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를 위한 변론
작년에는 주변에 영어공부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올해는 영어와 함께 제2 외국어 공부하시는 분들도 주변에 많이 보인다. 가깝게는 아버지부터 방통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계시고, SNS 친구분들도 불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다양한 제2 외국어를 배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못하게 되니 대신 그 나라 언어를 배우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기 계발 열풍과 함께 형성된 서브 트렌드일까?
나 자신만 하더라도 올해는 영어공부도 제대로 다시 시작하고 싶고, 마음 한구석에 작게 둥지를 틀고 있는 불어도 살려내고 싶어, <명랑한 은둔자, Le Merry Recluse> 영문판과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 불어판 원서 필사를 시작했다. 자고로 영감을 불어넣는 것도 중요하므로 간간히 영화나 드라마도 봐주면서 기억을 깨워내고 있다.
한국어 책만 해도 읽을 책 목록이 수첩을 빼곡히 채웠고, 주식이다 NFT 다 새롭게 배워야 할 것도 많은 이 시점에 우리는 왜 외국어까지 배우며 이렇게 분주하게 지내는 것일까? 왜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것인지, 배워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경쟁력 키우기 (a.k.a 몸값 높이기)
영어를 잘하거나 제2 외국어를 잘하는 것은 이 시대 매우 큰 경쟁력이다. 많은 일들을 재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온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몸은 한국에 있어도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고, 비즈니스도 가능하다. 단 조건이 있다. 비즈니스 파트너와 커뮤니케이션을 능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언어는 영어인 경우가 많다.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지만 한국에서 6개월 이상을 보내는 친구들도 종종 보았다. 재택이 가능한 직종에 속해 있고, 재택에 대한 유연성이 있는 회사라서 가능했던 것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이 '업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영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한 직원이 장기간 재택을 해도 업무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No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경쟁력 키우기'는 사실 내가 미국에 오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학 오기 전 근무했던 회사에, 미국에서 고등/대학/대학원을 졸업한 영어를 매우 잘하는 동료 과장님이 있었다. 몸이 자주 안 좋으셔서 이틀에 한번 꼴로 회사에 지각을 할 정도였고, 나는 그 땜빵을 메꾸느라 야근을 하거나 스케줄이 다 틀어진 적도 있다. 함께 일했던 후배들도 출퇴근을 예측할 수 없어 힘들다고 나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그분의 일자리를 철저하게 보호해주었다. 그분은 장기 병가 휴가를 여러 번 내어도 항상 돌아올 자리가 있었다. 직격탄을 받은 일인으로 이 부분이 참 의아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 인재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착한 결론인가? ㅎ)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는 절대 바보같이 돈을 쓰지 않는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영어가 이렇게 큰 경쟁력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고, 나도 그 경쟁력을 키우고 싶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2. 자아확장
김용섭 교수님의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4장을 보면,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p. 259). 사실 김용섭 교수님은 이 책에서 '글 쓰고 말 잘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문구를 인용했으나, 나는 이 말이 외국어 공부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필요한 순간이 온다. 외국인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나의 문화와 경험치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때로는 바보 같은, 때로는 미친 듯이 창의적인, 어떨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접할 수 있다. 나는 불어를 배울 때 유난히 이런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 안의 나를 양배추 껍질 벗기듯 발견하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프랑스 친구들이 '동거'를 왜 하는지 설명할 때, '외도'로 보이는 행위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설명할 때, 난 참 개똥철학도 다 있군... 하면서도 세상 반대편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인간들도 있구나 하며 눈을 반짝였다.
누군가 프랑스 문화 (구 불어불문학과) 전공이 삶에서 어떤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볼 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봉 상승이나 지위향상?! 등의 실질적 혜택은 모르겠지만, 삶의 질이 매우 풍요로워졌다"라고 얘기하곤 했다. 나는 불어를 함으로써 프랑스 친구들과 개똥철학도 나눌 수 있었고, 쌩덱쥐베리 손녀딸 집에서 홈스테이도 할 수 있었고, 프랑스 특유의 인종차별도 경험해 보았고, 프랑스판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하숙집에 머물며 각국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어로 말하고 쓸 때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포텐(potential)이 불어를 할 때는 터져 나오는 걸 보며,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며 스스로 놀란 적도 있었다. 불어에 대한 예를 들었지만, 영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문화권의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다채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 또한 자아확장의 일환이다.
3. 정보 접근성
다음은 정보 접근성이다. 영어 뉴스, 팟캐스트, 영화 등 여러 예시가 있겠지만, 책을 예시로 들어보자.
세스 고딘의 <린치핀, Linchpin>이라는 책은 이미 2010년에 영문 원서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 책을 보니 2019년 12월에 1쇄가 발행되었다. 한국어판을 읽고 너무 좋아서 영어 필사까지 시작한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The Merry Recluse>는 2004년에 양장본이, 2005년에 페이퍼백이 출간되었다. 맨 뒷 페이지를 보니 초판 1쇄가 2020년 9월이고 초판 12쇄가 2021년 9월이다. 영문 원서 출판 시점과 한국어 번역본 출간 시점이 무려 10년에서 15년 차이가 난다. 물론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인 개리 바이너척의 <부와 성공을 부르는 12가지 원칙, Twelve and a Half>는 단 1년 만에 한국에 상륙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의 힘일 수도 있겠다.
요지는 영어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10년 전 이 책에 담긴 정보와 통찰력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10년 전 이 책들의 숨은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다는 전제하에. 영어를 못한다고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정보를 '언제' 접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 왜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변론을 마친다.
요즘 "이것을 배우지 않으면 여러분은 변화하는 시대에서 도태될 것입니다."라고 표방(협박)하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이 너무 많아 조금 뿔이 나있는 상태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당신은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번역기도 너무 잘 되어 있고, 구글도 실시간 통역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외국어를 공부함으로써 얻는 여러 혜택들을, 이 글을 보는 분들께서도 꼭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인가를 공부할 때 "왜"를 알면 그다음은 꽤 수월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리두기'를 위해 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책을 집필한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책이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것은 외서 번역을 하고 해외생활을 하며 다양한 문화와 취향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글을 접한 적이 있다. 모두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지지 않은가? 자신의 문화권, 안전범위(comfort zone),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들은 하나같이 다 멋져 보인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는 외국어를 공부하고 계신 분들께 도움 될만한 전략과 함께, 다소 주관적이지만 나만의 레시피도 공유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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