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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14. 2021

거대한 현무호를 건너

난징(南京) 지역연구 마지막날 (2)

(지난 편에서 계속)


다시 찾아온 성벽의 기회


계명사를 보고 나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향한 다음 목적지는 난징 성벽 타이청 풍경구 (南京城墙台城景区). 현무호 공원까지 그냥 가지 말고 중간에 성벽을 올라갔다가 가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잡은 일정이었다. 마침 첫날 중화먼(中华门)을 통해 성벽을 올라가는 것도 실패했던 우리인지라 이 기회에 올라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계명사를 나오면 바로 성벽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었기에 표를 사고 들어가 봤다.


계명사 - 난징 성벽 - 현무호 공원은 이렇게 이어져있다.


성벽으로 올라가는 입장료는 15위안. 당연히 전체 성벽이 다 이어져있지는 않고, 구간별로 끊어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올라가면 사진처럼 긴 성벽길이 보이고, 발아래로 넓은 호수가 보이는데 이게 바로 다음 목적지인 현무호다. 성벽이 거의 현무호를 둘러싸고 있어서 현무호 위를 떠다니는 오리배까지 볼 수 있다.



얼핏 수원 화성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난징 성벽. 사실 우리가 이날 올라가 본 곳은 전체 성벽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래 지도를 보면 명나라 때 난징의 성은 궁성(宫城), 황성(皇城), 경성(京城), 외곽성(外郭城), 이렇게 네 구역으로 나뉘고, 현무호를 끼고 있는 이 구역은 경성의 일부 성벽에 불과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호수 뷰니까 우리가 올라간 이 구역이 가장 뷰가 좋은 곳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나라 때 난징 구조도 (출처: 百度)


성벽 위는 아무래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 하는 곳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걷다 보니 우리가 방금 전 다녀온 계명사도 보였다. 성벽이라 대포 같은 전쟁에 사용되던 무기를 모형으로 전시해두기도 했다. 또 성벽 위에 오륜기 장식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2014년 난징에서 개최된 청소년 하계 올림픽 때 만들어진 것인 듯하다. 시안(西安)의 성벽만큼은 못했지만, 그래도 중화먼에서 한 번 튕겨서 그런지 올라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난징의 빛나는 구슬(金陵明珠), 현무호 공원


성벽에서 내려오면 바로 보이는 금릉의 빛나는 구슬(金陵明珠) 현무호 공원. 강남 지역 도심에 있는 공원 중 최대 규모,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 호수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현무호 공원은 정말 크다. 호수가 얼마나 큰지 역사적으로 황실의 개인 정원에서 해군 훈련장으로까지 그 용도가 발전했다고 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 호수, 인공 호수다. 더 놀라운 것은, 북송 때 급진 개혁가 왕안석에 의해 메워져 밭으로 만들어졌다가 원나라 때 다시 파내어 호수로 복원했다고 한다. 이 호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들어갔을지 알 만하다. 현무호의 별칭은 후호(后湖), 북호(北湖)인데, 옛 시 중에 이 명칭이 들어간 시가 있다면 현무호와 관련된 시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배경지식은 현무호를 다녀온 뒤에야 찾아본 것이고, 사실 현무호를 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공원이 얼마나 큰 지를. 게다가 나는 선천적인 방향치에 길치. 동서남북도 잘 구분 못하는 사람. 지도를 보고도 규모가 파악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처음엔 현무호, 그까이꺼 걸어서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마어마한 착각이었음을 공원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느꼈다.


음. 망망대해의 느낌.


게다가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다. 기차역에 적어도 한 시간 전엔 가서 실물 표 교환도 해야 했고, 이미 체크아웃을 했기 때문에 2박 3일 짐이 계속 어깨에 들려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내 옆에 나보다 훨씬 이성적인 일행들이 있었다는 점! 일행들이 걸어가려던 나의 만용을 멈춰주고 현무호 열차 타기를 제안했다. 일단 다음 목적지인 난징 기차역으로 순조롭게 가기 위해서는 호수 반대편으로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이동을 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선택한 것이 공원 안을 다니던 간이 셔틀이었다. 이 차를 타니 그나마 기차역에 가까운 곳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고, 공원 구경도 좀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간이 열차를 탄 것이 호수의 남단이었는데, 열차는 우리를 북단에 있는 연화광장(莲花广场)까지 데려다주었다. 연화광장은 상단 오른쪽 사진에 있는 것처럼 연꽃 선녀와 연꽃 동자들의 조각상으로 치장되어 있는데, 가끔 이곳에서 공연도 하는 모양이다.



