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열살차이 05화

5. 교제

by 이진다

이진다의 두 번째 소설『열살차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이며,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 그래요. 사귀어요. "


재헌은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지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안은 다시 탄두리 치킨과 버터 난을 집어 먹으며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재헌은 혹시 나이차이 나는 연애가 어떤 건지 여자가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 흔쾌히 고백을 받아들이니 재헌은 슬며시 기뻤다.

재헌은 이성적으로 지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외모도 상당히 재헌의 취향이었지만 무엇보다 엉뚱한 점이 귀엽고 털털한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말을 굉장히 재미있게 잘해서 내성적인 자신과 다르게 지안은 혼자 하루 종일 떠들어도

이야기 소재가 마르지 않는 거 같았다.

대만에서 한국어를 강제적으로 못하게 된 게 한이 맺혀 입이 터졌다고 그녀는 말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쉽게 고백을 받자니 이 건으로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신경 쓰였다.

무슨 연유로 자신과 사귀는 건지 궁금함이 올라왔다.


" 지안 씨는.. 괜찮아요? 나랑 사귀는 거? "


10살이나 어린 여자한테 고백하고 그녀가 받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재헌도 상당히 떨렸다.


"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결혼이나 그런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데...

나는 지안 씨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요. 지안 씨는 어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거고... "


" 저 남자 얼굴 안 봐요. "


재헌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지안을 봤다.


" 저는 마음 봐요. 그래서 오빠는 마음이 좀 이쁜 거 같아요.

그리고 결혼은.... "


재헌은 또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지안을 다시 빤히 쳐다봤다.


" 뭘 지금 생각해요. 운명이죠. 연애해 보고 서로 재밌고 괜찮으면 결혼하는 거죠.

저 근데 시금치 카레랑 탄두리 치킨 좀 더 시켜도 돼요? "


재헌은 듣더니 폭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재헌은 웨이터를 불러 그녀가 말한 것들을 다시 추가 주문했다.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를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다만... 얼굴을 안 본다는 것은 좀 기분이 묘했다.

어디 가서 그렇게 외모가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이쁘다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 지안 씨.. 진짜 얼굴 안 봐요...? 그래도 나는요? "


지안은 물끄러미 빤히 재헌의 얼굴을 봤다.

재헌은 지안이 이렇게 자신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양쪽 귀가 뜨겁게 닳아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 음.. 오빠는.. 펭귄 닮은 거 같아요. 아기 펭귄 느낌"


졌다.

재헌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황당하였다.

그리고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안은 20대 초반에 외국이서 겪었던 처절하고 찌질했던 연애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연애관을 깨달았다.

그녀의 연애관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귀는 과정 속에서 자신과 합을 이룰 때 "거슬림" 이 없으면 된다고.

그런 점에서 재헌과 꽤 알고 지냈던 시간 속에서 지안은 이 "거슬림"이 없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지안과 입맛도 잘 맞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지안의 입맛이 워낙에 아재 입맛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남자 하고도 사실 잘 맞았을 것 같지만 정말 그녀는 못 먹는 게 없었고,

그녀를 위해 재헌이 골라오는 맛집들은 상당히 훌륭했고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은 "장기연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차피 올해도 내년에도 이 사람을 만날 거라면 굳이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장기연애를 생각했을 때 진작에 안 될 인연이었다면 포기하는 것이 맞았다.

그랬으면 그나 나나 좀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붙잡고 또 붙잡고.

미련으로 얼룩진 연애를 시간을 끌면서 남겨진 것은 아픔과 상당한 후유증뿐이었다.

그래서 지안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연애만을 하고 싶었다.

연애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이라 생각하는 지안은 어쩌면 꽤나 보수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외적인 조건"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지난 연애에서 지안은 이것 때문에 크게 데인 것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남이 이룩한 것에 욕심을 낼 생각도 없고, 그것에 현혹되어 연애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설마 하는 기대감이 욕심으로 변질되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 그녀에게 남자의 "키"는 "뼈길이"였고, 외모는 도대체 뭘 봐야 하는지 모르니 딱히 이상형도 없었다.

머리가 길면 여자고, 머리가 짧으면 남자이고 이 정도랄까.

"나이차이"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이 해외에서 오래 거주하다 보니,

인종, 국적, 나이 상관없이 다 같이 어울리는 문화 때문인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어머니의 대장암 사건 때문에 더더욱 이 생각은 확고했다.

가는 데는 순서 없다고.


그러니 재헌이 자신의 외모가 어떠냐는 물음에도 딱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재헌을 만나고 나서 자신에게 대한 행동들이 정말 거슬리게 하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이 남자랑 있으면 사이드 메뉴로 부담 없이 피순대, 당면사리, 미니족 등을 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장난기를 빼고 말하자면 그는 너무 진심을 다해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늘 동호회에서 만나는 날이면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어떤 날은 동호회를 째고 오로지 그녀의 입맛을 저격한 아재 입맛 코스 요리로 데이트를 한 적도 있었다.

어쩐지 친한 형이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은데 혼자 가기 민망해서 재헌을 같이 데리고 간 건데,

친한 형이 지하실에서 스윙댄스를 추고 있는 동안

이 지안과 재헌 두 사람은 본인들이 자각하지 못 한 사이에 썸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리 둔한 지안이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외모가 구별이 갔는지도 모른다.

펭귄 닮았다고 말이다.

그것도 아기 펭귄 말이다.




다음 날, 서로 교제하기로 한 첫날.

약속장소인 여의도 역 근처에서 지안은 재규어 차에서 내리는 재헌을 봤다.

평상시에는 편안한 캐주얼 옷차림이라 잘 몰랐는데,

깔끔한 네이비 정장에 짙은 녹색 넥타이가 굉장히 잘 어울려 지안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안은 순간 숨을 고르게 됐다.


" 와.. 슈트핏 멋지네. "


늘 지안은 뒷좌석에 앉았는데 오늘은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재헌이었다.

차에는 그녀를 위한 담요와 신나는 음악, 간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대우를 처음 받아보기도 하고, 바로 옆좌석에서 운전하는 남자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부담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녀는 자기가 그래도 무엇을 위해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 오빠 "


" 네. "


" 그.. 기름값은 제가 낼게요. "


재헌은 운전 중에 한 손으로 꾹꾹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했으나 역시 무리였다.


" 기름값이요..? 왜요? "


"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저 때문에도 돌아다니고.

제가 그래도 월급 받았어요. 기름값 저한테 청구하세요. "


" 기름값 말고 다른 거 사줘요."


" 어떤 건데요? "


" 나중에 말해줄게요. "


재헌은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시속을 올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가보지 못 한 곳이 천지일 테니.

그녀와 함께 갈 곳이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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