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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May 30. 2022

대장도 사람 윤연수

“조기 떼가 몰려오는 철이 되면 저기 칠산 앞바다부터 장자도까지 배가 그득했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묶어놓은 배들만 건너도 선유도까지 갈 수 있었어. 섬은 작아도 조기 덕에 일찌감치 수협이 들어섰고 학교도 생겼지. 왜 ‘장자어화’라고 했겠어. 군산에 있는 신풍 공립학교 고군산 분교로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 6년제 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데. 큰 인물들이 많이 났지. 군산시장을 지낸 김길준 씨도 그렇고 김제경찰서장을 지낸 김성중 씨도 다 여기 출신이야. 내가 54년 말띤데, 전쟁 직후에 태어난 동갑내기 스물두 명이 아직도 계 모임을 해.”     


대장도 윤연수 씨를 만났다. 일주일에 두어 번 자원봉사로 섬의 역사문화를 해설하고, 생업으로 펜션을 운영했다. 해안 길 바로 옆으로 2층 건물에 빨간 지붕을 얹은 그림 같은 집이다. 객실의 창들이 선유도 방향으로 열려 있어 고군산 안쪽 바다 모습을 고스란히 들여놓았다. 뒤로는 돌출된 암석이 인상적인 대장봉을 등에 업고 해안을 따라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수석과 분재랑 어우러져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주인의 솜씨였다. 8척 중선배의 선주였던 선친 덕에 일찌감치 육지로 학교를 다녔다. 공부에는 별 재주가 없었지만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취미도 가질 수 있었다. 섬 구석구석 그려진 벽화며 귀여운 꽃 그림도 그의 작품이었다. 노후로 펜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를 통해 대장도로 귀촌해서 민박을 치는 사람도 두엇 된다고 했다. 오밀조밀 붙은 펜션들이 작은 섬 풍경의 주연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대장도는 바위섬이다. 장자도에서 이어진 조그만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시작되는 마을에 백여 명이 모여 산다. 논농사는커녕 텃밭 하나 제대로 가꿀 자리조차 없다. 바다로 나가는 험한 뱃일보다 마을 사람 거의 펜션을 하거나 낚싯배를 한다. 윤연수 씨처럼 토박이가 대부분이다. 두어 군데 새로 짓는 건물도 눈에 띄었다. 섬의 한쪽 귀퉁이를 따라 별도 선착장이 있어도 객선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은 장자도 선착장까지 마중 나간다. 바다 위로 막힘없는 시선에는 코앞처럼 보여도 짐을 들거나 캐리어를 끌기는 제법 먼 거리다. 이전에는 골프장에서 쓰는 전기 카트를 끌었는데, 장자도까지 연결도로가 나면서 소형 자동차가 늘어가고 있다.      


장자도와 대장도는 작은 다리로 연결된 한 섬이다. 차량 하나 겨우 지나고 가장자리 인도를 가진 폭 4미터, 길이 30미터 콘크리트 교량이지만 이곳 고군산 일대에서 처음 놓인 연도교다. 다리가 들어선 197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노둣돌로 연결된 징검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 때나 건널 수 없었다. 썰물에는 드러나도 밀물이면 물에 잠겨버려서 바다가 허락한 시간에만 통행이 가능했다. 더구나 두 섬 사이 좁은 갯골 물길은 물이 들고날 때 휩쓸리기라도 하면 어른도 빠져나오기 힘든 급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뗏목이나 노를 젓는 전마선으로 오가거나 짐을 날랐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장도 아이들은 아침 등교와 오후 하교 길에 종종 전마선을 탔다. 그런데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장자도 선착장에서 쌀가마니를 싣고 아이들까지 태운 쪽배가 급류에 휩쓸리면서 뒤집혔다. 다행히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어른들이 뛰어들고 바다 수영에 익숙한 섬마을 아이들이어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줄초상이 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날 사고 소식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기사로 실리면서 행정기관을 움직였고 마침내 다리가 놓였다.               



다리를 통해 두 개의 섬이 하나가 되었지만, 사실 두 섬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없지 않다. 외지인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하지만 어촌계장을 새로 뽑는다거나 정부지원사업의 대상지를 정해야 하는 사안이 생기면 감지되는 기류가 분명 있다. 선착장을 오가며 건네는 짧은 인사말의 억양이나 마주치는 시선의 온도같이 사소한 일상 속을 흐르고 있다.     


행정구역상 장자도에 딸린 섬이어도 대장도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졌다. 섬의 중심은 단연 대장봉이다. 바위산인 대장봉 정상에 오르면 시선은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뻗어가며 숨통을 터놓는다. 관리도 너머 기우는 해라도 만나면 붉게 피어오르는 석양 노을은 황홀경이다. 망주봉을 이정표 삼아 신시도와 무녀도 그리고 선유봉까지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장자도까지 내달려 온다. 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섬은 더 작다. 한 시절 풍요롭던 바다가 키웠던 ‘장자어화’의 영화가 믿기지 않을 만큼 발치 아래 장자도는 왜소하다. 

하지만 섬 안에서는 섬을 볼 수 없다. 우람하게 솟은 대장봉의 기개와 어우러진 대장도의 전경을 오롯이 보려면 장자도가 제격이다. 서로의 존재를 이웃의 시선을 통해 비춰가며 살아가는 것, 섬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근데 말이지, 믿기 힘들어도 이런 이야기가 있어. 옛날 어느 도인이 대장봉에 올라 이 근동을 살펴보면서 큰 인물들이 많이 날 거라 했다는군. 그리고 먼 훗날 육지와 긴 다리가 이어지고 동쪽으로 문이 열리면 군산도는 부귀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 개벽 천지 할 거란 말이지. 그래서 큰 대大, 길 장長이라고 섬 이름이 붙었다는구먼.”     


돌아 나오는 길,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해 걸음을 따라 천천히 대장교를 건넜다. 관리도 너머로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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