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감동은 직접 말하지 않는 것

시인되기

by 이윤인경
시의 감동은 직접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섹스에 강제성이 부여되면 범죄가 됩니다. 달구어지지도 않은 몸을 헤집고는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게 되면 고통에 놀라 밀어내던가 힘에 부쳐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다가 기회를 봐서 달아나게 됩니다.
옛날 영화에서처럼 골목길 구석으로 밀어 완력으로 입술을 빼앗는 식의 방식은 고리타분한 것이죠.

계절은 시를 씀에 있어서 가장 좋은 재료가 됩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봄의 꽃을 노래한다던가 가을을 낙엽을 묘사하게 되면 독자들은 식상하게 느껴지고 그 감동이 반감되죠. 만약 가을이라고 한다면 그 풍경을 떠올리며 가장 가을이면서 가을스럽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돌아갈 곳을 잃었고

잃고 떠나는 것은 무거워

무거운 것은 내리기를 허락 받았다

바람을 품은 올씨들, 낙엽 몇 장

새가 되었지만 산란하는 빛 사이를 헤매는 것에

어김없이 지친다

...

나는 다른 계절로 날아갈 것이다

이별이 익숙한 미아가 되어 시간을 헤매다

도시 구석 어딘가에 내릴 것이다

날 부르는 목소리, 대답은 다른 시간에 살기에

지고 온 시간만 골목에 내려 두려는데

미련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이 계절도 지는 것들의 무게가 무척 버겁겠다


- 예하의 시 <시간여행자의 등> 중 발췌 -


위의 시에서 보면 가을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낙엽을 표현함에 있어서 무언가를 잃고 떠나가는 사람의 무거운 마음에 빗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로부터 떨어져 바람에 날아가는 낙엽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실제로는 가볍지만 무거우니 바닥으로 내려앉는다는 표현을 하며, 계절의 중압감을 잘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낙엽을 보며, '새가 되었지만 산란하는 빛 사이를 헤매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이내 바람이 잦아들어 바닥에 내려앉는 낙엽을 보며 '어김없이 지친다'라고 표현하여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가을의 풍경과 낙엽에 대한 이유를 잘 감추었습니다.



시적 대상이 우리에게 감작되듯이 미쳐 다가오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야 한다

우리는 시적 대상으로부터 감작되어 펜을 듭니다. 그 느낌을 잊어버릴까 하는 조바심에 감정을 무턱대고 쏟아내어서는 안됩니다. 쥐어짜듯이 한 방울씩 시어 하나 하나에 마음을 담고 시의 분위기와 주제를 담은 시적 장치를 통해 고백하듯 독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뜨거움을 자랑하듯 쏟아붓고는 이내 식은 마음이 외면하는 결말을 종종 봅니다. 시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천천히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의 깊이를 보여줘야 합니다. 키스만으로 섹스를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죠. 한 행만으로도 시 전체를 싱상할 수 있도록 말이에ㅛ. 그래서 우리는 비유를 쓰는 겁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같혔네


- 기형도의 시 <빈집> 전문 -


위의 기형도의 시 <빈집>을 살펴보면 '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 이 한줄로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사랑의 상실을 고백하고 화자의 공허한 내면을 형상화하면서 겨울안개, 촛불, 흰종이, 눈물, 열망, 장님, 빈집 등으로 어렵지 않은 시어들로 공허함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는 자신만의 넋두리에 상실의 비유를 담은 시어들을 던지면서 사랑을 잃은 공허함에 대해 충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한 편의 시로 지나온 사랑의 시간들과 사랑을 잃은 후의 시간들을 모두 상상할 수 있으니 말이죠.


이번 여름에 저의 딸 1이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놀다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딸 1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다가


딸 1 : 아빠! 파도가 우리집에 왜 왔니 해요.

나 : 그래? 재미있겠네.

딸 1 : 그런데, 노래는 안 해요.
나 : 파도는 파도소리로 노래하는거야. 모두가 말하는 방식이 다른거야.
1 : 그런데 오라고 했다가 가라고 해요. 말은 안하는데도....

나 : ......


저는 딸 1의 말이 파도를 노래하는 시처럼 들렸습니다. 말하지는 않지만 하얀 거품을 내며 밀려왔다가 뒷걸음질치는 파도가 딸에게 함께 놀자고 이야기를 하고, 딸아이는 그 말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는 저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직접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렇듯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시를 쓸 때 한번 더 자신의 글을 읽어보며 혹시나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 않나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늘 그러고 있거든요^^ 함께 노력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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