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다의 첫 소설『대만졸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본 남자친구와 대만 곳곳을 돌아다녔다.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대만의 대자연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던 매일이었다. 시간은 많았고, 그들은 젊었다.
그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가 새로운 풍경을 볼 때 나오는 천진난만한 미소에 같이 따라 웃었다. 어설픈 중국어로 그들은 열심히 대화를 했다.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 국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지도책 하나를 챙겨서 오토바이 여행을 떠나는 이 무모한 라이딩이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감정을 더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장시간 오토바이를 타느라 두 사람 몰골이 말도 아니었다. 도로 위를 달리다 보니 강한 바람을 직격탄으로 맞아 머리는 엉망이었고, 뜨거운 햇빛에 피부는 검게 그을리거나 미처 선크림을 다리까지 바르지 못해 화상을 입기도 했고 오랜 시간 똑같은 자세로 서로 앉아 있다 보니 근육통이며 삭신이 쑤셨다
그럼에도 뭐가 그렇게 둘은 재밌는지 웃었다. 체력이 넘쳤고 대만 곳곳을 보는 게 즐거웠고 신기했으며 이 모든 여행 과정을 우리 두 사람의 어설픈 중국어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며 목적지까지 기어코 가는 이들의 근성과 끈기가 갓 성인이 된 한국, 일본 남녀에겐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은 비가 자주 왔기 때문에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으며, 배고프면 잠시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주먹밥을 사 먹고, 목을 축이기 위해 우롱차를 마시기도 했다. 가다가 멋진 풍경이 나오면 잠시 멈추어서 한 없이 바라보았다.
정해진 일정도 장소도 없이 끝도 없는 도로를 질주하는 사이 그녀는 어느샌가 시간에 대한 강박이 서서히 사라짐을 느꼈다.
시간을 이렇게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이 이렇게 대만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지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아니 그 누구도 지안의 이러한 돌발 행동을 에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지안은 이제 막 고등학생 티를 벗어났지만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어색했다. 자유롭지만 이 자유가 과연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별이 잘 되질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누리는 이 자유에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지안은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 한 상태이며 이렇게 본인이 여행 경비로 얼마 되지 않는 돈일지라도 본인의 정당한 자신의 노동값에 대한 돈이 아닌 부모님의 원조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어학당에 소속되어 있는 것 외에 그녀의 신분은 외국에서 불안정했으며 만약 내년에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러한 어학당 생활을 한 번 더 해야 할 텐데 그녀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당시에는 아직 "율로족"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이었다. YOU ONLY LIVE ONCE 이제는 이 의미가 변색되어 버렸지만 어쩌면 당시 지안은 율로족처럼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대만은 어쩌면 그녀한테 맞는 곳일지도 모른다. 한국처럼 단일민족이 아닌 원주민, 객가인, 민남인, 외성인 등으로 다양하게 사회를 이루고 있으니 외국인인 그녀가 1명 추가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더군나 여행에서 만난 대만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상냥했다. 물론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긴 했으나 당시에 그녀에게 그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며칠 째, 오토바이를 장시간 타다 보니 할 일도 없고 뒤에 덩그러니 앉아 있게 되자, 지안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물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까?
지안은 유학을 왔지만 사실 앞에 "도피"라는 말이 들어가야 맞다고 생각했다. 가족도 친구도 그 아무도 없는 낯선 타국에서 홀로 언어를 새로 익히고 대학까지 졸업해서 이곳에 취업을 한다면 정말 지안이 원하는 대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녀의 유학은 이제 더 이상 도피 유학이 아니다. 이민이 될 것이다. 또 이 일본 남자친구와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이중국적을 취득해서 일본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과거를 세탁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개명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건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닐까?
원가족과의 관계가 흔들리니 지금까지도 한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삶이 괴로웠다. 어린 시절 힘들게 겪은 가정불화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 그리고 학군지에서 자라면서 상처로 버무려진 인생이 가엾고 또 가여웠다. 한국만 벗어나면 모든 게 정말 다 해결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죽을 때까지 외국에서 살 자신은 있는 것일까.
그때서부터 지안은 어쩌면 끝이 없는 고속도로를 향해 달리는 오토바이에 몸을 실으며 그 해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바라는 행복은 어디로 가야만 있는 것일까?
우연히 도피처로 대만에 왔지만 이곳에서 평생을 산다면 어떨까? 아직 1년도 살아보지 않는 지안은 이 물음에 선뜻 대답을 못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대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안이지만 어쩌면 그녀가 대만에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면 이보다 더 쉬운 정착하는 길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책임 없는 이 자유로운 여행자 신분에선 대만은 최고의 환경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과 값싼 먹거리들이 그녀 입맛에도 잘 맞았고, 길을 묻거나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친절학게 도와주려는 대만사람들을 보며 그녀도 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말을 잘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대만에 대해 정확하게 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평생을 죽을 때까지 외국에서 정착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을 잠시 했거나 자주 해외여행을 했다면 또 모를 일이었으나 그녀는 대만이 첫 해외였고 그 전까지 쭉 한국에서만 살았다.
어찌되었든 그저 한국만 아니면 되었다.
나를 아프게 한 한국만 아니면 정확히는 원가족하고 멀어진다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일본인 남자친구도 있었다. 대만이 아니라면 차선책으로 일본도 있었다.
즉, 해외로 나갈 길은 얼마든지 있어보였다.
그녀는 훗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지만 그저 신기루처럼 분명 어딘가에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안정과 행복이 있을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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