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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만졸업 04화

4. 오토바이

by 이진다

이진다의 첫 소설『대만졸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여행을 갈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아니 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이라는 것은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유가 없고 도리어 그것이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가면 가족 불화로 인해 무조건 싸움이 일어났고, 늘 기분 좋게 돌아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족들은 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원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에 한가롭게 여행을 다닐 기분도 시간도 나질 않았다.

모두가 시험이 끝나고 합격을 한 누군가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12년간의 입시를 고생한 의미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누군가는 재수 입시 학원을 등록해서 다음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다.


힘들었던 입시를 지나 명문대에 들어간 오로지 그들만이 진정으로 성인이 된 것에 축하와 박수를 받으며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자식이었고, 동시에 학교의 명예를 살렸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은 큼지막하게 현수막에 걸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안은 밑에서 힘 없이 박수를 치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날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제안한 대만 섬 전역을 도는 오토바이 여행은 너무나도 그녀에게 있어 특별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고, 처음으로 대만 어학당 수업이 아닌 다른 경험으로 대만을 즐기는 것이 너무나도 설레었다. 그에게서 고백을 받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릴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나 같은 사람 여행을 가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이미 그의 손에 이끌려 어디를 갈지 지도책을 펼치며 대만 섬 전역을 보고 있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는 한국인 여자친구를 위해 손수 헬멧을 선물로 준비했다. 그녀와 어울리는 색상은 밝은 분홍색이라며 말이다. 너무 눈에 확 띄는 색이고 한 번도 이렇게 밝은 색을 착용해 본 적이 없는 지안은 왠지 모르게 쑥스럽고 부끄러우면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늘 시간에 쫓겨 얼룩이 묻더라도 오염이 드러나지 않는 진한 무채색으로 옷을 입고 다녔던 그녀였기 때문에 이런 화사한 색이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헬멧을 잡고 한참을 머뭇거리자 보다 못한 그는 얼른 써보라며 그녀에게 헬멧을 씌었다.


" 잘 어울린다 "


아.. 진짜 이 심장은 언제쯤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칭찬에 어색하게나마 웃어 보였다. 나와 동갑이면서 이미 면허증이 있는 그가 신기했다.


일본에서도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탔기 때문에 안전운전은 걱정 말라고 했다. 대만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동수단으로 오토바이만 한 것이 없기 때문에 국제 면허증을 신청해 오자마자 구입했다고 한다.


오토바이가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그의 오토바이의 핸들이나 좌석을 만졌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중고품이라며 그렇게 비싸지 않다며 막 다루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 얘.. 날라리인가...?'


분명 날라리가 맞는 듯했다. 학교시절 공부도 안 하고, 일본에서 대학도 안 가고, 여기 와서 나랑 어학당에서 중국어를 같이 배우는 내 남자 친구는 확실히 다른 일본인과 비교했을 때 특이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일본인과 가볍게 인사는 나누지만 그렇게 친한 일본인은 주변엔 없는 거 같았다. 어쩌면 내년에 대만에서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교환학생이나 워킹홀리데이 같은 단기 비자이기 때문에 굳이 친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득 다른 일본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가 안쓰러웠다. 분명 자신과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지만 대화가 원활하지 않아 전자사전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이 모든 상황이 답답할 거라 생각했다.


" 있잖아.. 심심하지? "


" 뭐가?"


" 내가.. 중국어랑 일본어를 잘 못해서.. 심심하지? "


" 왜 그렇게 생각해? "


" 왜냐면.. 내가 한국인이니까..."


그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잠깐 한숨을 짧게 쉬다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이 한국인 여자친구가 오해를 안 할까 싶은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그의 태도에 그녀는 초조했다. 괜히 말을 잘못 꺼낸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한국어라면 오해 없이 전달될 말이 괜히 쓸데없이 부족한 중국어로 짧게 전달한다는 것이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전자사전을 다시 꺼내려던 찰나에 그가 재빨리 전자사전을 닫았다.


" 네가 한국인인 건 상관없어..

지안이라서..

너라서 좋은 거야."


" 아.. 그래.. "


" 너랑 있는 게 좋아서 내가 계속 옆에 있고 싶은 거야. "


도대체 나와 똑같은 수준으로 중국어를 배웠는데 이 남자는 어학당에서 배운 단어와 문법을 적절히 잘 쓴다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고백을 듣게 되어 또 배시시 웃는 그녀 특유의 미소가 떠오르자 그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오토바이에 앉아 보라고 했다.


그녀가 오토바이 좌석 끄트머리에 앉자, 그가 바로 앞자리에 올라탔다. 그러자 오토바이가 중심이 잠시 흔들려 휘청 거다. 이거 둘 다 넘어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찰나 그가 그녀의 두 손을 끌어 자신의 허리를 잡게 했다.


" 꽉 잡아"


그렇게 그와 함께 대만 섬 곳곳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여행을 했다. 햇살에 눈이 부셨다. 하지만 따뜻했다. 그녀는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한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콘크리트 건물이 익숙했다.


그런데 대만에 오자 푸르른 잎사귀를 감싸 안은 울창한 나무들이 더해 숲을 이루었다.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푸르른 바다와 어우러진 그 자연경관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지안은 감탄을 했고 어느새 그 이국적인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넋이 나갔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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