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열살차이 11화

11. 인정

by 이진다

이진다의 두 번째 소설『열살차이』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 소설입니다.

현실의 인물,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이는 우연의 일치이며,

일부 인물 및 장소는 서사의 흐름상 가명 또는 허구적 설정을 사용하였습니다.




딸아이는 자신과 완전히 달랐다.


가정과 가족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랬다.

몇 년째 저러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자신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딸은 자신에게 욕심을 그만 부리라고 했다.

나는 내 딸이 그저 더 준수하고 잘난 남자를 만나길 바랐던 것뿐이다.

내 딸이 너무 눈이 낮은 탓에 그렇게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왜 하필 불안정하게 사업하는 남자를 만나는지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고,

더구나 그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것도 싫었고, 순진한 딸을 꼬드겼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었다.


왜 딸은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일까?

이 모든 게 자신이 대장암에 걸려 딸이 캐나다로 진작에 나갔어야 했는데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딸이 공무원이든 공기업이든 대기업을 준비해서 입사하면 더 시야가 트이고,

만나는 사람의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딸은 상당히 실망하고 상처받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곤 했다.

하루는 여전히 재헌과 사귀는 건가 싶어 딸의 근황을 물어보았다가 딸이 폭발한 일이 있었다.


" 엄마는 현실감각이 없어도 정말 없구나.

엄마의 결혼이 불우한 탓을 그만 아빠와 시댁 핑계를 대.

다 엄마가 자초한 거니까. "


어렸을 때는 그렇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대신 남편을 향해 싸워주던 딸은 이제는 없었다.

딸은 착한 딸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요목조목 자신의 말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먼저 그놈의 "커리어" 좀 그만 입에 달고 살라고 했다.


자신에게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운운하는데 본인이 그 업무를 해보고 나서 자식에게 추천하는 거냐고 했다.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일이 정말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어찌 알 것이며,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몇 년을 또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아냐고.

그 일이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먹고사는데 지장 없이 돈을 벌고 있으며

부모에게 손 빌리는 일이 없을뿐더러 엄마의 "황금 트로피"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또 반대로 말하자면 상대방 자식의 직업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을 원하면서

그 상대방 부모가 원하는 니즈를 맞춰 줄 자신이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음은 자신은 이미 부모에게 손을 안 빌린 지 오래되었으며,

이미 진작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동거니 여행이니 어디까지 진도 나갔니 등의

돌려서 질문하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네가 딸아이니까 그러는 거라고 했지만 딸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 그게 아니라 잤냐 안 잤냐가 궁금한 거 아니야? "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낯 뜨겁게 말을 꺼내버리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이 놈의 계집아이의 고약한 말투를 고쳐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은 더 날뛰었다.


" 그렇게 나이 30 가까이 되도록 여행도 안 가고, 남자가 뭔지도 모르고,

회사 집 회사 집 하면 뭐가 남는 건데?

그게 내 인생이야? 엄마가 바라는 말 잘 듣는 인형 흉내 내는 거지.

아무런 경험 없이 어떻게 내 배우자를 찾아?

난 거짓말할 생각도 없고 적나라하게 다 솔직하게 얘기할 테니까 생각하고 질문해 "


마지막으로 딸은 자신의 가치관을 완전히 혐오하고 싫어했다.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우했기 때문에 딸은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자식 뒷바라지 하는 그러한 시시한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애도 굳이 낳지 말고, 시댁이나 남편한테 묶여 살지 말고.

혼자서 자유롭게 말이다.


" 엄마가 뭔데 내 인생을 그렇게 혼자 독거노인으로 살게 비는 거야?

엄마의 결혼 생활이 불우했던 이유는 엄마가 완전히 정서적으로 독립이 안 되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왜 시시해.

혼자 여행 가는 것도 어느 정도껏 혼자 가야지.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거고 내 꿈에 대해 엄마라도 시시하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


쉴 새 없이 몰아 새우는 딸은 호흡을 가다듬도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 나는 이제 엄마의 허락은 필요 없어.

엄마를 설득시킬 생각도 없어.

난 결혼할 거고, 엄마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어.

공석이면 내가 좋아하는 부모의 얼굴 상으로 배우를 대역으로 세울 테니까 "


그 말을 끝으로 딸은 연락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딸이 정말 자신을 초대하지 않고 결혼식을 올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 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었다.

이런 와중에 또 몸이 안 좋아서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되니 정말이지 어쩌면 딸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안정적인 것은 없으며, 자신도 후회되고 끝내고 싶었던 결혼 생활에 대한 보상을

딸에게 투영시켜 자신이 원하는 사윗감으로 골라야 무언가 심리적 만족감이 채워질 것 같았다.

딸의 행복 보단 주변의 시선과 지난 잘 자신의 불우하고 힘들었던 결혼 생활에 대한 경험을 통해

딸의 미래를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도 맞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크게 걱정을 했던 것은 연애 시절 내내 자신들이 이렇게 반대를 했기 때문에

재헌이 결혼 후 딸아이에게 혹시나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들어 낸 망상이 아닐까.


딸은 늘 자신의 기대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자신보다 재헌을 신뢰하는 딸의 모습.

그리고 처음으로 이토록 자신의 말과 가치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자신의 뜻을 절대 굽히지 않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제는 30이 다 되어가는 딸의 뜻을 꺾어 파투 시킨다 한들

그 뒷감당을 부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딸이 주장하는 것들이 정말 틀린 내용일까.

사실은 너무나 진실이고 솔직하기 때문에 더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뇌졸중 수술 날짜가 잡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워낙에 수술의 난도가 높다고 했다.

하루라 빨리 교수님을 결정하고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딸이 대신 수술 동의서를 사인했다고 했다.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고 깨어나서도 잘 못 하다가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신체를 일부 못 쓰는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딸의 얼굴을 보니 좋았다.

딸은 눈물을 꾹 참은 채 수술을 잘 받고 나오라고 기도했다.

어쩌면 정말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까지도 아마 딸아이 곁에서 계속해서 위로할 딸아이의 남자친구 재헌이 떠올랐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딸아이에게 재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재헌의 긴장 한 목소리와 함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하세요. 어머님입니다. 재헌입니다.

지안 씨로부터 이야기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안전하게 속히 완쾌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


왜인지 그 걱정 말라는 말이 안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몇 년간 온갖 타박과 혐오감 가득한 시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딸아이 곁에 있고 자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이 남자에게 말을 전했다.


" 내가... 수술이 잘 끝나서 산다면.. 그때 정식적으로 다시 인사하죠. "


그렇게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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