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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Nov 21. 2020

머리로 느끼는 상해_상해도시계획전시관

상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총망라한 곳

상해, 또는 상하이上海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 동방명주를 위시한 마천루? 와이탄의 아름다운 야경? 중국의 금융수도? 중국의 부호들이 모이는 곳? 이 모든 것이 다 맞는 말이지만, 상해라는 도시를 형용하기에는 모두 단편적인 모습들일뿐이다. 막상 이 모든 질문들에 '왜'를 붙이는 순간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왜' 상해에는 마천루가 많을까?

 · '왜' 와이탄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야경이 생겼을까?

 · '왜' 상해는 중국의 금융수도가 되었을까?

 · '왜' 상해에는 중국의 부호들이 모일까?


이전에 상해를 여행으로 방문하기 전, 한국 여행책을 미리 좀 펼쳐본 적이 있다. '조계지', '국민당 정부', '난징조약'… 상해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 단어들이 어쩌면 위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상해라는 도시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어쩌다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상해가 지금의 대도시(大都市)가 되었는지, 이 곳엔 어떤 역사가 숨어있고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예정인지, 아직은 낯선 이 도시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상해를 머리로 좀 이해해볼 요량으로 간 곳은 상해도시계획전시관. 지하철 인민광장 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맞은편에는 상해 라이푸스광창(来福士广场, Raffles City)이 있어 찾기가 쉽다.


※ 안타깝게도 19년 12월부터 상해도시계획전시관은 내부 수리 중이다. 21년부터 재개장한다고 하니, 어쩌면 코로나가 끝나고 상해를 갈 수 있을 무렵엔 새단장을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2000년 상해에 개관한 상해도시계획전시관(上海城市规划展示馆)은 엄밀히 말하면 상해라는 도시가 정부 각 부문의 뚜렷한 청사진과 계획 하에 만들어진 도시라는 점을 홍보하는 곳이다. 상해시정부는 이곳을 좀 더 유명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은 4A급 관광지(5A가 만점)로 선정되어 있다.


일전에 "2019년 3월 18일 상해 난징시루" 편에서 소개했던 '상해역사박물관'이 정말 상해라는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만들어진 곳이라면, 이 도시계획전시관이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중국 정부, 상해시정부의 상해시에 대한 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학습의 장소로 삼은 이유는, 과거,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다루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jineye2199/26



이것이 바로 내돈내산 인증인가 싶지만, 그저 입장권 뒷면이 엽서 형식으로 되어있는 점이 인상적이라 찍은 것일 뿐이다. 학생증 등 할인받을 수 있는 요소가 없으면 30위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여긴 어디일까? 사실 사진에 답이 있다. 모두가 휘황찬란한 야경만을 기억하는 와이탄의 19세기 모습이다. 정확하게 사진이 찍힌 시점은 적혀있지 않지만 개항 전일 것으로 추측된다.


상해의 역사가 유구하다고 중국 정부는 이야기하지만, 사실 송-명-청대에는 그저 평범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상해를 뜻하는 약자 沪가 물고기를 잡는 도구에서 온 말일까? 상해라는 도시가 중국에서, 또 국제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계기는 1842년 난징조약(南京条约)에 이어 발생한 1843년 상해 개항(开埠)이다. 개항 후 1845년, 청나라 정부는 영국과 <토지장정>을 체결하고, 중국 근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거류지인 조계지를 설정하게 된다. 개항과 조계지 건설이라는 빅 이벤트는 동방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상해를 세계적인 상공업 대도시로 만들었다.



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모형. 상해의 어머니강(母亲河)이라고 불리는 황푸강(黄浦江)을 중심으로 서쪽(황푸강의 서쪽이라고 해서 푸시-포서浦西-라고 부른다)의 이국적인 건물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두고 있다. 사실 개항이라는 일이, 또 조계지라는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국에게는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한 역사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상해라는 도시에 개성을 더해 준 계기는 결국 개항이다. 개항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만국 건축박람회장'이라는 상해의 별칭이 생길 수 있었을까? 지금 상해는 오히려 개항과 조계지의 역사를 상해가 가진 매력으로 부각하는 느낌도 든다.



