 보러 다니는 거 꽤 재밌어요.”


한 회사 후배가 했던 말이다. 나는 그녀를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후배는 미국 해군 출신으로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베테랑(미국 퇴역 군인, US Veteran)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생활력만큼은 나보다 훨씬 어른 같았던 똑순이. 그녀는 이미 5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집을 장만했다.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베테랑 출신은 다운페이를 전혀 하지 않아도 집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다운페이 여부에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집 살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녀에게 무한 리스펙을 보내곤 했다.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는 은인이 많았다. 이제는 동네 이웃이자 친구가 된, 전 고객사 팀장 ‘주희’도 그렇고, 회사 후배도 그렇고, 아파트 계약을 깨자던 룸메이트도 그렇고,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얼른 집을 사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보내고 있었다.




후배의 뼈 때리는 조언을 듣고도 혼자 오픈하우스를 보러 다니기는 왠지 뻘쭘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하루빨리 오픈하우스 투어를 시작해야 이사 갈 집도 찾고 아파트에서 방도 뺄 것이 아닌가.


리얼터(부동산 중개업자)는 부동산 매물이 나올 때마다 리스팅을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Redfin, Zillow 등 부동산 웹사이트를 살펴보며 오픈하우스 방문 리스트를 30여 개로 추렸다. 약 30개의 매물 중 직접 방문한 곳은 20개 정도였다. 


Redfin과 Zillow 앱에서 리스팅 된 집 주소를 치면 해당 집 가격, 예상 월 모기지 비용, 지어진 연도, (콘도나 타운하우스라면) HOA fee (관리비), 초중고 학군 rating 등을 대략 살펴볼 수 있다. (예시: 링크)


방문할 집 리스팅을 추려내기 위해 내가 중점적으로 본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1) 동네 위치: 차로 30~40분 만에 출퇴근할 수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1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

2) 집 구조: 2B2B, 꼭 남향이 아니더라도 햇빛 잘 드는 곳, 가능하다면 두 방이 떨어진 집

3) 월 모기지 비용: 매달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월 모기지 비용 + 세금

4) 학군 Rating: 학군은 실리콘밸리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넘버원 항목. 강남 집값이 비싼 것과 비슷한 원리.

5) 안전지수: 안전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1인 가구이기에 이 항목을 더 유심히 보았다.

6) 생활/문화 환경: 피트니스센터, 쇼핑센터 등 생활/문화 인프라에서 멀지 않은 곳


오픈하우스 투어를 하다 보면, 가끔 스테이징(staging, 인테리어 업체를 써서 집이 잘 팔리도록 꾸미는 것)이 취향 저격이라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는 집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스테이징에 현혹되면 절대 안 된다. 스테이징은 스테이징일 뿐. 그 가구, 그 조명, 그 그림은 내 것이 아니니까. 집을 사면 내 취향에 맞는 가구로 다 채워 넣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스테이징이 깔끔해 마음이 혹했던 집들 © 지나쥬르


그러니까 오픈하우스 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는 위에서 말한 동네, 집의 위치, 집 구조, 학군, 동네 안전지수 등이 있다.


리얼터와 나는 촉박한 시간을 고려해 만날 때마다 구역을 나눠서 보러 다녔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산호세, 마운틴뷰와 같은 ‘도시’ 이름이 아닌 이웃/구역(Neighborhood)이란 개념으로 동네를 구분한다. 내가 보러 다닌 구역은 다음과 같다. 이곳에 살지 않는 분들께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 랜드마크나 잘 알려진 테크 회사 위주로 설명해 보겠다.


<내가 가 본 오픈하우스 - 실리콘밸리 구역별>


1. 산타클라라(Santa Clara), 서니베일(Sunnyvale)

2. 이노베이션 트라이앵글(Innovation Triangle),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3. 다운타운 산호세(Downtown San Jose)

4. 윌로우 글렌(Willow Glen)

5. 웨스트 산호세/캠벨(West San Jose/Campbell)


산호세 구역 / 출처: 위키피디아


참고로 교육열이 높은 중국/대만/한국계 부모(dragon parents)가 많이 살고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Cupertino)            

스탠퍼드 대 캠퍼스가 있는 팔로알토(Palo Alto)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Mountain View)

학군 좋은 사라토가(Saratoga)            


등은 집값이 비싸 제외했다.