호수의 북단으로 올라온 김에 기차역까지 슬슬 걷기로 했다. 분명 절반 정도 되는 거리를 셔틀이 대신 와주었는데, 그래도 눈앞에 보이는 호수는 너무나도 컸고, 생각보다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현무호 공원은 그냥 공원이다. 다 보려고 너무 욕심내지 말고 꼭 셔틀을 타기를 추천한다. 드디어! 저 멀리 목적지인 난징역(南京站)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만난 난징역


목적지가 보이니 이제 걸어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보이는 것과 실제 거리는 왜 이리 다른지. 짐을 들고 긴 거리를 걷는 것이 힘에 부친다. 하지만 한편으론 첫 지역연구 지역인 난징을 떠나기가 아쉽다. 아쉬운 마음이 드니 공원의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프레임에 담고 싶어 진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아침부터 묘하게 흐리고 꾸물꾸물했던 날씨가 공원을 걷다 보니 점차 맑아져 예쁜 하늘로 바뀌었다. 난징이라는 도시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려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안녕, 난징!


난징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틀 전 상해역에서 헤맸던 것에 비하면 백 배는 더 능숙한 모습으로 실물 표를 받고 기차역에 진입했다. 기차 안에서 간단히 요기할 간식을 살 여유도 생겼다.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야 비로소 성장하는 듯하다.


2박 3일, 길지 않았던 난징에서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이곳에 오게 된 동기는 너무나도 단순했지만, 막상 와보니 도시 자체가 안고 있는 역사가 긴 만큼 배울 점이나 생각해볼 것들이 무척 많았다. 푸즈먀오(夫子庙)와 친화이허(秦淮河)의 야경(이라고 쓰고 레이저쇼라고 읽는다)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도시가 간직한 고대부터 근대까지를 아우르는 그 방대한 기록들이 인상적이었다. 난징이라는 도시를 보면서 중국인들이 과거를 대하는 방식을 생각했고, 동시에 우리나라는 어떤 식으로 과거를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다.


한편, 첫 지역연구였던 만큼 앞으로 가게 될 지역연구의 준비나 운영 상에 있어서 좀 더 신경 써야 할 점이나 주의해야 할 점을 많이 깨달았다. 초단위까지 빡빡하게 일정을 짤 필요야 당연히 없지만, 다양한 선택지나 Plan B 후보를 많이 만들어놓고 떠나야 갑작스레 닥쳐오는 돌발상황에도 적절하게 일정을 변경해가며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개인적인 여행이었다면 계획이 좀 없어도 괜찮았겠지만 이건 지역'연구'니까. 함께 떠난 일행이나 일정을 짤 때 도움을 주었던 현지 친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컸다. 역시, 친구 한 명 더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은 찾아진다(多一个朋友,多一条路).


첫 지역연구 목적지, 난징. 도시 자체의 규모나 교통 상황을 보면 2박 3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잡은 주말 지역연구였지만, 아무래도 한 번 왔다간 곳은 다시 올 수 없는 규정이 있기에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아야 또 그만큼 애틋함도 생기고, 나중에 또 올 마음도 생길 테니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네기로 한다. 고마웠어. 다시 만나자, 난징!




[난징 3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앞으로 있을 지역연구 때마다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게 될까? 하지만 사실 난 올해 있을 모든 지역연구에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아쉽기를, 이렇게 미련이 남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 모든 일정들을 정말 소중히 여길 수 있을 테니까. 거대한 현무호를 건너, 이제 난징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시간이다. 안녕, 난징.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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