조계지가 있던 당시의 지도다. 1845년 영국이 먼저 조계지를 만든 것을 필두로, 1848년 미국, 1849년 프랑스, 이후에도 수많은 국가들이 상해에 조계지를 세웠고, 프랑스만 법조계(法租界)로 따로 떨어지고 나머지 나라들은 공공조계(公共租界)라는 이름으로 함께 섞여 지내게 된다. 현재 와이탄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이국적인 건축물들은 이런 서양 열강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 대부분이다. 조계지 및 와이탄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매거진에서 다시 다룰 일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어촌 느낌이 좀 들긴 하지만, 1920년대의 와이탄 모습이다. 얼핏 봐도 이미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전시관 내에는 이러한 와이탄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구역이 있다. 1시간마다 한 번씩 진행하는데, 조금 옛날 자료라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이해하기 좋은 자료라 기회가 되면 보는 것도 좋겠다.




2층에서 바라본 1층. 1층에는 상해의 발전을 보여주는 영상자료가 빔 프로젝터로 상영되고 있고 상해 전도(全图)가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1층에서 보면 이게 뭔가 싶지만 위층에서 보면 한눈에 들어온다. 상해는 황푸구(黄浦区), 쉬후이구(徐汇区), 창닝구(长宁区), 징안구(静安区), 푸투어구(普陀区), 훙커우구(虹口区), 양푸구(杨浦区), 민항구(闵行区), 바오샨구(宝山区), 쟈딩구(嘉定区), 푸동신구(浦东新区), 진샨구(金山区), 송쟝구(松江区), 칭푸구(青浦区), 펑시엔구(奉贤区), 총밍구(崇明区), 이렇게 총 16개의 구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 내가 살게 된 난징시루는 징안구에 속하기 때문에 두 번째 사진에는 그곳만 클로즈업해서 찍어보았다. 상해 16개 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따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상해의 도시계획을 다룬 박물관에서 빠질 수 없는 콘텐츠는 역시 석고문(石库门) 주택일 것이다. 상해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건축양식이라 할 수 있는 석고문 건축 양식은 상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신천지(新天地, 신톈디, 특정 종교와 관련이 없습니다)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Old-Shanghai(老上海, 라오상하이)의 모습을 구현할 때 많이 쓰이는 형식일 정도이니 이곳에서 안 다뤄질 수 없다.



상해 여행 경험이 있다면 아마 들러본 경험이 있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이다. 상해 마당로(马当路)에 위치해 있고 신천지(新天地) 바로 앞이라 평일이고 주말이고 한국인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이곳도 역시 석고문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다. 정확히는 석고문 양식으로 되어 있던 곳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가서 살았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모서리가 둥근 석조 문틀로 된 대문을 석고문(石库门)이라고 하고, 이 석고문을 대문으로 쓰는 주택을 석고문 주택이라고 한다. 1850년 이후 전란 시기에 장쑤 성, 저장성, 안휘성 등의 지주들이 조계지로 피난을 오게 되었는데, 이 난민들의 거주문제 해결을 위해 조계지 서양인들이 지은 주택을 일컫는다. 겉에서 보면 유럽식 타운하우스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내부는 여러 가구가 모여 산다. 서양인 집주인들이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여 집세를 벌기 위해 내부 공간을 최대한 촘촘히 나눈 때문이다. 중국식 집 구조와 서양식 집 구조를 융합한 모습으로 상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위의 그림이 바로 석고문 내부의 구조를 보여주는 설계도다. 그림에서 나타나듯 밖에서 봤을 땐 돌로 된 대문 하나뿐이지만, 대문을 들어선 후에도 계단과 작은 방들로 내부는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초기 형태의 석고문 주택은 공동 주방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화장실은 따로 없어 아침마다 분뇨를 모으는 사람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화를 담당했다고 한다. 내부가 워낙 복잡해 석고문에서의 삶을 상해인들은 "소라껍데기에서의 삶"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 탄생 배경은 그다지 영예롭지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해 시정부는 이러한 특별한 건축 양식을 상해의 개성으로 판촉하고 있다.



