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열살차이 09화

9. 장기연애

by 이진다

이진다의 두 번째 소설『열살차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이며,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양쪽 중이염에 걸렸습니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린 까닭에 일주일간 병간호를 하느라

글을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




지안의 장기연애는 행복하면서도 슬펐다.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고, 사이도 좋았고, 싸운 적도 없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한 없이 막막하기만 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두 단어가 중첩될 수 있겠냐만은..

기약 없는 장기연애야말로 얼마나 피가 말리는지 지안은 연애 기간 내내 잘 알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정신승리하며,

지안과 상대방의 시간을 서로 긁어먹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대만에서 한 외국인과의 장기연애는 첫 연애지만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슬픔과 힘듦을 이겨내는데 충분한 회복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하는 두 번째 장기 연애의 경우에는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남자한테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핑계로 시간을 끈다는 것이

지안은 인간적으로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의 시간이 소중하듯이 그의 시간도 소중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

그는 나보다 10살이나 연상이었기 때문이다.


재헌의 주변 사람들 특히 친한 친구들은 난리가 났다.

더러 지안을 향해 적개심이나 부정적인 시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지안은 재헌의 앞날에 걸림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 걔는 헤어지면 겨우 20 후반 30 초반일까? 너랑 헤어지면 바로 결혼이 가능한데

넌 뭐냐? 나이 30 후반에 이제 곧 40이다"


하나같이 전부 맞는 말이었다.

재헌은 친구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씁쓸하게 웃으며,

만약에 지안이 그러고 싶다면 그 또한 그녀의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런 그를 보며 친구들은 답답해했고, 그녀는 결국 부모님의 핑계로 결혼하고 싶지 않아 하고

순진한 재헌을 꼬드겨 갖고 노는 아주 나쁜 여자라고 말했다.


반대로 지안의 주변인들의 입장 또한 별 다를 게 없었다.

애초에 20대 중반이 굳이 30대 중반을 만나야 하는 관계가 그다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부모님이 그렇게 싫어하고 반대를 하는데 굳이 이 관계를 고집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을 것이다.




당시의 재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지안은 머리가 아팠다.

연애 자체로써는 행복하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 갈수록 이 관계는 결국에는 "헤어짐"이라면

애초에 이렇게 서로의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스트레스와 실망을 안겨주면서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장기연애가 3년 이상 지속 되었을 무렵 지안은 이 관계에서 결국 문제점은 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재헌의 주변인들 주장처럼 "부모의 반대"는 형식상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말대로 자신이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될까 봐, 얼마 가지 못 해서 이혼을 하게 될까 봐 등등

애초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괜찮은 직장을 구해 가사이나 육아에 구애받지 말고

혼자 살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또한 만약에 결혼을 할 거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람직한 사 위상을 데려오길 바랐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육각형의 남자로서 그의 성격은 배제하고 사회적으로 내비치는 외적인 조건이

훌륭해야 하며, 그것이 소위 결혼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성공적인 조건들이라 여긴 것이다.


지안은 그때만큼 "자기 객관화"가 훌륭히 되었던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육각형 남자를 사윗감으로 원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상대방 집안에서는 바라는 조건이 없겠는가.

자신은 얼마만큼 상대방 부모에게 희생을 해야 하고, 조건에 충족해야 할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안은 애초에 자신의 집안이 너무나 부풀려져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의 트라우마와 아픔을 드러냈을 때

그것을 온전히 받아 줄 수 있는 상대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결혼 생활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결혼식"이 아닌 "사별"까지 함께 하는 배우자와의 여정이니까.


지안의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최악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했고, 흔히 말하는 자식 때문에 이 결혼 생활을 버티고 산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하고 싶다며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가정 불화가 심각한 집안에서 자란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겪어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지안은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일지라도 그들은 그들이고, 자신은 자신이라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의견은 참고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일 수는 없었다.


또 지안은 현재 자신이 만날 수 있는 남자들 중에 그가 최고일 것이며,

이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당시에는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만큼 재헌은 지안에게 진심이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헌은 자신의 나이 때문에 지안을 압박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제대로 결혼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항상 불투명한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암담하게 이야기할 법도 한데 항상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으며, 그의 미래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러니 재헌의 친구들의 말대로 그녀가 결국에는 부모님의 반대를 걸고넘어져서 헤어진다고 한들

그녀는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이미 짐작할 수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너무 그가 잘해주는 게 익숙해진 지안은 눈이 높아질 대로 너무 높아졌을 것이고,

이 이상 자신에게 잘해주는 남자가 아니면 절대로 결혼할 마음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며,

나아가 그렇게 눈이 높아진 노처녀 상태로 독거노인으로 인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산적으로 인생을 셈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선택한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고, 스스로가 그가 싫어져서 떠나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한 번뿐인 결혼을 그렇게 결정한다면

당시에는 맞는 선택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르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뜻처럼

결국 그만큼의 고통이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의 결혼 적령기는 지금이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그녀의 소망을 이루고 싶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부모도 주변인들도 결국에는 타인이었다.

어디까지나 지안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이고,

지안의 부모님 말대로 그녀가 틀린 선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로서는 아무것도 확정 지어진 게 없었으니까.


지안은 이제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해야 했다.


설령 그녀의 결혼식에 부모가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래도록 그녀가 부모를 못 만날지라도 그것 또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 장기연애 과정에서 지안의 어머니는 다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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