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Aug 05. 2024

냉커피 한잔의 쉼

내려놓음

며칠 커피를 끊었는데 아침 집안일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냉커피 한잔의 시간을 가진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뒤로 한 채 말이다. 이것저것 아침 집안일을 돌보다 보면 정신이 없기 마련. 이거 하다 저거 하다 순서가 없을 때가 많다. 이건 어릴 때부터 집중력이 부족한 나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예전 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이 집은 구조가 참 특이했다. 기역자 집이었는데 서재와 부엌을 뒤로 돌아 들어가면 길게 골목으로 연결된 곳에 방이 세 개가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면 또 한 개의 방이 나온다. 총 방은 7개였는데 마당을 지나 서재로, 서재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방이 있는 골목으로, 골목에서 마당으로.. 나는 그 집에서 오래 살았는데 집 안에서 다니다 보면 항상 미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이 집에서 무진장 고생을 많이 하셨더랬다. 이 집에서 11 식구가 살았으니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노할머니, 고모, 아버지, 엄마, 언니, 나, 여동생 둘, 남동생 이렇게 말이다. 각설하고 여하튼 이 집은 미로 같아서 그리고 마당이 있는 옛날 집이라 손 가야 될 일들이 줄을 서서 있었다. 가령, 부엌에서 일을 하다 마당을 오면 마당에 또 일 거리가 보이면 마당을 정리하고 그러다 세탁실&세면실을 가면 또 거기 일을 하게 되고.. 집 구조 때문에 일이 뭔가 중구난방이 된다.


나는 그 집에서 부모님, 남동생이랑 제일 오래 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것이 습관이 되었나... 일이 순서가 없고 여기 가면 여기 일, 저기 가면 저기 일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뭔가 정신없고 산만함 + 예전 집 구조에서의 생활이 나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이 된 듯싶다.


제일 좋은 건 일의 순서를 정해두고 하는 건데 참 그게 쉽지 않으니 내 몸이 항상 고생이다.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하게 되니 말이다. 냉커피 한 잔 마시면서 뭔 장황한 글을 쓰고 있을까... 하하하.. 그렇다는 얘기다. 줄 서 있는 집안일을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해 나가면 되는데 끝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잠시 정리가 되면 또 어질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별 기대를 버려야 하는데 또 완벽하게 하려는 그런 기질 때문에 하다 보면 잘 지치기 마련인 것 같다.


그래서 내게는 좀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무조건적으로다 해치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들어도 순서를 가지고 차근차근히 해 나가면 된다. 내려놓자.. 욕심을 버리자.. 완벽하고자 하는...‘

작가의 이전글 뜨거운 여름 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