북경에 싼리툰(三里屯)이 있다면 상해에는 신천지(新天地)가 있다고 할 만큼 신천지는 늘 외국인 관광객으로 늘 흥성거리는데, 이곳이 바로 석고문 주택 양식을 모티브로 삼아 도시 재개발을 통해 만들어낸 지역이다. 상해 내부에서 이 지역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혹자는 신천지 덕분에 상해의 소비가 진작되었다고 하는 반면, 혹자는 신천지가 무늬만 석고문을 재현했지 사실상 전통과는 무관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 의견 모두 일리는 있다. 확실히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이들의 말처럼 신천지는 상해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곳이지만, 어쨌거나 결과론적으로 외국인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또 한 가지 비교적 눈길을 끌었던 전시는 상해의 미래 계획인 "상해2035 계획"에 대한 전시였다. 황푸강(黄浦江)과 쑤저우허(苏州河), 약칭 일강일하(一江一河, 일대일로와 비슷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다)를 두고 있는 상해가 금융 도시의 이미지를 넘어서서 누구나 우러러보는 세계화 도시이자 문화를 담은 도시, 환경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어떤 액션 아이템을 실행해나갈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기본적으로 황푸강 일대는 Global 도시로서의 상해를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간판 구역으로 계속 키워나가고, 쑤저우허 일대를 지금보다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사람이 살기 좋은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상해 시정부가 이 두 줄기의 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황푸강을 중심으로 서쪽 푸시(浦西)와 동쪽 푸동(浦东)의 변천사, 황푸강은 상해의 어머니강이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이 계획을 십분 반영한 상해 沙盘(적절한 한국어를 찾지 못했다. 모형?). 황푸강을 중심으로 한 상해의 모습을 아주 디테일하게 표현해뒀는데, 조명과 어우러져 아주 인상적이다.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푸시, 오른쪽은 푸동이다. 푸동과 푸시의 평균 건물 높이 차이가 눈에 띈다.



2010년 진행된 상해 엑스포 박물관이 오른쪽에 있고, 왼쪽에는 중화예술궁(中华艺术宫)이 있다. 왼쪽 상단에 빨간 격자무늬로 되어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중화예술궁이다. 중화예술궁은 엑스포 중국관을 리모델링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중화의 華자를 모티브로 해서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상해가 배경인 중국 드라마를 좀 보신 분이라면 익숙할 난푸대교(南浦大桥)가 바로 저 중앙에 있는 다리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 다리는 동방명주와 함께 상해를 대표하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께끔발을 하고서야 겨우 찍어낸 沙盘의 전경. 가까이서 보면 훨씬 장관이다. 굵은 황푸강에서 얇게 뻗어나가는 저 물줄기가 바로 쑤저우허다. 사실 상해의 과거에는 쑤저우허만 있고 황푸강은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황푸강이 상해의 '어머니강(母亲河)'이라면 쑤저우허는 상해의 '외할머니 강(姥姥河)'이다.



이 전시관의 맨 위층에 올라가면 간단히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고, 통유리로 된 전망대 같은 곳이 있다. 마침 날씨가 좋아 통유리를 통해 본 풍경을 찍었다. 상해를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배워 본 3일 차. 조금은 상해와 친해진 기분이다.


사진을 찍던 그때는 앞에 보이는 건물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는데, 코로나로 인해 상해를 갈 수 없는 지금은 곳곳이 추억이다. 인민대도 건너 상해박물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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