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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24. 2022

베트남 청년 '안'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먼 시간인데.

“베트콩, 물때 안 놓치려면 서둘러야 해. 빨리빨리 가자.”

아마도 ‘안’을 찾는 모양이다. 베트콩은 안의 별명이다. 성질 급한 소장이 기다리다 못해 사람을 보낸 듯싶다. 아직 잠이 덜 깬 안이 하품을 참지 못하면서도 재촉하는 소리에 멱살 잡힌 듯 비몽사몽 현관을 나선다.


30대 초반인 안은 베트남에서 왔다. 올해 초 직업소개소를 통해 장자도로 옮겨 왔지만,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째다. 어업 비자를 받아 돈 벌러 왔다. 처음에는 보령에서 연안 양식장 관리를 했었다. 주꾸미와 꽃게를 잡는 일도 어렵지 않았고 사장님도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 올해 초부터 김양식 하는 배를 타고 있다.   

“김양식? 힘들어요. 기계 없어요. 손으로 다 해야 돼요.”  

일하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따로 한국말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눈치가 빨라 말귀가 밝았고, 조사가 없는 그의 말이지만 의사소통에 별문제는 없었다.

“새벽에 일찍 바다 나가요. 오후 늦게 들어와요. 놀 시간 없어요. 그렇지만 섬? 많이 심심해요.”              



오늘은 도형 씨네 김을 터는 날이다. 농사로 치면 마무리 수확을 하는 셈이다. 분양받은 포자를 김발에 붙여 바다에 설치한 것이 지난해 가을이었다. 아무리 바다가 길러낸다고는 하지만 물고기 잡는 것과 달리 기르는 어업은 양식장 관리에 손이 많이 간다. 갯벌에 말뚝을 박아 지주목을 세우는 방식과 달리 김발을 물에 띄우는 부유식 김양식은 들어가는 품이 많은 대신 수확량이 월등하다. 더구나 물이 깊은 바다에서도 양식할 수 있다. 섬들이 모여 있는 고군산군도 안쪽 바다는 바람과 파도의 피해가 적고 조류 소통이 좋은 데다가 내륙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양염류가 풍부해서 오래전부터 김 양식이 이뤄졌다. 도형 씨네 양식장이 있는 장자도와 관리도 사이도 그렇지만 선유도에서 비안도와 신시도 안쪽 바다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양식장이 들어차 있다. 아무리 목돈이 된다지만 결코 만만찮은 고역이 따르는 일이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 김발 뒤집기도 그렇고 어쩌다 지나던 배에 걸려 줄이 잘려 나가기도 한다. 떠다니다 걸린 쓰레기도 그때그때 걷어내야 한다. 한겨울 내내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김을 채취하는 전용선이 따로 있다. 선두에 김발이 잘 얹히도록 둥글고 긴 파이프가 달려 있고 바로 뒤쪽에 면도기처럼 김을 깎아내는 칼날이 달린 채취기가 있다. 사람 키 정도 되는 폭의 김발이 채취선을 앞뒤로 관통해서 지나가면서 잘린 물김이 바닥에 쌓이는 방식으로 채취한다. 최소 세 사람이 한 팀으로 일한다. 두 사람은 뱃전의 양쪽에서 김발의 흐름을 잡고 뒤에서 운전을 맡는 한 사람이 작업 전체를 통제한다. 날카로운 칼날에 김발이 잘리기도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김 때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다에 떨어질 수도 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밖에 없고 서로 호흡도 잘 맞아야 하는 일이다. 방수에 방한복을 겹겹이 껴입어도 김발에서 날리는 물보라는 해뜨기 전 겨울 바다가 품은 한기로 곧장 얼어붙기 마련이다. 바람도 봐야 하고 파도도 살펴야지만 물때도 맞춰야 한다. 조류가 바뀌는 시간에 거칠어지는 물살을 타며 작은 배를 조정하는 일은 오랜 경력자들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서 김이 제철인 계절이면 자주 방송을 타는 김 터는 장면 때문에 김양식은 극한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보니 점점 일꾼 구하기도 힘들다. 고군산 일대에는 안처럼 외국에서 온 젊은 노동자들이 많다. 해마다 들쑥날쑥하지만 대략 서른 명 조금 안쪽이라고 한다. 주로 베트남을 비롯해 태국, 캄보디아, 스리랑카 같은 동남아시아 출신이다. 우리나라의 추위를 겪어보지 못한 그들이 체감하는 겨울 바다가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다.      


채취를 마친 물김은 경매를 통해 팔려 간다. 물김 경매는 대략 11시에 맞춰 진행되지만, 경매 순서를 정하는 사전작업이 있어 채취선들은 서둘러 경매장이 있는 신시항으로 모인다. 위탁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신시도 신시항은 북새통이다. 경매는 신속하게 진행된다. 채취한 물김이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부터 잠을 설치며 벌였던 고된 노동의 결과를 보상받는 순간이다. 경매 가격에 따라 짧은 희비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어 온 물김을 200킬로그램짜리 부대로 옮겨 담아 크레인으로 옮겨 무게를 잰다. 경매 가격과 물김의 중량을 곱한 한 장의 전표를 손에 쥐면 작업이 끝난다. 긴장이 풀리면서 몰려드는 한기와 허기를 달래는 김양식 일꾼들만의 뒤풀이가 있다. 갓 건져낸 물김에 된장을 적당히 풀어 끓여낸 김국이다. 뜨거운 김국 한 그릇에 라면 사리를 추가로 넣는다. 더없이 시원한 국물로 몸을 달래야 비로소 일과가 마무리된다. 현지가 아니면 그 맛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또 한 번 맛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도 한다. 베트남 청년 안도 소주 한잔 섞어가며 그렇게 속을 달랜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젊은 시절 고생 담을 두고두고 되풀이할 것이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혹독했던 겨울 바다의 추위와 더불어 김국의 맛을 떠올려가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겨울이 한철인 김 양식 일은 여름에는 쉰다. 안은 짧은 여름 동안 잠시 멸치잡이 낭장망 일을 거들다가 7월부터 김발 수선하고 치는 일을 다시 시작할 거라 한다. 무녀도에서 김 양식 일을 하는 ‘룽’이 찾아왔다. 그도 베트남에서 왔다. 하노이에서 조금 떨어진 탄호아가 고향이라며 아내와 두 아이의 사진을 보여준다. 일곱 살 딸은 아빠가 군산에서 사다 준 겨울왕국 엘사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었다. 모처럼 휴가에 군산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단다. 선착장에는 스리랑카 청년 샤시카가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를 들고 배를 기다리고 있다. 한 달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한적한 선착장이지만 객선을 기다리는 내내 안과 룽의 베트남어 수다가 끊기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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