1. 산타클라라, 서니베일


▶ 랜드마크/테크 회사: Korea Town, LinkedIn, Synopsis


엘 카미노(El Camino) 도로를 끼고 마운틴뷰와 산호세 사이에 위치해 있다. 학군은 살짝 떨어짐에도 위치가 좋고 월세가 적정한 아파트가 많아, 실리콘밸리 이민자들이 입문하기에 만만한 동네 중 하나다. 시카고에서 이곳 물정을 전혀 모르고 이사 왔을 때, 지인이 추천해 준 곳이기도 하다. 산타클라라에는 한국 슈퍼마켓 및 식당이 즐비한 작은 한인타운(Korea Town)이 형성되어 있다.


위치는 좋았지만 내 예산에 맞춰 가 본 집은 하나같이 다 낡은 곳이 많았다. 또한 쿠퍼티노 홈스테드 고등학교(Homestead High School)와 가까운 서니베일 지역(ZIP Code: 94087)은 학군이 좋아 집값이 매우 높았다. 낡은 집 두세 군데를 돌아보고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한인마트: 한국 슈퍼마켓, K-market, 교포마켓  © 지나쥬르


2. 이노베이션/골든 트라이앵글, 북 산호세


▶ 테크 회사: Cisco, Dell, HPE, Intel, NVIDIA, Samsung Semiconductor, SK Hynix 등


삼성 반도체 및 SK 하이닉스 미주 본사, 리버마크 플라자(Rivermark Plaza) 등이 위치한 North 1st street 주변 동네(북산호세)를 포함한다. 테크 회사가 밀집되어 있어 '이노베이션 트라이앵글'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익숙한 곳이라 관심 있게 본 지역이었다. 하지만 산호세 국제공항이 가까이 있어 비행기 소리가 많이 들리고, 좀 더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철도와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고 리얼터가 귀띔해 주었다. 오픈하우스로 둘러본 집은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위치, 소음, 학군 때문에 제외했다.


Samsung Semiconductor 캠퍼스  © 지나쥬르


3. 다운타운 산호세


▶ 테크 회사: Adobe, IBM


20~30대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다운타운이 있고 밤 문화도 있어 젊은 층이 많이 산다. 산업적인 느낌이 강해 주거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픈하우스 방문을 한 곳은 다운타운 산호세 주변과 재팬 타운(Japan Town) 쪽이었는데, 트럭과 공사 현장이 많아 안전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 josephsintum,© toms_photographs, 출처 Unsplash


4. 윌로우 글렌


▶ 테크 회사: eBay


산호세에서 비싼 동네 중 하나다. 자연경관이 좋고 캠벨(Campbell) 아래쪽에 위치한 평화로운 동네. 오픈하우스로 방문했던 콘도 바로 뒤에 eBay 캠퍼스가 있어 신기했다. 이 동네에서 본 콘도는 모두 무난했는데 주차장이 집에 붙어있는 구조가 아니라 아쉬웠다.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 지역은 자동차 창문 절도 사건이 유난히 많아 집과 붙어있는 주차장이 필수적이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llow_Glen,_San_Jose


5. 웨스트 산호세, 캠벨


▶랜드마크/테크 회사: Santana Row, West Valley Fair Mall, Pruneridge Shopping Center, Splunk


실리콘밸리 베이 지역에 몇 안 되는 번화가가 있는 곳이다. 다양한 쇼핑몰과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번화가를 조금 벗어나면 가정집, 타운하우스,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주거 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요가/필라테스 등 피트니스센터도 있다. 또한 280번 고속도로, 산토마스 고속도로(San Thomas Expressway)와 가까워 교통도 편리하다. 지금까지 보러 다녔던 동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웨스트밸리페어 쇼핑몰, 산타나로우 번화가   © 지나쥬르


9월 주말 내내 오픈하우스 투어를 했고, 퇴근 후에도 짬을 내 매물을 보러 다녔다. 화려하게 스테이징 해 놓은 집은 앞으로 살 집을 어떻게 꾸밀지 아이디어를 주었고, 스테이징 없이 사는 그대로 보여주는 집은 타인의 삶을 둘러보는 매력이 있었다. 집 구경은 재미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이직한 회사는 마침 가을이 성수기라 프로젝트는 풀가동 중이었다. 


주말도 없이 ‘내 집 찾아 삼만리’에 올인했는데 아직 이거다 싶은 집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10월로 달력이 넘어간다. 

남은 매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파트 방을 빼야 하는 10월 말까지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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