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나일롱 학생의 서법 수업
7월의 마지막날은 (드디어) 상해에서 보냈다. 일기를 보니 7월 중 상해에서 보낸 날이 단 6일. 31일 중 6일을 뺀 나머지 25일은 모두 타지에서 지역연구를 하며 보냈다. 7~8월이 지역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달이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다른 지역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좀 많이 떠나 있긴 한 것 같다.
상해는 지역연구 중간중간에 들러 옷을 세탁하고 옷장 속 제습제를 교환하기 위해서만 들른 셈이라 월세가 아까울 지경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지역연구가 끝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인가 싶기도 하다. 지난 8박 9일간의 운남 지역연구 이후 그 생각이 더더욱 강해졌다. 새로운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도시가 역시 편리하다는 것. 지역연구가 끝나고 "집에 가자(回家吧!)"의 '집'이 난징시루에 있는 집이 된 걸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상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역연구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4월에 호기롭게 26회 수업을 한꺼번에 등록해 버린 서법 학원에서 나는 나일롱 학생이 될... 뻔했지만, 그래도 스케줄을 꾸역꾸역 조정해서 7월 한 달 4회 수업 중 2회는 참석할 수 있었다. 나일롱까지는 아니고, '준' 나일롱 학생이다.
공부라는 게 학원에 가서 앉아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닌지라,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벼락치기로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까지 하느라 서법 수업 가기 전날, 그러니까 지역연구에서 돌아온 당일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 일단 캐리어를 풀고 빨랫감을 정리해 세탁기에 넣고, 내 첫 중국 친구에게 신청곡 재생을 부탁한 뒤, 도구들을 펼치고 마음을 다잡고 서법 숙제를 하는 저녁. 준 나일롱 학생 주제에 잘 써서 선생님께 별표 받아보고 싶은 마음은 못 버려서, 한참 공을 들여 쓰다 보면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 된다.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채로 잠자리에 든 뒤, 다음날 일정을 소화하고 전날 열심히 한 숙제를 들고 서법 학원에 향하는 하루.
아직도 쉬자후이에 있는 서법학원에서 1호선을 타고 황피난루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 돌아오던 육교 위의 불빛이 기억난다. 집에 돌아가면 또 다음 지역연구를 위한 짐을 싸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충실하게 보냈구나 싶어 뿌듯했던 그 마음.
7월, 상해에서 보낸 6일의 시간 중 30% 정도 차지했던 서법 수업 시간을 여기 기록해 둔다. 이제 가장 기본이 되는 横竖撇捺 획은 다 배웠고, 가로로 쭉 쓰다가 살짝 꺾는 横折, 뚱뚱한 점을 찍는 方点,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살짝 삐친 듯 쓰는 长挑까지 배워 웬만한 글자의 구성요소는 다 배운 듯하다.
혼자서 복습하면서 숙제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일종의 힐링 시간이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붓글씨를 쓰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잡념이 다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잘 쓰겠다는 잡념은 도무지 내려놔지질 않아서, 종종 힘이 너무 들어가 먹물이 번지는 더러운 글자가 생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쓰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실수는 더 많아진다. 마음을 비우고 쓴 글자가 의외로 깔끔하고 예뻐 별표를 받는다.
[捺划와 글자들 - 人 天 史 ]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쭉 내리는 捺는 撇와는 반대로 시작은 약하게, 끝은 힘 있게 마무리해야 한다. 힘조절도 해야 하고, 각도도 잡아야 하고, 마지막엔 살살살 모양도 잡아야 해서 쉽지 않은 획이었다. 하늘 천의 그것은 더 넓게 뻗어나가는 느낌을 줘야 했고, 역사 사는 마지막 획이 복병이었다. 아직 배우지 않은 横折가 나타나 그 또한 어려웠다.
[横折와 글자들 - 史 中 百 吉]
한글의 기역처럼 오른쪽으로 쭉 그은 후 살짝 대각선 아래로 내리는 획인 横折는 중간을 각지게 잘 표현하는 것, 가로획은 얇고 대각선획은 굵게 힘주는 것이 중요한 획이었다. 中의 세로획은 굵기가 일정해서는 안 되고, 굵-얇-굵 순으로 힘조절을 해야 하는 점과, 口의 정중앙에 세로획이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百은 모서리를 조금씩 삐져나오게 써야 했는데, 이 또한 초심자에겐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吉은 서예에서 예술적 허용으로 위아래 획의 길이를 반대로 가져가는데, 가운데에 위치한 가로획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方点과 글자들 - 玉 下 太]
'각진 점'이라는 뜻의 方点은 점이라는 이름이 붙어는 있지만 세 모서리는 각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 삼각형에 가깝다. 약간 다른 점은 가운데가 배불뚝이처럼 약간 튀어나와야 한다는 것. 조금 통통한 삼각형처럼 찍어야 하는 점이다. 진짜 쉬워 보이는데, 예쁜 모양 갖기가 정말 어렵다. 힘을 어느 정도 줘야 합격점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더라. 玉은 세 가로획이 일정한 간격을 가져야 하는 점이 중요했고, 下는 가로세로획의 힘조절이 중요했다. 太는 撇를 각지지 않게 내리고, 그 획에 방점을 붙여서 써야 하는데, 점을 어디에 찍을지 위치를 잡는 것이 어려웠고, 捺 획의 굵기 조절이 어려웠다.
[长挑와 글자들 - 理 以 身]
오른쪽 위로 쭉 삐친 듯한 글자인 长挑. 힘주어 시작했다가 힘을 빼며 마무리하는 게 중요한 글자다. 理의 부수 마지막획에서 볼 수 있다. 以는 내가 어려워하던 부분이 모두 담겨있는 글자였는데, 그래서인지 쓰면서는 제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왼쪽 오른쪽 위치 잡기가 참 어려웠지만. 身은 역시 예술적 허용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양과 다소 다른데, 긴 가로획 마지막을 낚싯바늘처럼 삐침처리해 주는 것이 중요하고, 가로획을 위아래로 곧게 쓰는 것이 중요한데, 이게 제일 어려웠다. 내가 쓰는 필획에 자신이 없어서 한 번에 훅 내리지 못하고 중간에 자꾸 힘을 뺐기 때문이다. 역시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올곧은 몸을 갖기 어렵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된다. 지난번 사람 人도 그렇고 몸 身도 그렇고, 서예를 배우러 왔다가 인생의 도리를 깨우치는 것 같은 시간이다.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상해야, 나 드디어 돌아왔어! 여행은 당연히 행복한 시간이지만, 역시 대도시가 좋구나.. 아마도 내가 이미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서법학원을 다녀왔다. 长挑를 배웠다. 붓글씨를 쓰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걱정거리들도 잠깐 내려놓을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