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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May 12. 2019

갑작스러운 서울행의 다섯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끝나기는 하는 걸까?

1. 이번에 다녀온 서울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북유럽과 달리 완연한 봄이었다. 카디건만 입고 다녀도 충분했다. 그러나 내가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내 그림자는 희미했다. 고향에서도 이방인이 되었다. 서울 여기저기를 헤맸지만, 내 자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자유로운 동시에 외로웠다. 오며 가며 만난 사람들의 작은 친절과 호의가 어느 때보다도 고마웠다.


2. 작심삼십일이 끝났다. 신나게 떠들어제낀 한 달이었다. 대단한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이 여정을 무사히 마쳤고,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마침 서울에 있었던 덕분에 뒤풀이도 참여했다. 한 달 동안 개인적이고 사소한 글들을 서로 주고받은 탓에 아는데 모르는, 모르는데 아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마주 보기는 어색하지만, 이야기하기는 편하고, 친숙한, 그런 미묘한 만남이었다. 이 관계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일단 여름의 어느 날을 기약하기로 한다. 


3. 파업 때문에 프랑크프루트부터 스톡홀름까지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면서 휴가가 이틀 더 생겼다. 집에 늘어져 있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아는 분이 듀펠 센터에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셨다. 주말 출근을 앞둔 세명이와 빠르게 커피를 마시고 듀펠 센터가 있는 장한평으로 향했다. 유명 디자이너가 목욕탕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이 공간은 잠시 멀어져 있던 힙스터 문화가 어디에 있는지, 취향이 멀리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키드밀리가 입는 그 주머니 많은 옷은 어디서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가장 맛있다는 돈가스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또 질 수 없다는 듯 스웨덴 이야기를 해댔다. 말하는 내내 스스로가 모순적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스웨덴을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혼자 가지 않았다면 조금 달랐을까?


4. 말뫼, 파리, 서울로 이어지는 긴 여정 끝에 스톡홀름으로 돌아왔다.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끝내고 마침내 여유로운 주말이 찾아왔다.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 아이스 라떼 한 잔 시켜놓고 여름 전까지 끝내야 하는 일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그 모든 여정들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떠도는 걸까?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끝나기는 하는 걸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떠돌아야 하는 걸까? 


5.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거기에서 받아들여질까? 요술 장화를 신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슐레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내 운명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삶은 과연 온당한가? <여행의 이유>, 김영하


앞으로는 봄이나 가을에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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